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탈진 텃밭으로 뚱딴지(돼지감자) 캐러 나간 옆지기가 하도 안 돌아오기에 나가 봅니다. 호미에, 삽에, 세발창에, 약초 캐는 갈고랑이까지! .온갖 농기구를 쥐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한마디 외치네요.

“거의 유적 발굴하는 수준이야!”

잠시 땀 식히는 옆지기한테 ‘유적 발굴’ 사연을 듣자 하니, 이렇습니다. 장독대 있는 곳까지 뚱딴지가 번졌는데 그 뿌리가 엄청 깊고 또 넓게 퍼져 있더랍니다. 그냥 두면 장독대가 상할까 싶어 하나하나 뚱딴지를 캐내다 보니 ‘유적 발굴하는 느낌’이 저절로 들었다네요.

여러 시간 땀 흘려 캔 뚱딴지를 또 씻는다고 한참이 걸려요. 저도 다른 할 일이 넘치는지라 캐는 건 함께하지 못했지만 씻는 거라도 손을 보태야겠더군요. 울퉁불퉁한 뚱딴지에 묻은 흙들을 구석구석 씻어 내기가 참 만만치가 않네요. 그래도 정성껏 해야죠. 몸에 두루 좋은, 참 귀한 먹을거리니까요.

깨끗해진 뚱딴지를 살짝 말린 뒤에 싹싹 쓱쓱 채썰기를 합니다. 그러고는 늦가을 하늘 아래 죽 늘어놓아요. 며칠 지나 꾸둑꾸둑 마르면 구수하게 볶아서 뚱딴지 차를 만들 거예요. 누룽지나 둥글레 차랑 맛이 비슷해요. 산골 손님들이 찾아오실 때 숙취 해소용으로 뚱딴지 차를 내드리면 다들 참 좋아하세요. 맑게 구수해서 그런 것도 같아요.

뚱딴지에 있는 이눌린 성분이 당뇨에 참 좋다죠. 넉넉지는 않지만, 당뇨 때문에, 더구나 합병증까지 겹쳐 참 많이 고생하는, 제 삶에 참 귀하디 귀한 인연들에게 조금씩이나마 보내 주고파요. 그 이들이 많이 아픈데, 뭐 하나 도움이 되지 못해 시리고 쓰렸던 제 마음을 뚱딴지 차를 빌려서라도 보듬어 보고 싶거든요. 그리고 저도 잘 챙겨 먹으려고 해요. 뚱딴지가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효능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몸이 받지 못해 고기를 아예 못 먹는데도, 콜레스테롤 수치가 적당히 있어요. 혈압약도 먹고 있고요.

뭐 하나 해 준 게 없어도 텃밭에서 저 홀로 건강하게 자란 뚱딴지. 맛있게 고맙게 행복하게 먹으면서 무슨 까닭으로 제 몸에 머물고 있는지 당최 모르겠는, 나쁜 콜레스테롤들을 조금이라도 내쫓아 보고 싶은 바람이에요.


산골 혜원네 텃밭에 처음부터 뚱딴지가 있지는 않았어요. 몇 년 전, 시엄니께서 불쑥 산골에 날아오시더니 뚱딴지를 심고 가셨거든요. 몸에 좋은 거니까 길러서 먹으라고요. 그땐 그냥 시큰둥했어요. 도시에 사시는데, 참 별걸 다 가져오신다고 생각하기도 했죠.

뚱딴지를 씻고 썰고 널면서 시엄니께 뒤늦은 고마움이 일렁였어요. 아픈 사람들한테 조금씩 나누고, 잔병치레 많은 저도 기쁘게 먹고, 제 몫까지 텃밭 농사 열심히 하는 옆지기의 건강도 챙기고. 이 모두가 시엄니 덕분이니까요. 아무래도 내일은 시엄니께 전화 한번 드려야겠어요. 뚱딴지를 산골에 심어 주셔서 정말 고맙다고요. 뚱딴지 차 잘 만들어서 어머니 건강도 돌볼 수 있게끔 보내 드리겠다고요.

마지막으로 유적 발굴하듯이 힘들던 뚱딴지 노동을 땀 흘려 해 준 옆지기 텃밭 농부님한테도 고마운 인사 겸 다짐을 전하고 싶네요. 뚱딴지 차 열심히 먹고, 잔병치레 조금씩 줄여 가는 건강한 산골 혜원이 되겠노라고요. 우리 앞에 길게 남아 있는 소중한 산골 살이를 위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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