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매봉 망경봉, 이수봉, 국사봉), 2021.1.31.일

지난 주 수리산에서 바라본 청계산에 올랐다. 날씨가 많이 풀려 남쪽으로 향한 등산로 일부는 질척이는 곳도 있다. 신분당선 청계산입구 전철역에 내려 등산로 입구에서 삶은 계란과 김밥 한줄 사고 등산을 시작한다. 서울 서초구 청계산 안내도에는 매봉과 옥녀봉만 나와 있다.

 

요즈음은 인터넷만 치면 등산로가 상세하게 나와 있어서 망정이지 처음 종주하는 입장에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행정구역의 시계가 다르면 등산로 표시도 자기 지방자치단체 것만 표시한다. 모든 산을 국립공원으로 바꿀 수도 없고 이런 식의 지역 또는 관할이기주의 문제다.


등산로 초입은 자가용으로 꽉 차 있고, 등산로에도 사람들로 붐빈다. 따뜻한 겨울 나들이 겸 코로나에 지친 사람들이 산을 찾은 탓이다. 푸근한 겨울 날씨 탓에 내린 눈이 많이 녹았고 잔설만 일부 남아 있다. 언 얼음 사이로 계곡물이 흘러내린다. 봄이 가까이 왔음을 알 수 있다.

입구에서 매봉까지 계단을 따라 2km 정도 올라간다. 젊은 청년들, 가족단위 등산객들도 많이 보인다. 걸을 때는 땀이 나고 덥지만 차라도 한 잔 할 겸 쉬고 있으면 금방 찬 냉기가 스며든다. 기온이 풀렸지만 겨울 산바람은 여전하다.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산에 오지만 항상 무거운 몸으로 출발한다. 몸의 근육이란 게 일주일도 못 버티고 풀린다. 그래서 계속 움직여야 한다.

매봉에는 사진 찍는 사람들, 뜨끈한 국물에 어묵을 사 먹는 사람들, 여기저기에 앉아 식사를 하거나 간식을 즐기는 사람들로 붐빈다. 나도 한 곳에서 커피 한 잔하고 청계사로 향해 길을 나선다, 매봉을 벗어나자 종주하는 등산객이 가끔 보일 뿐 매봉까지 등산로와는 판이하게 다르고 조용하다. 거기서부터 최고봉인 망경봉, 이수봉, 국사봉을 향해 걷는다.

매봉에서 내리막길을 따라 남쪽으로 조금 걸으면 ‘혈읍재’가 나온다. 안내문에는 ‘조선시대 연산군 때 유학자 정여창이 스승 김종직이 무오사화로 부관참시 당했다는 소식에 은거지인 금정수(하늘샘)로 가기 위해 피눈물을 흘리며 넘었다는 고개’이고, ‘이수봉’은 정여창이 스승 김종직과 그의 벗 김굉필이 연루된 무오사화 당시 변고를 예견하고 청계산에 은거하며 생명의 위기를 두 번이나 넘겼다고 하여 후학인 ‘정구’가 명명한 봉우리 이름‘이라고 쓰여 있다.

서쪽 하늘 검은 구름 사이로 해가 넘어갈 채비를 한다. 청계산의 정상격인 망경봉은 군 시설이 있어 오를 수 없으니 옆을 둘러 이수봉(二壽峰)에 당도한다. ‘송산(松山) 조견(趙狷)과 망경대(望京臺, 원래 이름은 萬景臺)’에 관한 안내문이 있다. ‘송산 조견(1351~1425)은 고려말 조선초 문신, 조선 개국 공신 조준의 아우~이후 중략, 요약~고려가 망하자 두류산(지리산) 들어감, 이성계가 관직을 주려 했으나 거절하고 청계산에 은거, 상봉인 망경대에 올라 송도(개성)를 바라보며 슬퍼함, 이 태조가 한양에 천도한 후 조준을 대동하고 청계사로 찾아가 함께 할 것을 요청했으나 거절, 대신 청계산 일대를 봉지로 내렸으나 거절하고 당시 수락산 기슭(현 의정부 송산마을)에 은거하다 생애를 마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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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봉(國思峰)에 당도한다. 전국에 많은 국사봉의 이름은 대개 국사봉(國師峰), ‘스승’ ‘사’자를 쓴다. 청계산 국사봉은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세워지자 청계산에 은거하던 고려의 충신 조윤(趙胤)이 멸망한 나라를 생각하던 곳이라 붙여진 이름’이라고 쓰여 있다. ‘혈읍재’, ‘이수봉’, ‘국사봉’ 등 봉건왕조 시대에 벌어진 권력투쟁과 피비린내 나는 보복을 피해 청계산에 은거했던 인사들의 눈물과 한숨 그리고 충절의 이야기가 있어 힘들게 걸으면서도 한편의 흥미를 느낄 수 있었다. 동시에 시대만 바뀌었을 뿐 지금 현실에서 벌어지는 권력을 둘러싼 권모술수와 배신 그리고 보복이 오버랩 된다.

그런데 며칠 전 뉴스에 사실상 개발이 불가능한 임야 지분 974억 원어치를 30여개 기획부동산이 4,856명에게 쪼개 팔았는데 그 곳이 바로 청계산 이수봉과 국사봉에 걸쳐 있는 지역이라 한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고려 충신 조견에게 청계산 일대를 봉지로 내린(받지는 않았지만) 이래 사유지가 되었는지 궁금하다. 비록 백성은 인간대접도 제대로 못 받으며 억압받던 시절의 충신들의 역사가 있는 곳인데 이제는 부동산 투기판이 되었으니 오호 통제라!

어둑해지기 시작하는 시각 서둘러 하산한다. 도중에 일행과 헤어지면서 등산로를 잘못 들어 하오고개를 목표로 했으나 결국 한국학중앙연구원(전 정신문화연구원) 쪽으로 내려오게 됐다. 수도권 제1순환고속로도 청계와 판교 톨게이트를 통과 할 때 스쳐 지나가던 산이었는데 청계산을 종주하고 나니 바로 그 산이었구나! 1988년 정신문화연구원 근처에 있던 현대사회연구소(소장 허화평)에서 노조가 생기고 전원 해고당해 투쟁할 당시 연대하면서 찾기 시작한 이래 노동운동 초기 여러 차례 정신문화연구원을 방문했지만 그 뒷산이 청계산이라는 것은 알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었는데 뜻밖의 종주로 기쁨을 얻었다.

그 곳에서 시내버스로 분당으로 나가 정자역에서 신분당선, 또 양재에서 갈아타고 고양까지 다시 돌아오는 먼 길이었지만 산도 굽이굽이, 역사도 굽이굽이, 인생도 굽이굽이, 산이 있어 산에 올랐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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