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 죽고 싶지만 뿌링클은 먹고 싶어 (6)

→ #16. 함께 있어도 홀로 (1)

스물다섯, 담담하고 유쾌하게 걸어가는 청춘실패담

매주 월, 목요일에 연재됩니다.


사랑의 내용에는 여럿이 있다. 유리잔에 무엇이든 담을 수 있듯이. 레드와인, 샴페인, 소주, 아메리카노, 아인슈페너, 유자차. 또는 믿음, 집착, 연민, 과시, 유희, 소유욕. 와인 글라스에 소주를 담는다고 소주잔이 되지는 않고 소주잔에 커피를 채운다고 찻잔이 되지는 않는다. 기대에 부풀어 섣불리 채우는 건 쉽다. 그러나 알맞은 사람에게 알맞은 감정을 투사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 하여도, 정말 무얼로든 투명한 잔을 물들이며 어떻게든 시작하는 것이 사랑일까.

지나간 인연들이 채워주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주로 ‘동경’인 것 같다. 언젠가부터 나에게 ‘동경’을 채우며 다가오는 것을 빨리 알아챌 수 있게 됐다. 과외선생 경력 때문이다. 사회탐구 과외선생은 의지와 무관하게 중산층 이상의 여자아이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오십 명 남짓 된 표본이지만 그들에는 유의미한 공통점이 있다. 아는 게 많고, 자신 있게 말하고, 종종 듣기 좋은 말을 해주는 사람에게 쉬이 끌린다는 것이다. 성급하게 생겨난 동경을 다시 애정으로 쉬이 바꾼다. 수업하는 여학생들과 사랑에 빠진 적은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를 만날 때 익숙한 눈빛을 만나는 일이 많았다. 나를 보던 여학생들과 비슷한 그것. 스무 살이 넘었던들 아직 진짜를 옳게 가릴 만큼 상처받지는 않았던 친구들이었다. 나서서 말하는 데 익숙하고 또래보다는 성숙해 보이는 아우라만으로 나를 좋아했던 그녀들.

나는 그렇게 오는 사람을 애써 막지 않았고, 그렇게 시작하는 사랑 또한 거부하지 않았었다. 오랜 버릇이었다. 그럴 때마다 유비에게 이끌려 세상으로 나아가는 제갈량의 나르시시즘에 이입했었다. 얻을 것은 별로 없고 수고롭기만 할 나와의 연애. 그걸 스스로 선택하는 게 고맙기도 애처롭기도 했다. 하지만 한발 물러나 마지못한 양 받아들이는 모양이 좋았다. ‘먼저 좋아한 건 내가 아니니까.’ 책임을 피하는 본능이 지독했다. 내 자존심의 한계였다. 언젠가 “너는 누울 자리를 잘 보고 다리를 뻗는 것 같아.” 라던 썸녀의 말을 부정하지 못했다. 그것이 상처를 감내하지 않고도 관계를 시작하는 방법이었다. 마지못한 척하면서도 외로움에 기꺼워하며 연애에 뛰어드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결코 그녀들이 투사하는 내 모습을 충족하지 못할 것이었다. 나는 생각보다 아는 게 별로 없고, 감정 기복이 심하며, 대화하는 법을 잘 모른다. 사랑이 싹틀 때부터 솔직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근본적으로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나를 내보이는 것이 두려웠다. 어디부터 어디까지 나를 보여줘야 하는지도 몰랐다. 복잡한 내 사고를 납득시키기 위해 내 오래된 컴플렉스부터 설명해야 할까. 차라리 그녀들이 처음 본 피상을 유지하는 것이 편안했다. 내가 ‘나다울 수 있는’ 연인을 원했지만, 그걸 포용할 사람이 있을 거라 믿지 않았다. 피곤한 일이었다.

“왜 나를 좋아해?”라는 말에 할 말이 항상 군색했던 기억이다. 그녀가 나를 좋아하는 이유를 추론할 수 있던 것과 반대로,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 것은 어쩌다 그렇게 된 것에 가까웠다. “왜 좋아하냐니… 우린 사귀고 있잖아… 고백할 타이밍이었으니까 고백한 거구…” 이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런 말을 멋지게 지어냈다. “네가 왜 좋아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네 모습은 백 개도 넘게 얘기할 수 있어.” 써 놓고 보니 징그럽지만, 대충 두 사람이 사랑에 빠져 있다면 용납할 만한 수준이었다.

주접에 가까운 말들로 연애를 이어나가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밖에도 “네 속을 잘 모르겠어.” “내가 널 좋아하는 것만큼 나를 좋아해?” 같은 말을 듣는 것은 찔리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녀들이 지쳐가고 나에게 투사한 것이 바닥을 보이기 시작할 때쯤 이별을 고했다. 남들은 다 힘들다는 이별이 나는 전혀 힘들지 않았다. 편한 일이었다. 그렇지 않고 연애에서조차도 감정을 소모하는 것이 여전히 두려웠다. 마음을 온전히 내주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연애라기보단 불완전한 다른 무엇이었다. 애당초 사랑이 아니었을 수도 있었다. 사랑은 감정을 쫓는 과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 한 번, 모든 것을 내보이고 싶은 사람을 찾았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연애에 대한 가치관이 뒤틀려 있다거나 내가 하던 ‘사랑’이 사랑이라기 민망한 형태의 사랑이었음을 채 깨닫지 못할 때였다. 일전의 여자아이들이 나에게 그랬듯이 나도 그녀에게 어떤 기대를 마음껏 채우던 것이다.

Comments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