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 싹은 자라고 우울한 싹은 시들고_텃밭으로 튀기!>

저녁 먹고는 해야 할 일을 위해 책상에 앉으려던 생각을 접고 무작정 밭으로 나갔다.

어머나~ 콩밭에 콩잎이 활짝 피었다. 콩 싹 자라는 모습에 내 안에 어물쩍거리던 우울한 싹도 슬그머니 시들 것 같은 기분이다. 기왕 나왔으니 호미 들고 밭매기 시작. 잠시 잠깐만 할 생각이었는데 금세 한 시간이 간다. 달랑 한 이랑 맸을 뿐지만 말끔해진 밭 모습에 어지럽던 마음 밭도 뭔가 말끔해진다.

흙 묻은 호미 들고 어둑해지는 텃밭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불쑥 새로운 결심이 섰다. 왠지 우울할 때 자존감이 떨어질 때 그리고  해야만 할 일이 무겁기만 해서 도망치고 싶을 때 텃밭으로 튀기!

그런 때가 있었다. 서울로도 튀고 싶고 술집으로도 튀고 싶고 서점으로도 튀고 싶고 친구네 집으로도 튀고 싶고 아무 거리로도 튀고 싶고 하여튼 산골을 벗어나 어디로든 튀고 싶을 때가 있었다.  어쩔 땐 가끔씩 어쩌다는 자주. 그렇게 7년이 흘렀건만 정작 밭으로 튀고 싶다는 생각은 저 알아서 일어난 적이 없다.

나에게 텃밭은 흐뭇하게 바라보거나 산골 손님들 오실 때 장 보러 가는 곳이거나 어쩔 수 없이 풀을 매야 하거나 그냥 그런 곳이었다. 머리로는 소중하다고 여기면서도 몸으로는 소중하게 대하지 않던 곳.

고운 콩잎이 자라는 밭에 살살 번지는 풀을 본다. 콩밭 앞에서 자연스레, 당연스레 떠오르는 이 노래.

“콩밭 매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
무슨 설움 그리 많아
포기마다 눈물 심누나~♪”

한여름 농사에서 땀 흘리는 일로는 콩밭 매기가 손꼽힌다. ‘칠갑산’에 나오는 저 애절한 노랫말처럼.

새로운 결심을 해서 그런가, 콩밭에 퍼지는 풀이 왠지 고맙다. 어쩌다 또 마음이 가라앉을 때 더 깊이 가라앉지 않도록 저 풀이 ‘과속방지턱’ 노릇을 해 줄 것만 같다.

아주 가까이에 튈 곳이 생겨 참 좋다. 자꾸자꾸 튀다 보면 밭에서 몸 부리는 것도 어느새 몸에 배기도 하려나. 나중엔 마음이 맑든 흐리든 상관 없이 버릇처럼 저절로 몸이 밭으로 갈 수 있게 되면 그러면 참 좋겠다.

내일도 또 텃밭으로 튀고 싶을지 벌써 궁금해지니 새로운 결심하기를 암튼 잘한 것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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