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륜산(경북 포항 흥해 칠포리), 2020.12.8.화

 

 

백과사전에는 곤륜산이 중국 절강성에 있다고 소개한다. 그런데 경북 포항 흥해읍 바닷가 칠포해수욕장 근처에 곤륜산이 있다. 인터넷에는 포항 곤륜산을 찾은 등산후기가 여러 개 나와 있다. 해발 177m에 불과하지만 바다와 인접해 있어 제법 높다. 정상에는 행글라이더 활공장이 설치되어 있다. 가끔 여름 해수욕을 하다보면 행글라이더가 사람들 머리 위로 지나가는 것을 보곤 하는데 곤륜산 정상에서 날아 내려온 것이다.

코로나로 정해진 날짜에 아버지를 면회하기 위해 고향에 들렀다가 시간이 나서 곤륜산을 찾았다. 어릴 때는 말할 것도 없었고 가끔 고향에 들르면 찾아가는 곳이 동해바다다. 여름에는 해수욕을 즐겼고 그 외 계절에는 친구들과 바닷바람을 쐬러가는 곳이었다. 영일만 항구보다 조금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지점이고 해안을 따라 크고 작은 해수욕장과 어촌 마을이 늘어서 있다.

그러나 매번 지나쳐 갔을 뿐 한 번도 정상에 오르지는 않았다. 바다가 가까워지면 모래사장을 건너 파도가 밀려오는 곳으로 달려갔을 뿐이었다. 바다에서 헤엄치며 놀 때나 바닷가에서 캠핑할 때도 바라만 보던 산이었다.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나들이로 바닷가 횟집이라도 갈 때는 산을 비껴 지나갔을 뿐 역시 꼭대기에 가 봐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다.

전국의 산을 여기저기 다니면서 시간이 나면 고향의 야트막한 산을 따라 등산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문뜩 들 때가 있었다. 마침 시간이 생겨 곤륜산에 올랐다. 예전보다 숲이 많이 우거져 있다. 50, 60년대까지만 해도 헐벗은 산이었는데 그 이후 대대적인 사방사업을 실시하고 땔감 연료가 다른 에너지원으로 대체되면서 숲이 우거지게 됐다. 칠포 옆 오도리에는 사방사업 기념비가 서 있다.

 

정상에 오르자 영일만과 호미곶 그리고 푸른 동해바다가 하늘과 맞닿아 있다. 서쪽으로는 태백산맥 줄기가 남북으로 끝없이 펼쳐진다. 바람은 잠잠하고 바다는 잔잔한 쪽빛 물결이다. 60년 넘도록 바라만 보던 산을 올랐다는 환희가 밀려왔다. 먼 곳에서 산을 다니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있지만 태어나고 자란 곳에 이런 경치가 있다는 것을 알 게 된 것은 더할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정상까지는 동쪽 해안도로에서 숲길을 따라 올랐고 하산할 때는 서쪽 임도를 따라 내려왔다. 지방도를 따라 칠포리로 넘어가다보면 곤륜산 아래 청동기 시대 암각화가 있다. 수천, 수만 년 전부터 이 곳 해안가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곤륜산이 수호신이 되었을 것이다. 산 위에서 산맥을 바라보던 느낌과 바다를 바라보는 느낌은 색달랐다. 한 바퀴 돌면 바다와 산맥을 동시에 조망할 수 있다. 어릴 적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산이 높지 않아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내친김에 곡강천변에 조성된 소나무 군락지인 북송리 북천수를 찾았다. 초등학교 시설 소풍도 갔고 겨울에는 이 곳에서 주워 온 솔방울로 교실 난로에다 불을 피웠다. 당시만 해도 수십 년 됐지만 그렇게 굵지 않았는데 이번에 가 보니 수령 50~100년 가까이 되어 보이는 소나무들이 멋진 숲을 이루고 있었다. 하기야 약 50년 만에 찾아온 숲이니까 그럴 만도 하다. 지역 주민들의 이용하는 산책로도 잘 조성되어 있다.

북천수는 천연기념물 제468호(2006년 지정) 이다. 1938년 조사 시 길이 2.4km, 폭 150m였으나 현재는 1.87km, 70m이다. 해방 직전 일본인들에 의해 노송들이 훼손됐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숲 중 3번째로 긴 숲으로 알려져 있다.(첫째 경남 함양 상림, 둘째 경남 하동 송림) 신광면 비학산을 흘러내린 물이 용연저수지(범촌못)를 지나 곡강천을 따라 흘러내리면 장마철에 범람하는 것을 막기 위해 조선 철종(1849~1863년) 때 이득강이라는 군수가 조성한 숲이라 한다.(흥해읍내 영일민속박물관에 유적비 있음)

나 어릴 적 여름 수해 때 이 곳 둑(북천방)이 터져 물난리 난다고 리어카에 가재도구와 돼지새끼 싣고 높은 곳에 있던 마을(옥성동)로 피난 갔던 기억이 난다. 곡강천은 흥해평야를 굽이쳐 곤륜산을 휘감아 동해바다로 흘러든다. 일제말기 흥해평야를 지나는 동해선 철도건설을 위한 철둑이 조성되었으나 일본 패망과 함께 공사가 중단된 채 수십 년 동안 방치되어 오다 최근에서야 포항-영덕간 철도가 개통됐다.

곡강(曲江)은 강이라기보다는 천이다. 나의 초등학교 교가 가사는 ‘1.비학산 솟아 뻗어 미질불- 폭싸안고 곡강이 굽이쳐서 우리 모교 감돌았다 기역니은 익혀가며 내 힘으로 자라는 2. 삼일얼 이어받아 이천 건아 자라고 라백넋 샛별처럼 우리 앞길 비췬다 하나둘 세어가며 씩씩하게 자라는 ⃫ 우리 흥해 우리 꽃 동산 만세만세 만만세)’이다. 가뭄이 들어 곡강천이 마르면 5일장을 강바닥으로 옮긴다. 기우제처럼 비를 기원하기 위해 그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읍내 가까운 곳에 향교와 임허사라는 절이 있고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이팝나무 군락지가 있는 향교산(원래 이름은 와우산…臥牛山)이 있다. 역시 야트막해 동산이라 할 수 있다. 포항에서 흥해로 넘어오는 고개 이름은 소티재(황소 떼), 와우산은 암소가 엎드려 있는 산 모양이다. 가까운 논 중앙에 조그마한 흙무더기이 풀이 나 있고 소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는데 ‘소죽통’이라 불렀다. 현재는 외곽도로가 생기면서 사라지고 없다. 어린 시절에는 주로 향교산에 놀러가거나 초등학교 사생반 시절에는 그림 그리러 다녔다.

반면 망창산(望昌山, 41.6m)은 멀리 있지 않았지만 지나치기만 했을 뿐 꼭대기에는 올라가지 않았다. 산으로 알았는데 사실은 오래된 토성(土城)이다. 어디나 전설이나 설화가 있는데, “옛날 한 장수가 돌팔매질을 하며 힘을 기르던 곳인데, 하루는 자기의 애마가 화살보다 빠르다는 것을 사람들 앞에서 과시하기 위해 망창산에 올라 활을 쏜 후 쏜살같이 달려 평소 자기가 던져놓은 팔매돌 부근에 다다랐으나 화살이 보이지 않자 숲 속에 떨어졌을 것이라 판단하고 화가 나서 말의 목을 잘라 버렸다. 그 순간 못둑 서편 곡강 최씨 묘역 아래에 화살이 날아 와 꽂혔다고 한다.” 아주 먼 옛날 성을 지키는 군사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2017년 포항 지진 당시 진앙지였던 흥해읍은 아주 옛날 한반도에 70여개국이 난립하던 시절에 미질국(彌秩國)이라 불렸고, 삼한시대 진한 12국 중 하나로 존재했다. 흥해읍내가 미질부성 자리이고, 망창산은 남미질부에 속해 있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망창산성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다. 대동여지도에도 나오고, 지금도 국유림으로 소속되어 있으니 매우 중요한 곳이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 곳에서 흥해평야(안뜰)를 건너 곤륜산이 보이고 그 산을 넘으면 영일만 동해바다가 나온다.

흥해읍내 북쪽으로 곡강천과 북천수가 있고 읍내 남쪽으로 망창산과 봉안산(54.5m) 동쪽으로 곤륜산, 서쪽으로 백련산(348.6m)과 도음산(382.7m), 그 뒤로 비학산(762m)이 솟아 있다. 울릉도에서 출발한 배가 포항 항구로 들어올 때 맨 먼저 보이던 산 봉우리였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는 일제시대 일본에서 광부로 몇 년, 해방되기 전 함경도 흥남에서 몇 년을 포함해 고향땅에서 100년 넘게 살아오셨다.

고향 병원에 계시는 아버지를 면회하는 길에 곤륜산, 북천수, 망창산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어서 좋았다. 아는 것만큼, 관심 갖는 것만큼 보인다고 했다. 지나칠 땐 몰랐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역사와 문화가 있고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가 있다. 코로나 때문에 비닐로 된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부자간에 만날 수밖에 없었다. 비학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북천을 흘러 미질부를 감싸 안은 뒤 동해바다로 흘러갔듯이 부모는 자식을 키워 또 다른 삶의 터전으로 내보냈다. 사람들은 산과 강 그리고 바다와 어우러져 살아간다. 무척이나 의미 있는 산행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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