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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다섯, 담담하고 유쾌하게 걸어가는 청춘실패담

매주 월, 목요일에 연재됩니다.


그날은 유독 길었다. 많은 일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긴 하루였다. 새벽 세 시에 잠을 깼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전날 저녁에 장어를 사주셨다. 아주 오랜만의 일이었다. 일단 민물장어를 먹은 기억이 2005년 이래로 없었다. 횟집 스끼다시로 깔린 아나고나 점심 장어탕은 있었지만 정렬하듯 몸을 누인 장어를 구워서 석쇠 가장자리에 예쁘게 세워놓고 길게 썰린 생강과 함께 집어먹는- 가게에 간 건 정말 오래되었었다. 우리 집이 서울에서 수원으로 밀려난 이래 외식 메뉴의 심리적 마지노선은 VAT 포함 3만 원이었다. 누가 정해놓은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먹고 싶은 것 시켜라”라는 아버지나 엄마의 말에 알아서 적정한 선을 지켰다. 어차피 순댓국집이나 중국집에서 그 이상 값을 치르기도 어려웠고 셋이서 다 같이 외식하는 일은 좀처럼 없었으니 그만하면 충분했지만.

장어는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밥값이 십만 원쯤 했으니 의당 그래야 했다. 바깥에서 먹는 음식 가격과 단백질 함량은 비례하기 마련인데, 그 공식에 충실한 고단백 보양 음식이었다. 일 년간 홀로 공부하며 먹어온 게 떡볶이나 삼각김밥 같은 값싼 탄수화물 덩어리들이었으니 몸 역시 의당 예민하게 반응했다. 덕분에 오랜만에 편안하게 잠들었고, 아주 개운하게, 아주 일찍 일어나버린 것이다. 잠은 더 오지 않았다.

시험장에 도착했는데 뭔가 허전했다. 도시락을 놓고 왔다. 국어와 수학을 그럭저럭 풀고 나니 점심시간이었다. 하릴없이 시험장을 배회했다. 익숙한 목소리가 스쳐 돌아보니 평촌에서 함께한 ‘프렌즈’의 남자애가 있었다. 말없이 그를 안았고, “어디서 공부했어?” “그냥 혼자.” 짧은 대화를 나눴으며, 김밥을 한 개 얻어먹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가방을 뒤져보니 까먹지 않고 챙겨온 건 커피 세 캔과 초콜릿뿐이었다. 시간이 넉넉한 김에 전부 목구멍으로 밀어 넣었다. 당분과 카페인을 동력으로 이건 다 액땜이며 오히려 허기가 주는 서러움이 나를 자극하리라는 합리화 기제를 작동시키면서. 하지만 부작용은 곧바로 나타났다. 의식은 있었지만 또렷하지 않았다. 영어 듣기평가 두 문제를 멍하니 뜬 눈으로 날렸다.

약속도 안 했는데 아버지가 차를 가지고 나와 있었다. 옆을 둘러보니 다들 자기 부모 찾는다고 바쁜데, 나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뽑을 때부터 시끄러웠던 2003년식 디젤 코란도였다.

– 도시락 왜 놓고 갔니.
– 깜빡했어요. (아버지도 참, 일부러 놓고 갔겠어요.)
– 어디 가서 저녁 먹을래?
– 그냥 가요.
– …시험 어떻게 봤니.
– 글쎄요, 모르죠.

아버지는 느이 누나는 시험을 보고 나면… 따위의 얘기를 이번엔 하지 않으셨다.

나는 입을 여는 대신 옵션 하나 없었던 차의 카 오디오에 의존하기로 했다. 동그란 버튼을 도로록 돌리면 라디오 주파수가 바뀌었다. 코미디언 정형돈이 잠정 은퇴했다는 소식, 박근혜 대통령의 월간 지지율이 41%라는 소식 다음으로 오늘 수능의 난이도가 어쩌구 하는 뉴스만이 들렸다. 불수능도 물수능도 아닌 ‘끓는 물 수능’이라나. 말은 참 잘들 지어내는구나.

집에 도착해 놓고 간 도시락을 까먹었다. 가만 보니 저번 수능 때 썼던 것이었다. 하긴 엄마는 이런 거 잘 안 버리니까. 다 식었는데 맛은 있었다. 원래 속이 없는 걸까, 시장해서 맛있을 수밖에 없는 걸까? 아직 덜 멈춘 합리화 기제로는 후자가 좀 더 설득력이 있는 것 같았다. 꺼내기 싫던 수험표를 뒤집어 가채점을 했다. 맥없이 등급 컷을 확인하고만 있을 때 카톡이 하나 왔다. 논술 선생님의 반에서 만나 사회탐구 과외를 해줬던 여학생이었다. 10월에 일찌거니 수시에 합격해 수능이 의미가 없어진 친구였다. 기출문제를 빳빳이 뽑아 들고 들어선 집에서 풍기던 이상한 기류. 그 집에서는 곧 오늘부터 안 나오셔도 된다는 얘기를 해 줬었다. 일부러 나를 자른 것도, 내가 뭘 잘못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 그 기분을 형언하기 어렵다. 통보를 하는 학부형의 눈빛이, ‘이제는 당신이 필요하지 않아’였다면 열이라도 받았겠지만, ‘아이고, 한 달 더 조마조마하시겠네’였기 때문이다.

– 쌤, 수능 잘 봤어? 나 오늘 K대 지리학과 합격!
– 한국지리 가르쳤더니 지리학과 붙었냐. 가면 내가 헛소리한 거 다 들키겠네 ㅋㅋ
– ㅋㅋㅋ 내년에 신촌 가면 밥 사나요?

아… 수업하면서 그녀에게 Y대 사회학과를 가겠다느니 S대 인문학부를 가겠다느니 하는 소리를 했었던 것 같다. 채점 결과는 너무 분명했다. 둘 다 지원하지 못할 것이다. 물론 옆 E대는 더더욱 못 갈 것이다.

– ㅋ 물론. 마마1 신인상 투표나 해주라. 트와이스 때문에 여자친구가 밀리잖아. 얘들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참 나.2

1 MAMA.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
2 2015년 여름쯤부터 이들은 비 오는 날 행사 무대에서 <오늘부터 우리는>을 부르다 8번 넘어지는 직캠 영상으로 화제가 되었었다. 이 사건으로부터 나는 영세 기획사 출신의 언더독 그녀들에게 완전히 이입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해 신인상은 JYP가 기획한 모두의 총아 트와이스에게 돌아갔다. 나 참.

휴대폰을 들고 조용히 집을 나섰다. D와 친구들을 만났다.

– 고생했다. 이제 돈만 모으면 되냐?
– …아, 오늘 가르치던 여자애 K대 수시 붙었대.
– 진짜?
– 방금 카톡하더라.
– 뭐 네가 더 좋은 데 갈 거 아니야?
– 응…

나는 그를 비롯한 절친들 셋과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했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톡에서 모스크바, 아니 프라하, 파리, 리스본까지 떠나는 여행. 에펠 탑에서 크리스마스 이브를 보내고 세상의 서쪽 끝에서 그해의 해넘이를 구경할 것이었다. 물론 전제는, 이마에 붙이고 자랑할 법한 수능 성적표를 받아서 Y대나 S대의 문과에 붙어놓고 그 간판으로 과외 아르바이트로 여행 자금을 끌어모으는 것이었다.

많은 말을 하는 대신 오랜만의 술에 빠져들기로 했다. 우리는 그날 보드카 한 병을 먹고, 그다음엔 소주를 마셨다. n분의 1을 한 술값 계산이 머릿속에 서고 나서였다. 집에 어떻게 돌아왔는지 기억이 없다. 액땜이 아니라 복선이었을까. 나는 두 번째 수능을 망쳤다.

*

사실 스무 살의 일 년을 생각하면 여름의 날들만이 떠오른다. 학원에서 훌쩍 지낸 봄과 닥쳐든 시험으로 정신없었던 가을, 그리고 절망 속에 지낸 겨울과는 달랐으니까. 부셨던 계절의 하늘빛은 두 계절 사이를 충만하게 채웠다. 꼭 고개를 치키지 않아도 하늘이 걸음마다 파랗게 들썩이며 어른거렸다. 비록 독서실로 출퇴근하는 보통 날들은 눅눅했고 그것이 청량함 뒤에 숨은 여름날의 또 다른 갈맷빛 정체이기도 하지만, 그만하면 버틸 만했다. 어느 날 전까지는, 그러니까 낮잠에서 일어났을 때 낯설게 짙어진 다섯 시쯤 창가에서 여름이 가버렸다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 나는 분명히 행복해하고 있었다.

수능 날짜는 대강 멀리 있고, 아무도 내 멱살을 쥐고 끌어다 책상에 앉히지 않는다면 혼자 공부를 하겠다는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핑계를 하나 더 대자면 ‘마른 장마’란 말이 슬슬 회자하기 시작하던 맑고 화창한 날들이었다는 것. 어떻게 에어컨을 껴안고 독서실에만 붙들릴 수 있을까? 그 무렵의 일상에서 공부는 절반일 뿐이었다.

공부했죠, 라고 어물거리기에는 어딘가 찔려오는 그 여름의 일상은 이랬다. 5분 간격으로 맞춰 놓은 알람에 간신히 깨어 독서실로 걸어갔다. 빨리 걸어도 50분이 걸렸다. 흠뻑 난 땀을 말리고 자리에 앉으면 8시 반쯤이었다. 앉아서 한 시간쯤 영어단어를 외우면 체온이 식고 긴장이 풀렸다. 고개를 젖히고 잠든 뒤 일어나면 배가 고팠다. 나가서 밥을 사 먹으면 거의 정오가 되어 있었다.

주말에는 더했다. 점심때쯤 조교로 일하던 학원으로 걸어간다. 논술 모범답안을 복사해주거나 아이들 옆에서 답안지를 봐 주었다. 농담을 하나씩 던지며 시간을 허비하다 보면 두 시간이 지나 있었다. 그리고 다시 친구네 집으로 걸어가 수업을 했다. 선풍기 옆에 가까이 붙어 준비해준 다과를 비우고, 일주일에 한두 번쯤 모르는 문제에 “문제가 이상한데? 개념하고는 큰 관계가 없으니 넘어가자.” 같은 대사를 들먹여준 뒤 수업을 마쳤다. 다시 걸어 독서실로 복귀해 어영부영 닥치는 대로 공부를 한 뒤 저녁쯤 여학생의 집에서 수업했다. 나는 말괄량이 같았던 그 친구의 잡담에 반갑게 호응해 주었다. 서로 방탄소년단과 여자친구를 전도하는 것으로(정말이지 소용없는 일이었다. 지금도 그녀에게 어떤 말로 걸그룹을 ‘영업했는지’는 쉽게 상상할 수 있지만, 그 친구가 나에게 소개한 BTS의 온갖 매력은 조금도 기억나지 않는다.) 수업의 절반을 때우고 나서 다시 독서실로 돌아오고는 했다. 이러면 밤 열 시였다.

일단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는 걸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공부란 다른 재능이 시원찮음을 깨닫고 하는 무난한 길이어서일까. 버스를 타면 시간을 아낄 수 있었겠지만 절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독서실, 학원, 과외선생 노릇을 하던 집들은 모두 고등학교 시절이 녹아 있는 근처의 익숙한 동네였다. 그 사이에서 이어폰을 끼고 돌아다니는 동안에는 다른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겉으로는 버스요금 절약이나 운동을 빙자하기는 했다. 그러나 만약 같은 아파트단지에 끝내주는 독서실과 나에게 사회탐구 점수를 맡길 학생들이 있었다면 나는 질식해 죽었을지도 모른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D를 만나 유럽 여행을 계획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인터넷 강의용으로 구입한 중고 태블릿을 들고 구글 맵을 뒤지며 예산과 경로를 짜며 들떴다. 짙푸른 캠퍼스에 그려질 미래, 가끔 연락하던 여자애들, 그리고 ‘여자친구’ 말고도 붙잡고 매달릴 수 있던 무언가. 유년의 모든 걸 유라시아 어디쯤에 버려 놓을 수 있는 여정. 시베리아 침엽수림에 그런 침전물들을 좀 버린다고 해서 티가 나진 않겠지.

 

물론 그것은 수험이라는 피상 아래 붙은 뜨끔거리는 불안과 열패로부터의 도망, 편안으로의 회귀였다. 나는 그러면서 분명한 행복감을 느끼고 있었던 게다. 실속은 없으면서 그 모든 게 보장된 듯 기대에 젖어있었다. 공부가 아니라 아르바이트로 바빴고 실제로 앉아서 몰두하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나의 나날은 재수생의 일과 치고 굉장히 가쁘게 돌아갔다. 주말의 마지막 과외를 마치고 돌아오면 ‘오늘 일했다!’ 같은 후련함이 들었다.

그러나 나에게도 자기연민만 가득한 건 아니었고, 냉정하게 현실을 판단할 이성이 있었다. 수능을 망친 건 전날 먹은 장어나 십 년 넘게 장어를 못 먹었던 형편 때문이 아니며, 내 헛소리에 호응해 준 과외와 학원의 1997년생들 탓도 아니고, 방탄소년단의 리더 RM(당시엔 ‘랩몬스터’였다)를 좋아하는 건전한 이유를 또박또박 얘기할 줄 알던 여학생 때문도 아니며, 함께 여행을 떠나자던 D나 다 같이 여권 사진을 찍으러 하루를 낭비한 그리운 길동무들 탓은 더더욱 아니다. 나도 그것을 모르지 않았다. 멋진 여름날의 시간을 멋지게 허비하면서도 수능을 망칠 줄 몰랐을까? 물론 모르면서도, 알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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