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한국)의 옛 건축은 경관을 함께 보라 권한다. 자연과의 조화는 세계관의 반영이었고, 다시 세계관에 영향을 주었다. 서구의 특징이 직선과 질서, 비례와 대칭처럼 통제된 아름다움이었다면 조선 건축의 특징은 곡선과 비대칭 속의 균형에 있다. 물론 다 그렇진 않다. 그리고 그런 형식, 즉 그리스 조각의 완벽한 육체도 실은 정신의 강조였다. 중요한 것은 이런 표현차가 기술 격차 때문만은 아니란 점이다.

동서를 막론하고 시대와 기술의 진전에 따라 완성도가 강화되진 않았다. 그리스·로마 미술이 중세보다 세밀하듯 도교의 영향을 받은 한나라보다 진나라 병마용이 사실적이다. 그리스·로마에 비견될 정도로 통일신라의 조각은 정교했고, 역시 이때의 불상이 고려 때보다 세밀하다. 바꾸어 말하면 후대에 덜 정교해지기도 했는데, 이는 못해서가 아니라 안했기 때문이다(개별 미술가의 작품 경향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비가 오면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섶다리야말로 위대한 건축이란 얘긴가? 그 자체로 대지미술일 수 있으니까?

정서의 건축을 얘기하려는 은유이니 공들여 준비한 반론은 폐기해줬으면 한다. 술기운이 있으면 모닥불을 찾는 습성에 대해 생각하다가 ‘나무의 온기’ 때문이라는, 설득력 높은 가설을 세웠다. 마른 나무를 태워 얻는 온기는 다른 보온장치로 얻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탄내에 쩌는 것도 다르지만). 흙으로 그릇을 빚어 물과 음식을 담아온 인간은 흙과 나무로 된 건축물에 들 때 비로소 스스로가 생명체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임인건의 [피아노가 된 나무]와 박후기의 『종이는 나무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가 괜히 아련한 것이 아니다. 피아노와 많은 악기들, 종이와 집이 모두 나무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니 얼마 전엔 오남리의 모 인사에게서 손수 만든 나무의자를 선물 받았을 때 감동도 함께 받을 수밖에 없었다.

“내 양말 빵꾸났네”로 시작하는 동요에서 서글픈 정감을 느끼는 나는 지금도 헤진 옷과 헤어지기 싫어한다. 학자와 기술자의 활동수명을 연장시킨 안경의 공로에 답하는 의미로 안경 하나를 25년 넘게 쓰기도 했다. ‘옛날이 좋았지’가 아니다. 과거로 돌아가면 행복하게 살 것처럼 회고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다만 탈-효율성을 위한 슬로시티마저 도구적 효율성에 봉사케 하고, 경쟁과 교환가치에 둘러싸여 있다는 충고에 둘러싸여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자신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시대엔 다른 생각의 건축관이 필요하다.

“로마제국의 몰락은 끝없는 공격성을 지닌 로마 제국주의에 그 원인이 있었다.” 『로마제국 최후의 100년』의 마지막 문장이다. ‘식칼을 갖고 노는 철부지가 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부에서 말하듯 욕망에 욕망으로 맞서 해결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검소한 생활은 절약하여 통장부자가 되기 위함이 아니라 다른 삶의 선택이 필요하다. 한 끼 정도는 찬밥을 당연시하고 “백 원만!”과 “한 입만!”을 입에 달고 살던 시절엔 돈 없이도 잘 놀았는데 요즘은 아이들도 돈이 있어야 놀 수 있다. 눈 내린 날, 비료포대를 타고 싶어도 재료와 장소를 찾을 수 없어 포기해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니 불을 피우고 둘러앉고 싶지만 안 될 일, 특히 새 잎과 새 풀이 돋기 전 봄이 산불에 가장 취약하다. 그 시기만 잘 넘기면 산은 꽃-숨을 쉰다. 이 시기만 잘 넘기면….

 

* 플라스틱 피플(Plastic People)흑백사진

겨울이 오는 소리를 본 적 있는가? 맡아본 적은? 보이지도, 만질 수도 없지만 눈 안에 그림을 그리고 살갗에 소릿결을 남기는 음악에선 가능하다. 카메라의 움직임만으로 서술이 가능한 영화처럼 음악에게도 말이 필수적이진 않지만 그 힘을 증명한 노래들이 있다. “책을 접어놓으며 창문을 열어라는 가사로 행동을 동반한 영상의 위력을 지니게 된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를 쓴 이가 동물원의 김창기다. 그는 한대수를 알고 있었다. 해물찜을 앞에 두고 장막을 걷어라노래했던 행복의 나라에 찬사를 보냈던 그다. 지난봄에 떨어진 벚꽃을 다 세지 못하는 것처럼 이런 성공사례들을 다 적을 수는 없다. 평생 일거리 떨어질 일이 없을 테니 손이 많은 선인장에게라도 부탁해야 할지 모른다.

그런데, 애초에 음악 자체가 소리라서 청각적인 표현은 적은 편인데 다소곳한 두 남녀인 플라스틱 피플은 걸음을 더 내딛었다. “숯 공장 마을검정 시냇물이 펼쳐내는 흑백의 아름다운 영상에 놀라지 않았다. 이미 그런 곡들을 여럿 알고 있었다. 하지만 겨울이 오는 소리 구름이 되어가 흐르는 순간, 그림은 소리가 되고 소리는 다시 그림이 되었다. 이 노랫말과 선율, 감정을 움직이는 코드와 사운드의 전환이 맞물리며 눈 맑은 풍경이 펼쳐지기 때문에 흑백사진을 기억하는 건 아니다.

비 오는 날, 처마에서 뛰어내린 물방울들이 마당에 파놓곤 했던 홈은 옛 지붕을 걷어내면서 함께 사라졌다. 많은 것들이 잊히고 있다. 짧은 가사를 아무리 훑어봐도 사라지는 것들을 사랑하라는 말은 찾을 수 없다. 하지만 이젠 사진으로만 남겨진 것들에 대한 애틋함이 피어난다. 무엇보다 이 곡을 들을 때마다 비스듬한 겨울햇살과 찬 공기를 담아온 종이봉투가 열린다. 봄과 여름에 아래로 향했던 시선은 뿌리모양이 된 가지로 겨울을 빨아들이는 나무와 눈 내리는 깊은 하늘을 떠올리며 높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모퉁이 길을 돌아 나오다가 고양이를 또 만났다. 아까 그 친구가 여기에서 또 사냥을 시도 중인지, 아니면 비슷하게 생긴 동료인지 확실치 않지만, 이번에도 새를 노려보다가 허탕을 치고 슬그머니 자리를 뜨는 중이었다. 이쯤 되니 우리 탓이 아닌가하고 미안해하면서 일주문을 바라보았다. 새로 지은 데다 덩치도 커서 ‘덩그러니’ 서있는 일주문은 보는 이 없는 한밤에 두 다리로 걸어 다니다가 발목에 묻은 흙을 미처 털어내지 못한 모양이다. 그 아래엔 겨울이 되기 전까지 물 입자들이 롤러코스터를 타고 신나게 소리치며 뛰어내렸을 작은 폭포와 개울이 고체가 되어 잠들어 있었다.

이제 포장도로를 걷는 일만 남았다. 견성암과 차가 다니는 길까진 3km 거리다. 걸어서 40분 정도라는 얘기니 멀지 않지만 따져보면 3km는 백두산의 수직거리보다 길다는 사실도 떠올려보았다. 다행히 그 무료함을 달래주는 동지들이 있다. 변두리 공장지대의 개들은 보안요원의 역할을 맡고 있기에 낯선 이가 지날 때마다 합심하여 짖어댄다. 열심히 외쳐대며 동료들과의 연대를 한목소리로 주장한다. 그들이 호의로 가득한 사람을 몰라본다는 사실을 처음엔 전혀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금세 낙담하고 포기하는 데에도 능숙해졌다. 환심을 사려 애쓸 필요가 없다. 행인의 마음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치 지상에 사는 개들을 대표하여 자신들의 충실성과 용맹함을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계속 짖어댈 테니 말이다.

독정리 중국요리집에서 맛집 기행으로는 절대 맛볼 수 없는, 산행을 마치고 먹는 동네 짜장면 맛에 감읍하며 견성암의 이질적인 조각상을 떠올렸다. 대수인가. 짜장면이 중국엔 없다는 낭설이 퍼진 적이 있는데 중국은 온갖 종류의 짜장면 천지다. 『화교문화를 읽는 눈, 짜장면』에는 중국인들이 한국에도 짜장미엔이 있냐며 신기해하는 대목이 나온다. 웃긴 건 한국의 불고기도 일본 양념과의 퓨전이면서, 일제가 보급하여 전통방식의 자염을 대체한 천일염을 먹으면서, 일본의 기무치를 무시하는 태도다. 나아가 외래종의 피해사례는 잘 알려져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미국에서 한국 식물을 특정 목적으로 가져갔다가 낭패를 본 사례도 많다는 사실을 아는가. 오만한 개입이 아니라면 섞임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아까시나무나 코스모스뿐만 아니라 나팔꽃, 달맞이꽃, 채송화, 토끼풀, 해바라기 모두 외래종 아닌가.


버스를 타고 석봉달봉 아래 출발점으로 돌아가는 데에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비껴비껴”라는 사이렌 말풍선을 달고 다니는 구급차에겐 훨씬 짧은 길이다. 그래도 몇 시간 동안 인터넷을 해도 쓸모없었던 것에 비하면 가치 있는 노동이었다. 최근에 해외여행 정보를 얻으려다 대부분의 블로그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곤 사진들과 한줄 코멘트뿐이었다. 그래서 뭐가 어땠다는 거냐고 묻고 싶어지곤 한다. 무수히 쌓아놓은 사진 자랑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뭘 보고 왔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발명품들은 흔히 진지한 일로부터 우리의 관심을 빼앗아가는 예쁘장한 장난감인 경우가 많다. 그것들은 개선되지 않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개선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아주 오래 전에 쓴 글이다.

폭설이 밤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겨울이 떠나면 경비실 옆 연초록 나무가 주황빛 가로등 빛을 받아 샛노란 은행나무처럼 보이는 새벽이 온다. 어느새 여름이 오는 골목에 서게 될 것이다. 그러다 어느 동요처럼 매미가 열렬히 소리 내어 과일을 익히고, 건강하게 누런 햇살에 이파리 색이 짙어지면 열매는 속에 감춰 품어온 빛깔을 드러낸다. 그리곤 이내 가을의 화려한 몰락이 시작된다. 겨우 한 달을 사는 벌에겐 긴 시간이지만 고작 12개의 보름달이 뜨는 동안 일어나는 일이다. 고대 역사서가 춘추(春秋)인 것이 새삼스럽다. 이렇게 시간은 어디론가 가는데 자주, 어쩌면 영원히 길은 보이지 않는다. 나는 이것이 인생이라 여긴다.

참, 생각해보니 지팡이를 두고 오지 않았다. 기억의 길로 돌아·가야 한다. 동반자의 어깨너머로 오후가 저물고, 누군가 두고 간 지팡이가 몸을 비스듬히 기대고 바위를 떠받치고 있었다. 지팡이에게 인사를 올리고 땅에 심기라도 하듯이 나무 옆에 고이 세워두고 작별을 고하며 이러저러한 상념도 함께 내려놓았다. 지팡이는 다시, 지식과 예술이 그렇듯이, 이 길을 오를 다른 누군가와 동행할 것이다. 나무지팡이에겐 그만한 자격이 있다. ■

 


반동의 동반자 1편 : http://2-um.kr/archives/5991
반동의 동반자 2편 : http://2-um.kr/archives/6027
반동의 동반자 3편 : http://2-um.kr/archives/6054
반동의 동반자 4편 : http://2-um.kr/archives/6087
견성암 가는 길 1편 : http://2-um.kr/archives/6123
견성암 가는 길 2편 : http://2-um.kr/archives/6132
견성암 가는 길 3편 : http://2-um.kr/archives/6144
견성암 가는 길 4편 : http://2-um.kr/archives/6213
견성암 가는 길 5편 : http://2-um.kr/archives/6314

필자가 2009년부터 시작하여 아직도 쓰고 있는 책의 한 부분으로 ‘사회변혁, 녹색사회를 지향하는 사람의 이상한 동네여행기’입니다. 삶과 자연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바뀌지 않으면 세상도 결코 바뀌지 않음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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