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빛나는 ‘밤’은 짧고 뾰족 가시 난 ‘밤’은 길다~>

새벽으로 달리는 밤이다. 낮에 본 밤이 떠오른다.

일상생활에서야 어두운 ‘밤’이든 먹는 ‘밤’이든 별 차이 없이 부르지만. 국어사전에서 이르길 별이 빛나는 ‘밤’은 짧게 뾰족 가시 난 ‘밤’은 길게 말하라 말한다. 사전이 시키는 대로 따르는 사람 몇이나 될까? 따르지 않아도 사는 데 아무 지장 없다. 되려 따르는 게 더 문제일 수 있다. 듣는 이가 “바암~이 뭐여?” 되묻기 십상일 터이니.

우리 사는 일도 세상이 시키는 대로 애써 따를 필요 없지 않을까?

부르고 싶은 대로

말하고 싶은 대로

생긴 모습 그대로

그렇게 사는 거이 좋겄다, 싶은 맘이 밤 늦은 시간에 밤 사진 보다가 일렁이는구나.

청소년 시절 내 귀와 맘을 밤이면 밤마다 적셔 주었던 문세 아저씨의 라디오 방송 첫 멘트 “별이 빛나는 밤에~♪”가 까닭 없이 자꾸 생각나는 이 캄캄한 밤에.


<마지막 ‘고구마줄거리볶음’을 볶으며 먹으며>

한 남자가 한 골 남겨두었던 마지막 고구마를 캐면서 마지막 고구마줄거리를 한 줌 거두어 한 올 한 올 껍질을 벗긴다. 한 여자는 정말 바쁜지 진짜 바쁜지 알 도리가 없는 중에도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사진으로 기록을 남긴다.

고구마는 후숙이 되어야 맛있으므로 나중에 먹어야 좋다지만 고구마줄거리는 바로 먹어야 싱싱함을 놓치지 않을 터이니 다 준비된 재료를 그나마 하루 지나 지글지글 자글자글 볶는다.

고구마 캐기도 고구마줄거리 다듬기도 모두 가뿐히 외면했던 한 여자. 고구마줄거리 볶음만큼은 스스로의 몫으로 여긴다. 이조차 놓아버리면 안 된다고 게으르고 어설픈 텃밭 농부의 마지막 마지노선을 지켜야 하노라고 마음 다잡으며 부여잡으며 고구마줄거리를 볶는다.

산골에서 만든 간장 산골에서 만든 쇠비름액으로 간을 맞추고 텃밭에서 자란 고추와 대파에 마늘 다진 거 약간을 넣어 고구마줄거리볶음 완성.

내가 만들었지만 맛있구나 다른 건 다 못해도 나물반찬은 그래도 쫌은 되는구나 산골살이 헛살지만은 않았구나…혼자 감탄하다가는 냉큼 마음을 돌려먹는다. 자연이 고구마줄거리를 키워 냈고 한 남자가 고구마줄거리를 거두고 다듬었으니 이 달큼하고 아삭하게 맛난 고구마줄거리볶음은 우리 모두 함께 만들어 낸 것.

밥반찬이지만 오늘만큼은 막걸리 안주로 더 끌리고 맛났던 고구마줄거리볶음. 내일은 밥에다 먹어야지. 밥이랑 먹을 때 맛있어야 진짜 맛난 나물반찬이니까.

술안주는 그저 옵션일 뿐. 술 권하는 세상에서 씹을 거리 천지인 이 슬픈 세상에서 추악하고 더러운 이 자본의 천국에서 안주 고까이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니까. 그르니까 밥이랑 술은 이 나이가 되어도, 되도록 같이 먹기가 힘드러.

다만 나이가 나이인 만큼! 술만 먹으면 넘 빨리 꽐라되니까네 내가 참 좋아하는 어느 언니처럼 밥 먼저 먹고 술 먹는 거는 고거는 되드라.

나이가 나이인 만큼! ^^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이고프지만 어쩔 수 없이 ‘아파서 미안합니다’>

귀한 책 선물을 받았습니다. 사려고 찜해 놓고도 살 틈이 없어서인지 살 여력이 딸려선지. 마음에 담아 놓고도 손에는 쥐지 못했던 그 책을 드디어 산골 집에 들이게 되었습니다.

“이 책의 ‘추천사’를 여러 차례 썼음을 고백한다. 흔히 말하는 동병상련이 불러오는 공감 때문이기도 하고, 요즘은 같은 처지의 사람끼리도 소통이 어려워서, 나 혼자 아픈 듯 서러움과 외로움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정희진 선생님이 남긴 추천사의 첫 글귀만으로도 뭔가 마음을 싹~ 보듬어 주는 듯했어요.

“누구도 아픈 것 때문에 아프지 않길 바란다.”

“아파도 괜찮다고 사회가 말해 줄 수 있다면 아픈 이의 고통이 줄어들게 되고, 결국 아픈 이의 몸이 변화하게 된다.”

“차별 때문에 질병을 말할 수 없는 순간이 오거나, 아픈 사람이 미안해하는 현실을 목격할 때도 아팠다.”

‘프롤로그’에 담긴 작가의 목소리는 한 번 더, 아프지만 푸근하게 마음을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이 책을 안겨준 이는 참 많은 아픈 마음들을 보듬느라 자기 마음 아픈 건 들여다보지 못하고.혹은 보임에도 보이지 않는 듯 애써 외면하며 늦은 밤 미련스레 캔맥주를 부여잡으면서도 작은 아픔 털어놓는 어떤 이에게

“미안해요..”

“많이 아팠군요…”

하더랍니다.

그 따뜻하고 다정한 목소리에 무너질 듯한 마음 다시 일으켜 세우면서도 참말로 사무치게 미안하더랍니다. 자기가 더 아플 것만 같은 순간에도 다른 아픔을 들어주면서 미안하다 말하고 많이 아팠느냐고 어루만져 주는 그 넉넉하고 아늑한 마음 덕분에. ‘추천의 말’과 ‘프롤로그’를 읽는 것만으로도 몸 구석구석 켜켜이 쌓였던 아픔들이 녹아내리는 듯한 기분에 젖는 밤.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라고 책 제목처럼 당당히 외치고 싶다가도 어쩔 수 없이 혼잣말로 되뇌어 봅니다.

‘아파서 미안합니다’

내가 아프면 함께 아파할 아파할 것만 같은 어떤 이가, 이들이 하나. 둘.. 떠오르는 바람에,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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