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일이면 자란다는, 오월 넘기면 질겨서 안 된다는 열무. 자연이 이끄는 대로  여기서 겪으며 배운 대로 유월이 오기 전 열무를 뽑고 김치를 담갔다. 그리 많이 심지는 않았는데 산골부부 두 사람 손발이 움직여도 뽑고 다듬고 씻고 절이고 무치기까지 하루가 훌쩍 지난다. 꽤 많이 힘이 든다.  김치 만드는 노동은 언제나 그런 법.

농사짓고 거두어 갈무리하기. 참으로 귀하고 소중한 일임을 몸으로 마음으로 알게 된 것 같다고 여긴 때가 있었다. 그렇기에 철없는 귀촌살이를 담아 <이렇게 웃고 살아도 되나> 같은 책도 참말 용기 있게 펴내기도 했다.

 

산골에 살자면 여기서 사는, 계속 살아야 하는 의미를 찾자면  자연의 시간 따라 끊임없이 몸을 움직여야 하는데, 그래야 맞는데 언제부턴가 그 노동이 쓸모없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먹고 살’ 반찬거리는 조금 생길지언정 ‘먹고사는’ 일에는 당최 도움이 안 되는 듯하고, 사람 그림자는 없이 오로지 땅만 하늘만 바라보며 쳇바퀴처럼 몸을 부리는 시간들이 왠지 ‘몸부림치는’ 순간처럼 다가왔다. 한동안 그 작은 몸부림마저 접어 버렸다. 몸 노동을 그친 대신 진한 감정 노동이 뒤따랐다.

 

산골살이 일곱 해를 넘겨서야 나도 모르게 어느 날 문득 찾아온 이 마음은 대체 ‘귀촌 사춘기’인가, ‘귀촌 갱년기’일까 혼자 우스개처럼 생각도 해 보았으나 그 정체를 알 도리는 없이 시간은 흐르고 열무는 쑥쑥 커 갔다.


열무 밭은 옆지기가 고이 만들었고 열무 씨는 동무가 와서 뿌려 주었고 물은 하늘이 비님에 실어 보내 주었다. 싹 한번 제대로 쳐다보지 않던 나는 열무가 다 자란 이제야 그 앞에 선다.

쏙쏙 잘 뽑힌다.  살갗을 따갑게 건드리는 이파리가 밉기보다는 참 싱그럽고 좋다.  얇고 길쭉한 뿌리한테는 미안하고도 고마운 마음이 든다.  솎아 주기를 하지 않아서 다닥다닥 붙어 자라느라 힘들었을 텐데, 이렇게 제 몫을 다해 주었으니.

한 이랑쯤 되는 열무를 좍 거두고 보니 밭이 훤하다. 마음까지 흐뭇하게 시원하다. 내 마음에 뿌리내리려 기를 쓰던 어두운 감정 덩어리들도 열무 따라 어느만큼은 뽑힌 듯한 느낌. “느낌이 중요해~ 난 그렇게 생각해~♪” 뭐, 요런 노래도 떠오르면서^^

시간이 지나 푹 잦아든 열무김치를 맛보니 아삭아삭하고, 달지 않게 맛있다. 이걸 맛나게 먹어 줄 얼굴들이 떠오른다.

열무가 자라고 거둬야 하는 때가 자연의 시간표처럼 정해져 있듯이, 귀촌 사춘기이든 갱년기였든 그게 뭐든 사람 마음을 파고드는 감정도 다 찾아오고 떠나는 때가 있기 마련일까. 아… 돌고 도는 인생이라더니 뭔가 변증법스럽게시리 뒤늦게, 새삼스레, 또다시, 느낌이 온다. 알 것도 같다. 자연에 기대어 농사를 짓고 먹을거리를 거두어 내 살림을 꾸리고 다른 이와도 함께 나누는 일. 그거참, 쓸모 있는 노동이자 삶이라는 것을!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어쩌다(실은 자주) 내가 보낸 오늘 하루가 처량할 만치 하찮게 느껴질 때면 이 책 표지를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시장 상품 인간을 거부하고 쓸모 있는 실업을 할 권리’

부제가 참 멋들어진 이 책.

‘빼앗기고 잃어버린 인간 능력과 창조적 삶을 회복하기 위해 쓸모 있는 실업을 할 권리를!’

뒤표지에 있는 글귀도 엄청 와 닿던 이 책.

열무김치 한 가닥 입에 물고 찬찬히 책 제목을 바라보다가 대뜸 드는 생각.

‘누가 나를 쓸모 있게(?) 만드는가. 열무와 함께한 노동, 열무김치를 맛있게 먹어 줄 사람들, 또 나를 밭머리에서 애써 몸 부리게 만드는 자연, 자연의 시간…’

‘청계천 8가’에 나오는 노랫말처럼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데, 꼭, 굳이, 쓸모 있게까지 살아야 하나 싶으면서도 저 알아서 불쑥 찾아와 준 요런 생각은  반가운 손님처럼 기쁘게 맞이하고 싶다.

여름 김치의 대명사 열무김치가 맛나게 익을 때쯤 서툰 내 생각도 조금 더 알차게 익어 갈 수 있기를 바라며, 잘 익은 김치 함께 나눌  한 사람 또 한 사람 얼굴을 떠올리며, 김치 통을 냉장고에 담는다. 다가올 여름이 왠지 두렵지 않다.

“직접 기르고 거둔 채소로 제철 김치를 제철에 담그기. 쓸모고 뭐고 다 떠나서 그것만으로도 기특하다, 잘했다!”

참말 오랜만에 나를 칭찬해 준다. 내가 나한테 엎드려 절 받는데도 기분 괜찮구랴~

내친김에 어릴 때 본 영화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 제목 따라 하기.

“그래 가끔 칭찬을 하자, 누가? 내가, 누구를? 나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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