최저임금제의 경제학적 본질은 인간다운 삶이 가능한 임금의 최저선을 노동시장 외부에서 사회가 결정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최저임금제의 의의는 임금 최저선의 결정에서 시장에 대한 사회의 우위를 확인한 것이다. 그러나 한번 수립된 시장은 결코 순순히 물러서는 법이 없다. 시급으로 환산한 임금총액이 최저임금 미만인 노동자의 비중을 가리키는 최저임금 미만율을 보자.

이 지표는 2017년 8월 13.3%로, 약 266만명의 노동자가 최저임금 미만을 받고 일을 하고 있다. 높은 최저임금 미만율은 두가지 사실이 합쳐진 결과다. 첫째, 감독 책임이 있는 정부가 최저임금 위반 상태를 시정할 의지가 그다지 없다는 것, 둘째, 신고하면 최저임금대로 받을 수 있는 노동자들이 위반 상태를 신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임금 노동자들 자신의 선호인 양 선전되곤 하는 두번째 사실은 최저임금보다 낮은 시장임금을 수용하면서 일자리를 유지하느냐, 최저임금을 요구하며 한푼도 못 버는 실업자가 되느냐 사이에서 답이 정해진 강제일 뿐이다. 추세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국제비교에서도 수위권인 높은 최저임금 미만율은 우리 사회가 최저임금제의 의의를 수호하는 정부를 갖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사실 최저임금을 16.4% 올린 지난해부터 정부의 선택은 시장의 요구에 끝없이 끌려가는 모양이었다. 인상 효과를 누그러뜨리기 위한 산입범위 확대는 최저임금 인상폭이 시장의 수용력을 넘어선 것이었음을 정부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었다.

2019년 새해 벽두에 의제로 부상한 최저임금 결정 방식 변경도 최저임금제의 의의를 훼손할 것이다. 최저임금위원회라는 단일 기구를 최저임금 인상률의 상·하한을 정하는 구간설정위원회와 최저임금 인상액을 최종 결정하는 결정위원회로 이원화한다는 것이 정부안이다. 그런데 최저임금 결정에서 일차적 중요성을 부여받은 구간설정위원회의 구성 방식을 보면 정부가 한발짝 뒤로 물러서고 노와 사가 더 직접 부딪히는 상황이다.

또한 최저임금 인상률 결정의 준거에 그동안 들어 있지 않았던 고용 수준과 기업의 지불능력이 추가되는데, 최저임금 인상에 영향을 받는 기업들의 지불능력이야 불 보듯 훤하다. 두가지 핵심 정부안의 공통점은 최저임금제 안에 시장임금의 결정 원리를 한층 강화하는 것이다. 이런 태도를 가진 정부가 최저임금제를 사실상 폐지하는 조처에 맞먹는 업종별 차등화 주장을 끝까지 거부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

 

앨버트 허시먼의 저서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는 사회 변화와 진보를 골탕 먹여온 지난 200년 동안 보수반동의 3가지 수사학을 탁월하게 분석하고 있다. 그가 첫번째 수사학으로 서술한 역효과 명제는 인간의 평등과 존엄을 위한 어떤 시도도 인간의 의지를 초월한 다른 반작용에 의해 의도한 목표는커녕 더 나쁜 결과를 얻게 된다는 내용이다. 압축적 좌절의 과정을 밟고 있는 한국 사회의 최저임금 1만원 실험만큼 이 역효과 명제에 들어맞는 사례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시장 보수세력의 줄기찬 한가지 주장인바, 큰 폭의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 위기라는 시장의 반작용을 통해 역효과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저임금제의 역사적 의미는 시장의 힘을 극복하려는 것이었지 이에 굴복하려는 것이 아니다. 촛불항쟁, 여야 대선주자들의 공약 경쟁, 이를 통해 들어선 정부의 정책 수립을 통해 탄생한 최저임금 1만원이 가리키는 정책 방향은 공룡 재벌에 의해 망가진 공정거래질서의 복원, 만약의 고용 위기를 상쇄할 과감한 복지와 소득재분배, 부동산 지대경제의 청산 등이었다. 요컨대 시장과 경제를 16.4%의 최저임금 인상이 수용될 수 있는 환경으로 개혁한다는 것이 그 인상을 결정한 사회적 합의의 요구였던 것이다. 달리 보면 이 모든 과제에서 허탕을 치고 역진하는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무력화하는 온갖 꼼수로 나가는 것은 예정된 수순일 수밖에 없다.

좌절로 가는 최저임금 1만원 실험에서 남아야 할 교훈이 있다. 지배계급은 언제나 자신들의 계급적 이해에 따른 선택을 객관적인 시장의 힘에 의한 제약으로 위장한다는 것이다. 역효과 명제는 이를 통해 대중의 사고를 효과적으로 지배한다. 실상 신비한 시장의 힘으로 포장된 상자를 뜯어보면 재벌, 상가와 아파트 자산가, 상위 10% 이상 고소득자들의 경제적 이권을 유지·확대하려는 이해가 대개의 내용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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