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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다섯, 담담하고 유쾌하게 걸어가는 청춘실패담

매주 월, 목요일에 연재됩니다.

 


그런데 이런 ‘말의 변비’는 모순을 가지고 있다. 필요할 때는 말문이 막히지만 필요하지 않은 말은 줄줄이 내보내기 때문이다.

연극으로 입시를 하겠다고 했을 때, 나는 연기를 주로 가르치는 학원을 찾아갔다. 연기를 배우던 친구가 소개해준 곳이었다. 남자 선생님이 연출을 가르쳤는데, 그는 면접에 대비한다며 나에게 질문 여럿을 퍼부었다.

왜 연출을 하고 싶니?
왜 이 학교에 가고 싶니?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니?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뭐니?
제일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니?

나는 거의 모든 물음에 할 말을 얼른 찾지 못했다. 185cm는 넘어 보이는 연극배우 출신 선생님의 체구와 낮고 묵직하게 울리는 목소리 앞에서 눈알을 좌우로 치키며 콧소리만 앵앵대었다. 일단 첫 번째 질문에 대하여 로빈 윌리엄스가 꿈에 나와서요, 라고는 할 수 없지 않나? 그건 진심이었지만 누구라도 한심한 대답이라고 생각할 것이었다. 이럴 때를, 그러니까 취향이나 선택에 대한 의구심 어린 질문을 받을 때를 대비해, “저는 어렸을 때부터…”란 도입부를 만들어놓기는 했었다. 그러나 그다음은 역시 시원스럽지 않았던 것 같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나에게 던져진 물음들 가운데 대부분은 자아를 만드는 데 가장 기초적인 것들이었다. 어떤 질문엔 할 말이 없진 않은데 어떻게 표현할지 몰라 답답했다. 또 어떤 질문엔 “생각이 안 나요.”라고 했지만, 적확히 말하자면 ‘몰랐다’.

 

선생님은 다음으로 시놉시스 수업을 했다. TV, 물통, 다리 같은 전혀 무관한 단어가 앞에 놓였다. 제시어를 모두 사용해 한 문단의 줄거리를 만들면 되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 머릿속에서 금방 찾아내 써먹을 수 있는 것들은 별로 없었고, 출처도 굉장히 좁았다. 어찌어찌 이야기 한 줄을 만들어 써내니, 선생님은 이 이야기를 어떻게 쓰게 되었는지, 주제는 무엇인지 따위를 물었다. 이번에는 할 말이 너무 많았다. 한 토막 시놉시스를 설명하는 데 십 분도 넘게 장황한 설명을 했던 기억이다.

그는 내 말을 다 듣고 “군더더기가 좀 많다. 시놉시스도 네 설명도.”라고 했다. 나는 바로 수긍하고, 왜 그런지에 대한 부연도 들이밀었다. 머리로는 인정했지만, 배출구를 찾아낸 목구멍은 이성과는 상관없이 곧장 반응했다. “아, 근데 안 하면 안 되는 얘기들 같아서 그랬는데요.” “그럼 필요한 얘기를 걸러내야지.”

나에게는 그 말이, 억눌려 쌓인 것을 배설하지 않으면서도 대화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완곡한 조언으로 들렸다. 찔린 것이다. 어떻게 안 거지? 나를 벌써 다 파악했을 리가 없는데, 라고 생각하니 약간의 적개심도 생겼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틀린 얘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이내 부끄러워졌다.

 

보통 사람들은 말할 때 사고를 하지만, 컴플렉스 환자들은 그러지 않는다. 상상하고, 삐딱하게 해석하고, 되는대로 내뱉으려 한다. 조금이라도 공격적인 언사를 듣는다면 그 말이 정당하지 않은 구석을 조금이라도 찾아내려고 하며, 특히나 그 사람의 인신에서 가장 당위성이 적은 구석을 이 잡듯 발견하려 애를 쓴다. 이를테면,

‘건방진 중산층 놈, 니가 뭘 알아?’

안타깝게도 이 대사는 속에서 백 번도 더 되뇌어 본 것이리라.

이것이 컴플렉스의 증상인지 컴플렉스의 원인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아마 둘 다일 것이고 악순환만 거듭될 것이다. 말해야 할 것을 숨기니 억울하고, 말하면 분위기가 싸해질 것을 내놓아버리니까 말이다. 집에서는 아무리 힘을 줘도 꿈쩍 않는 아랫배가 버스만 타면 살살 아프지 않던가.

2015년 말에서 2016년 초의 환경이란 그랬다. 뉴캐슬은 2015-16시즌이 반환점을 돌 때 19경기에서 단 17점의 승점을 따냈다. 변비라면, 두 경기에 한 골 넣기도 어려웠던 이때 뉴캐슬의 모습도 아주 적당한 비유가 될 것이다. 무한도전과 박명수는 전성기의 힘을 회복하지 못하고 10% 남짓한 시청률에 머무르고 있었다. 축구도 코미디도 이제 보기 괴로운 일로만 되어가고 있었기에, 나는 다른 어떤 배출구를 찾지 못했다. 생각에 대한 생각과 걱정에 대한 걱정은 입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머리통을 대류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서울에서는 지하철역에 우산을 쓰고 들어가거나 내려야 할 곳보다 한 정거장을 지나서야 정신을 차리는 일이 많았고, 떠나간 시베리아에서는 횡단 열차 침대칸의 아늑함과 파도가 얼어붙은 바이칼 호수의 깎아지른 얼음결에 넋을 놓고 있다가도, 현상을 해결하는데 아무런 상관이 없는 걱정들이 엄습하고 친구들의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며 예민한 목소리만 카랑카랑해지기만 했었다.

*

하지만 나는 별안간 대학에 합격하고 만 것이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사라진 듯 보였다. 나는 후련했고, 시원했고, 무엇보다 진심으로 안도했다. 몇 년간 살얼음판을 걷다가 맨땅을 밟은 듯한, 온 하반신에 힘을 주지 않아도 나아갈 수 있다는 느낌. 비로소 평범이라는 소중한 것을 얻었다는 생각이었다. 이제 나도 말할 수 있고, 솔직해질 수 있으며, 어쩌면 호방한 사람이 되어, 그래서 남자애들뿐 아니라 여자 친구들과 선배들에게도 인기를 얻을 수도 있으리라. 조금 말실수를 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명문대생이니까.

합격 통보를 받은 날, 우리는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옮겨갔다. SNS에 합격자 통보 화면 캡처를 올리지 않았다. 평상시 인정욕구가 조개탕 끓듯 쉬이 넘쳐흐르는 것에 비하면 아주 놀라운 자제력이었다. 부모님과 친한 친구들 몇 명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로밍할 돈도 끌어다 여행 경비에 보탰었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여행의 동료들, 평범한 우리 동네의 평범한 길동무들이 발렌타인을 사 왔다. 200루블짜리 파스타와 150루블짜리 하리보 젤리를 안주로 삼자며, 속을 달래줄 우유 한 병과 함께. 조촐하지만 무엇보다 충만하게 녀석들은 나를 축하해 주었다.

다만 우유인 줄 알고 사 왔던 하얀 액체는 사실 꾸덕꾸덕한 액체 요구르트였다. 뭐가 어떻단 말인가, 그때도 상상 변비 환자였던 나는 거리낌 없이 여남은 숟갈을 퍼먹었다.

내 변비는 아주 멀끔하게 사라지고 있었다. 이제 지하철역에 들어가기 전 우산을 접을 수 있을 것이었다. 답답함으로 가득했던 내 유년 시절과, 따뜻한 우유를 마시듯 부드럽고 달콤하게 이별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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