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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다섯, 담담하고 유쾌하게 걸어가는 청춘실패담

매주 월, 목요일에 연재됩니다.


5.

그때쯤 누구를 만나건 실실거리며 지껄이던 말이 있다.

“돈을 벌고 싶은 게 아냐. 그냥 돈이 있었으면 좋겠어.”

대책 없는 넋두리보다 실없는 농담이 술자리에선 더 유익한 법이니까.

진심이기도 했다. 돈이란 시간을 팔아 버는 거라던데, 어찌 된 게 돈도 시간도 내다 버리고 있었다. 유월 중순, 뜻밖의 무급 인턴이 되어버린 지 석 달째였다. 거의 굶은 강아지나 다름없던 처지에 누군가 던져주는 복지 혜택을 강력히 희망하던 것이다. 문간에 누가 치킨이나 한 마리 안 놓고 가나?

삶이 정말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을 대 그걸 눈치채는 건 어려운 일이다. 뭔가 잘못됐다, 고 생각할 법도 한데 그때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어영부영 살아진다. 나는 내 처지를 따져보거나 S형에게 임금 체불 문제를 따져볼 궁리를 하지 못했다.

대책 없이 나날에 몸을 맡긴 채 학교, 사무실, 상수동, 학회를 오갔다. 4월 이후 고정수입은 단 천 원도 없었다. 꼬박꼬박 빚이 쌓였다. 교통카드 대금은 대개 한 달, 휴대폰 요금은 두 달씩 미납되었다. 가끔 주말 학회 세미나를 빠지고 백화점 식당가에서 열두 시간 일했다. 토요일만 일하면 9만 원, 일요일도 일하면 18만 원이었다. 그것으로 일주일을 연명했다. 수수료 10%는 얄궂게도 수요일이나 목요일쯤 빠져나갔다. 희한한 건 하루를 일하나 이틀을 일하나 남는 돈이 비슷했다는 거다. 수수료 9천 원이 인출되면 금요일에 만 원쯤 남았다. 1만8천 원이 빠져도 기껏해야 이삼만 원이나 남았을 뿐이다. 돈을 두 배로 벌었으니 빌린 술값 따위를 갚았기 때문이다. 똑같은 소비습관으로 일주일을 사는데 잔고는 거기서 거기였다. 금요일 저녁의 통장 잔액은 만보기 어플의 그날 걸음 수와 언제나 비슷하거나 적었다. 금요일에는 압박감에 식사를 걸렀다. 그럭저럭 참다가도 밤만 되면 결국 배가 고팠다. 그럴 때 내가 고를 수 있는 길은 두 가지였다.

일단 끊기기 직전인 휴대폰으로 충동적 술 약속을 잡는 경우가 잇었다. 부정적인 감정은 손을 잡고 오는 법이고, 허기는 고독의 친구니까. 술이나 한 잔 하자! 주머니에 3만 원쯤 있으니 일단 1차는 함께 낼 수 있을 테고, 2차는 술기운에 빌려 다음 주쯤 갚으면 되리라. 2018년 여름 금요일 밤, 나에게서 별안간 전화를 받았다면 모두 이러한 경우다. 물론 오는 약속도 거절하지 않았다. 교통비가 아까워 어지간한 곳에는 걸어 다니면서도 그랬다. 주말 밤을 보내며 빌린 술값이 쌓여만 갔다. 일당으로 술값을 갚고 목요일이나 금요일에 돈이 모자라니 술 생각이 났다. 부드럽고 절망적인 악순환이었다. 카드값을 돌려막듯 매주 술값을 빌리고 갚은 기억이 난다. 그다지 넓지 않은 내 인맥 탓에 이것도 금방 한계에 도달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음주를 통한 상실감 보상은 유월쯤부터 불가능해졌다.

그보다 조금 저렴하고 오래된 것이 역시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 뿌링클을 시켜 먹는 길이었다. 이것은 외로움보다 근심이 깊어질 때 선택하는 편이었다. 지금 삶이 어디로 흘러가는가를 검토하는 건 그다지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그럴 때 치킨을, 몇천 원쯤 더 쓸 수 있다면 맥주 두어 캠도, 먹을 수 있다면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다. 치맥이란 배부름-졸림-잠듦이라는 현실 도피 알고리즘으로 이어지는 도입부였다. 하지만 술값이 떨어짐과 동시에 이마저 어려워졌다.

고작 몇 시간짜리 마약이나 다름없는 술과 치킨을 참았다면, 적어도 교통카드 대금이나 휴대폰 요금 둘 중 하나는 온전히 낼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건강한 소비란 건강한 심리상태에서 나오는 거니까. 배고픔은 순간의 허기가 아니라 나를 눌러오던 온갖 압박의 일각이었다. 그 입박에 대한 보상 체계가 끊어진 뒤 찾아온 온갖 금단증상들은 심각했다. 뿌링클이라는 모르핀이 간절했다. 하지만 치킨이란 누가 문 앞에 놓고 가는 것도 아니요, 치킨값 2만1천 원이란 어디서도 저절로 생겨나지 않는 돈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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