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뉴캐슬, 동거인, 가짜 두발자전거 (1)

 

 

스물다섯, 담담하고 유쾌하게 걸어가는 청춘실패담

<이음>에서 매주 월, 목요일에 연재됩니다.

 


“그럼 앞으로는 뭐 할 거니?”

이 질문에 대답하기가 궁해졌을 무렵, 나는 입대 날짜를 알아보게 되었다.

스물네 살 남자아이의 삶이 알바몬과 인스타그램 사이에서 미적이고 있을 때 써먹을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었다. 물론 더 열 받는 질문이 물려오기도 했다. “정말? 아직도 안 갔어?” “너 군대 다녀온 거 아니었냐?” 사고 싶지 않은 동정을 유발한 건 덤이고. “아이구…”, “진짜? 헐…” 그렇지만 대단한 장점도 있다. 앞날과 진로에 대한 물음을 우선은 틀어막을 수 있으며, 때로는 식사라도 한 끼 얻어먹을 수 있다는 것. 불쌍해 보이는 건 싫지만 공짜 밥은 좋다.

어떻게 살았다는 이야기는 종종 미래에 관한 얘기로 흘러간다. “어떻게 살았고요, 그래서 이렇게 살 겁니다. 그걸 위해 이런 노력을 하고 있죠.” 논리적인 인과관계로 선명한 장래를 설명해야만 할 것 같은. 하지만 내 구구한 과거에서 도출되는 건 절절한 꿈과 막연한 계획일 뿐이다. 별로 설득력이 없다.

그런 소리를 어쩔 수 없이 지껄여야만 하는 날이 있다. 그럴 때 “너 도대체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냐!” 같은 부모님의 타박은 오히려 익숙하다. 진짜 난감한 건 처음 본 사람과 마주했을 때다. 와 대단하시네요, 그런데 앞으로는 뭘…? 이렇게 악의 없는 눈동자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이런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실은 잘 모르겠습니다. 한 게 없다기엔 바쁘게 살았는데, 뭔가 했다기엔 남아있는 게 없거든요.

늘 돈을 번다고 뛰어다녔다. 하지만 언제나 수중에 쥔 돈은 기껏 며칠 술값 정도였다. 연극을 전공했으니 글을 쓰겠다고 했다. 밤새 머리를 쥐어뜯었어도 내 희곡과 단막극들은 아직 HWP 파일에 머물러있었다. 그러자 광고를 공부하겠다며 도망갔다. 거기서도 날밤을 까며 회의와 토론을 하고 로직을 뒤집었다. 그러나 내 기획서를 공모전에 입상시켜주는 AE를 만나는 일은 만무했다. 야심 찬 스타트업에서 마케팅 인턴을 한 적도 있다. 거기선 에어컨 없는 방구석에서 고양이 네 마리와 숙식하거나 인턴보다 늦게 출근하는 대표를 만나는 별일을 연달아 겪었다. 끝내 재직증명서도 월급도 없이 우당탕 뛰쳐나왔다. 재수생 시절부터 붙들던 학원 조교·과외·강사 일자리는 은근한 스트레스만 가득했다. 월급을 꼭 하루 이틀 늦게 주던 원장선생이나 수수료를 60%씩 떼어가려던 중개업체 아줌마들, 다시 만나면 꼭 한 번 멱살을 잡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미래를 물으면 나는 항상 뭔가 있는 척 둘러댔다. “열심히 사셨네요!” 이런 반응을 이끌자는 본능이었다. 껍데기에 비해 구리기 짝이 없는 알맹이를 애써 외면하며. 그러자면 어딘가 찔려왔다. 내 범박한 미래가 멀리서 팔짱을 끼고 혀를 차는 듯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


분명히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 가고 싶은 길도 있다. 앞으로 대체 뭘 할 생각이냐면, 바로 로
빈 윌리엄스다.

그는 열 살 때부터 나의 우상이었다. 모든 면에서 –죽음만 빼고[알라딘의 세 번째 소원은 지니를 자유롭게 해 주는 것이었다.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닮고 싶은 사람이며. 내가 연극을 전공하게 된 하나뿐인 이유다. 그의 장기이던 스탠드업 코미디는 내 오랜 꿈이다. 나는 독백 대사를 기가 막히게 처리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 <인섬니아>의 싸이코도, <죽은 시인의 사회>의 빠삐용 참스승 키팅 선생님까지도 해내고 싶다. <알라딘>의 지니 목소리를 절륜하게 울려내고 단편영화를 감독하고 연극을 연출하며 기깔 나는 시나리오도 쓰고 싶다.

그러나 누구에게든 실제로 이 말을 한다고 생각해보라.

“로빈 윌리엄스 아시죠? <죽은 시인의 사회> 보셨어요? 키팅 선생님이요, 저는 그 양반처럼 연기도 하고 연출도 하고 시나리오도 쓸 겁니다.”

‘스물네 살’ 남자애가 이런 막연한 소리나 주워섬기고 있다는 것은, 일곱 살짜리 아이가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다는 말을 하는 것과 같다. 오, 정말 대단하구나. 열심히 공부하렴. 그러고 보니 ‘열심히 공부’는 잊고 ‘대단하구나’에만 도취해 자란 건 아닐까. 그러니까 여기까지 온 거겠지.

 

아, 아무래도 좆됐다. 스물넷의 여름, <마션>의 주인공이 느꼈을 자기성찰이 귀납적으로 입증되고 있었다. 나는 결국 군대에 갔다. 금수저로 못 태어나 도피성 유학은 못 했지만, 일단 겨레의 늠름한 아들로 태어나[박목월 작사, 나운영 작곡, <전우>. 훈련소에서 질리도록 불러대는 군가다.] 도피성 입대는 해냈다! 아무 생각 없이 각개전투로 몸뚱이를 굴릴 수 있기를. 그러나 모두가 졸병으로 평등한 논산훈련소에서조차 달갑지 않은 형 대접을 받아야 했다. 두세 살 어린 친구들에게 ‘전역하면 뭐 하실 거냐는’ 질문들은 똑같이 날아들었다.

나는 다시 생각에 잠겨야 했다.

실패는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선명하던 꿈은 흐려져만 갔다. 힘겨운 날이면 어딘가를 올려다보며 자신을 다잡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발끝으로 발끝만 만지는 겁보가 되어 있었다. 그 대신 굳어진 건 어느 날 배겨 있던 언더독이라는 자의식이었다. 그것은 컴플렉스였다.

내가 사는 세상은 누군가에게만 허용된 어느 세계의 건너편에 지나지 않는다는 열패감, 서민 신분은 넘어서는 아이들만의 세련된 여유와 배부른 푸념에 대한 질투, 적어도 나는 허영이 아닌 진짜를 찾아왔다는 비틀린 자부심, 그리고 그 자부심조차 장담할 수 없어 해져버린 자존… 스무 살 이후 무럭무럭 자라온 이런 류(流)의 자각들 때문에 생겨난, 어디서나 고개를 굽히되 눈만은 치켜뜨고 오기로 포장된 자기연민을 악무는 것.

강박증처럼 들러붙은 이 컴플렉스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었다. 거름 냄새가 밤에도 진동하는 논산에서, 나는 침착해지기로 했다. 지금까지의 삶이 어디서부터 꼬였는지, 그러니까 어디서부터 맘대로 흘러가지 않기 시작한 것인지 짚어보기로 했다.

곧, 이것은 틀림없이 너저분한 실패의 기록이다. 그럼에도 이 쪽팔리는 이야기를 써내는 것은 이러한 인간형이 분명 도처에 있을 것이라는 짐작 탓이다. 그러니까 고맙다는 말보다 미안하다는 말이 입에 붙은 사람, “힘들다”라는 말을 무감하게 내뱉기 어딘가 부끄러운 사람, 간선도로를 달리는 불 꺼진 시외버스에서 문득 콧등이 시큰해지는 사람, 취미가 무어냐는 말에 한참을 고민해야 하는 사람, 함께 있어도 혼자 생각하는 사람, 걷고 나서야 생각하고 뒤를 돌아보는 사람. 그러나 다시 입을 다문 채 짐짓 담담한 척 걸어갈 줄도 아는 사람.

나는 그들의 어깨를 살며시 두드려 말을 걸어보는 것이다. 혹시 90년대 중반에 태어나셨나요? 우리 세대에서 한심한 사람은 당신뿐이 아니랍니다.

스물다섯의 짧은 번민이 우스워도 이해해주시라. 단 이것만은 약속할 수 있다.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거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다는 괜한 소리는 안 할 것이다. 행복한 일은 맨날 있다는 곰탱이의 그짓말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알고 보면 모든 것은 위대한 이들이 일찍이 말해놓았다. 우리는 그들의 태양에서 흑점 몇 개를 발견할 뿐이다. 다만 이렇게 항변해본다. 보통의 존재들이 늦더라도, 짧더라도, 걷고 나서라도 알게 되는 진실은, 그리고 그걸 찾아가는 과정은 분명 소중하다고. 면면히 흘러가는 매일과 계절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들. 기만과 자기 포장으로 뱉어낸 나의 말들 대신 글이라면 조금 더 솔직해질 수 있으니까. 무엇보다,

뻘짓을 혈기로 얼버무리고, 개소리를 객기라며 갖다 붙일 수 있는 20대라는 면허가,

나에겐 아직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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