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6. 13. 토. 덕양산(행주산성)

 

주말 늦잠 자고 일어나 아점을 먹고, 빨래하고, ‘담대한 임금동결’ 비판하는 논평 하나 쓰고 나니 늦은 오후다. 그렇게 하루를 보낼 수만 없었고, 다음날 모란공원 열사묘역 정비사업 하는 날이라 산에 갈 수 없을 것 같기도 해서 가까운 덕양산으로 향했다. 밤에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있더니 석양노을은 거무스레한 구름에 가려지고 한강 하구로부터 바람이 불어온다.

 

한강변을 따라 조성된 평화누리길을 따라 행주산성으로 향했다. 고도가 낮고 거리가 1.7km에 불과하니 등산로가 아니라 산책로라 하는 게 낫겠다. 강변에서 숲길로 올라서는데 발밑에서 ‘푸드득’ 수꿩 한 마리가 날아올라 건너편 숲속으로 숨어든다. 이름 모를 새들도 재잘 거린다. 짙은 유월의 녹음은 산새들에게도 넉넉한 품이 된다.

 

진강정에 당도할 때 한 한 두 사람 내려가고, 조금 더 걸어 덕양정에 도착할 때 한 두 사람 보였을 뿐 주말인데도 사람이 없다. 아마도 정문으로 입장하는 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모르겠다. 오랜만에 대첩비가 있는 정상에서 여유롭게 인증샷과 동영상을 촬영할 수 있었다.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부당해고/노숙농성 2189일”, “대우조선해양 청원경찰 부당해고 440일”

355일만에 끝난 삼성해고자 김용희 고공농성, 336일만에 끝난 일진다이아몬드 노동자 파업 투쟁이 끝난 탓에 인증샷 숫자가 줄어들었다. 물론 삼성에 또 다른 해고자들 그리고 피해자들은 여전히 투쟁 중이다. 일진다이아몬드도 자본은 노동자들에 감당할 수 없는 손해배상을 청구해 놓고 있다. 지배 권력이 아무리 노동존중과 공정사회를 외쳐도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재벌자본공화국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다시 올랐던 산책로를 되돌아 내려간다. 바람이 일고 나뭇가지가 흔들린다. 강에 물결도 일어난다. 서쪽 바다로 넘어가는 해가 남긴 붉은 노을이 검은 구름에 덮여 검붉은 무늬를 만들고 있다. 어두컴컴해지는 시각 등산로 마지막 길을 내려오는데 직박구리로 보이는 새가 찢찍 소리를 내며 이쪽저쪽으로 불규칙하게 날아다닌다. 산란기라서 그런지는 알 수 없다.

 

주차장에는 가족단위로 바람 쐬러 나온 일행들이 늘어난다. 코르나를 피해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러 나왔을 것이다. 아마추어 섹소폰 연주도 펼쳐진다. 지금 시간이면 영일만 검은 밤바다에는 흰 파도가 밀려와 부서지고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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