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일째 20미터 넘는 철탑에서 고공농성 중인 김용희 선생님이 생일을 맞이했다는 소식을 이곳저곳에서 들었습니다. 노래 좋아하는 제가 가만있을 수 있나요. 어둑해진 하늘 아래 바람 소리 풀벌레 가락 반주 삼아 생일 노래 한 자락 전화기 너머로 들려드렸습니다.

 

“오늘은 그대의 날 여기 그대를 위해

가난한 내 손으로 맑은 술 한잔 따르네

그대 어느 어둠 앞에 서더라도

혼의 빛 잃지 않기를

그대 고운 눈 속에

별 하나 반짝이기를

소나기 지나간 들녘에

무지개 다리 놓이듯

그대 작은 가슴 속에

예쁜 꿈 간직하기를

축하해요 축하해요 축.하.해.요~♪”

_그대의 날/ 백창우 글, 곡/

(아마도) 노래마을 노래

 

노래 마치자마자 전화기 타고 “짝짝짝!” 손뼉 소리와 함께 참 좋은 노래라던가, 선물이라고 했던가 뭔가 좋은 말씀을 해 주셨던 거 같아요.

얼굴 보면서 노래했으면 덜 쪽팔렸을 것을, 얼굴도 못 본 채 노래하니까 급 창피해져서는 전화기를 얼른 끊으려다가 그래도 한두 마디라도 나누어야지 싶어서 여쭈었습니다. 노래에 ‘술 한 잔’ 따르는 이야기가 나오니까요.^^

 

“선생님 주량이 어떻게 되세요?”

“잘 먹죠. 예전에 삼성 다닐 때 별명이 술상무였어요.^^”

“아, 그럼 진짜 잘 드시겠네요. 얼른 술 맘껏 드실 수 있음 좋을 텐데…

 

지금 산골에는 바람이 일렁이면서 비도 슬슬 나리는 중이거든요. 노래 부르기에 앞서 서로 ‘날씨’를 징검다리 삼아 안부를 묻기도 했어요.

 

“선생님, 거기도 바람이 많이 부나요?”

 

뭐, 이렇게 제가 빤한 물음을 던지면요.

 

“이 정도 바람이면 농작물도 피해가 있을 거 같은데요. 바람이 세서 옥수숫대가 넘어지고 그러지는 않나요?”

 

이렇게 시골에서(무안군) 난 사람답게 참 맞춤한 대답을 돌려주시곤 하셨죠.


김용희 선생님과 전화를 끊고 나서 ‘맑은 술’ 한잔 따라 논 거 죽 들이키며 바람을 맞고 있는데 뜨끈한 눈물방울이 주르르 흘러요. 다른 까닭 없었어요. 그저 목소리가 너무나 자상해서요. 전화 통화 나눈 것만 해도 대여섯 번은 되는 것 같은데 오늘이라고 특별히 달라진 것 딱히 없을 터인데도 유독 그렇게 느껴졌어요. (선생님 생일이어서 그랬을까나요.)

 

전에 어느 명창 판소리 선생님한테 들었던 이야기가 있어요. 살아온 시간이 얼굴에 담기듯이 목소리에도 인생이 실려 있다고 하셨죠. 목에서 울려 나오는 그 소리에서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느 정도는 헤아릴 수 있다는 말씀이었어요. 맑고도 자상한 김용희 선생님 목소리를 듣고 나니까 오래전 들었던 그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그래서 불쑥 눈물이 흘렀나 보아요. 이렇게 따뜻한 목소리를 지닌 사람이, 저 높고 좁은 곳에서 목숨 걸고 하루하루 지내고 있다는 사실이 참말 정말 진실로 믿어지지가 않았어요.

 

전화 통화는 나누었다지만 아직 얼굴 마주한 적 없는 저한테 이리도 자상하게 말씀하시는 분인데, 하물며 삼대독자시라는데. 사모님한테는, 두 아드님한테는 다섯 살쯤 된다는 손주한테는 얼마나 다정하게 이야기를 하실까. 목숨보다 귀할 그 사람들이 하늘 가까운 그 자리에서 얼마나 마음에 밟히실까, 그럼에도 그 자리에서 내려올 수 없는 그 마음은 얼마나 시커멓게 타들어 갈까..

 


며칠 전 강남 네거리 철탑 아래를 찾았습니다. 새벽 다섯 시부터 일어나 어제 저녁 거둔 옥수수를 한솥 삶았습니다. 강남 네거리 철탑, 바로 그 아래로 가져가기 위하여.

대로에 우뚝 솟은 철탑을 처음 봤을 땐 굵기가 너무 가늘어 보였습니다. 저러다 휘청이지나 않을까, 괜히 걱정이 되더군요. 가까이서도 보고 멀리서도 바라보고 자꾸만 보니까 조금씩 굵게 느껴지더군요.

철탑 아래 천막에서 수녀님도 뵙고 날마다 이 자리에 나오신다는 눈이 참 멋진 어느 선생님도 만나고. 또, 또! 정말정말 마음 많이 쓰이던, 반올림 활동가 이종란 노무사님과 진하게 상봉을 했습니다. 정말 오랜만이었어요! 건강하고 밝아 보여서 참말 기뻤어요!!^^ 옥수수도 참 좋아해 주니 산골에서 서울까지 실어온 보람도 한 가득이었죠~

철탑 위에 계신 김용희 선생님과 흐리하나마 얼굴 마주 보며 전화 통화도 나누었습니다. 장수 하늘 아래서 전화 목소리 들을 때도 참 좋았지만 가까이서 서로 손 흔들며 나누는 통화는 더욱더 좋더군요~^^

기분 좋은 나머지 전화기로 노래 한 곡 불러드렸어요. 오늘은 수요일이니까, 비는 안 오지만 ‘수요일에는 빨간 장미를’을 불렀는디, 기타 반주가 없으니 음정이 엄청 틀려서는 다 부르고 나니 정말 부끄러벘는데(어제 연습할 땐 잘됐는디 ㅜㅜ) 노래 마치니까, 김용희 선생님이 “지금 이 순간이 참 행복하다”고 해 주셔서 저도 참 행복했다죠~~^^

박미희 선생님과도 첫 만남을 가졌어요. 처음엔 좀 낯설고 어색했는데 이종란 노무사님이 오고 난 뒤에 이 이야기 저 수다 떨고 나니까 많이 편해졌답니다. 그래서 알게 되었죠. 김용희 선생님이 철탑에 오른 그날부터 지금까지, 8월 11일 오늘까지도 단 하루도 빼지 않고 아침부터 밤까지 그 아래를 지키고 계시다는 것을요.

저야 철탑이 처음이다 보니 아는 분이 있을 리야 만무하고 그래도 인연이 닿는 종란씨 주고픈 마음에 이것저것 텃밭 농산물을 챙겨갔거든요. 그 가운데 ‘옥수수수염차’가 있었어요. 텃밭 옥수수에서 떼어내 산골 햇볕에 바싹 말린 거였죠. 박미희 선생님께서 ‘옥수수수염차’에 관심을 보이시더군요. 다행히 한 봉지 더 가져간 김에 같이 드렸답니다.(가끔은 제가 준비성이 있기도 해요.ㅋ)

그러고 나서는 이틀 뒤, 서울 출장(이거 맞나?) 일정 마치고 산골로 돌아오기 전 <작은책> 멋진 살림꾼 인열씨랑 같이 철탑 아래 또 들렸더니만 박미희 선생님이 어김없이 계시더군요. 슬쩍 얼굴을 마주해 보니 이틀 전보다 낯빛이 참 좋으세요.

“어머, 그새 이뻐지셨어요!”

제가 한 말씀 드렸더니 바로 이런 이야기를 해 주시네요.

“지난번 만났을 때 신장이 좀 안 좋았어요. 전날 잠을 잘 못자서 많이 피곤했는데 옥수수수염차 먹고는 많이 나아졌어요. 안 그래도 깨끗하고 건강한 옥수수수염차를 어디서 구할 수 있나 고민 중이었는데 마침 종란 씨한테 그걸 주기에 얼른 관심을 가졌죠. 다 몸이 안 좋아서 그랬던 거였어요.^^”

우와, 그 말씀을 듣는데 얼마나 기쁘고 뿌듯하던지요. 뭐랄까, 세상을 다 얻어도 이렇게 기쁠 수 있을까, 싶은 그런 마음이 밀려왔어요. 이야기 끝에 가까이서 얼굴을 바라보니 어머머, 완전 고우세요!

“선생님, 오드리헵번이랑 꼭 닮았어요!”

진심으로 한 말씀드렸건만 말하는 사람 민망하게스리 얼마나 손사래를 치시던지요. 근데, 그래서 더 아름답게 보였답니다.^^

철탑 아래서 박미희 선생님이랑 페친 맺고 수다도 떨고 있자니 옆에 계시던 다른 분을 처음으로 뵈었어요. 김지숙 선생님이라고 하시더군요. 여동생이랑 같이 삼성SDI 일을 받아하다가 자기랑 여동생이 함께 백혈병에 걸렸는데, 여동생은 끝내 돌아가시고 그 선생님은 완치가 되기는 했다는데, 자식 두고 떠난 여동생을 위해서 날마다 삼성 앞에서 피켓 시위를 하신다는데, 그날은 산골에 돌아갈 일정이 바빠서 깊은 사연을 제대로 여쭙지는 못했어요.

어쨌거나 저쨌거나 두 분 다 말씀하시기를요. 자기들이 힘들게 싸울 때 김용희 선생님이 큰 힘이 돼 주셨대요. 법대 나온 사람답게, 해고된 뒤로 법률근로공단(맞는지 헷갈림..)에서 무료 상담도 꽤 오래 하시고, 무엇보다 착하고, 유머 넘치는 분이라는 이야기를 몇 번이나 들려주셨답니다.

어쩐지이~ 떨리는 마음으로 장수 하늘 아래서 첫 전화를 나누었을 때부터 알아봤거든요. 김용희 선생님은 ‘유머’가 넘치는 분! 그게 저 혼자 착각은 아니었던 거죠~^^

저보다 십오 년도 더 넘게 살아오신 두 여자 선생님께 말씀드렸어요. 나중에, 머잖아 산골에 꼭 오시라고. 제가 아줌마들 좋아하는 나물밥상 잘 차릴 수 있노라고. 두 분 다 오고 싶어 하는 마음이 슬며시 느껴졌어요. 어디 두 선생님만 그런가요. 그날 일이 있어 철탑 아래 오지 못한 이종란 노무사님한테 전화했더니, 이야기 말미에 그러더라고요.

“김용희 샘이랑 같이 산골에 가도록 해 볼게요~”

철탑 위 김용희 선생님이랑 통화하고 철탑 아래를 지키는 두 선생님과 짧지만 진했던 이야기 나누고는 산골로 떠나기 위해 걸어 나오는 길. 제 얼굴에서 웃음꽃이 피어나더군요. 그 처절한 자리에서 떠나오는데도 말이에요.

그건 아마도요… 철탑 위에 있는 사람, 철탑 아래 있는 사람. 그 모든 이들이 제게 준 ‘아픔보다 더 큰 희망’ 덕분일 거라고 생각해요. 그 ‘희망’을 믿고 싶고 또 믿고 살아갈 것이기에 오늘 생일 맞으신 김용희 선생님이랑 통화 끝에 잠시 맺혔던 눈물 훌훌 털어내고 이렇게 또 긴 글을 남기고 있습니다.

전화 몇 번일 뿐이지만, 그 목소리에 실린 ‘마음’이 느껴져서인지 김용희 선생님은 한 번 한 말씀은 꼭 지키실 거라는 믿음이 저한테 조금씩 생겼답니다. 비록 전화기 너머일지라도 산골에 꼭 오겠다는 말씀도 하셨고, 오늘 밥 드시면 좋겠고, 오래오래 건강하시라는 제 부탁에도 그러겠노라고 하셨거든요. 저는 김용희 선생님의 그 맑고 자상한 목소리만 믿고 내일도 모레도 또 그 다음 날도 더는 눈물짓지 않고 씩씩하게 살아갈 거예요.

언젠간, 어쩌면 정말로 그리 머지않아 산골 집에 날아들 철탑 위의 한 남자와 철탑 아래를 굳건히 지키며 앉아 있는 세 여자를 기다리면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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