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메주를 말렸다. 마당에서도 햇볕이 가장 따사로운 자리에서. 꾸덕꾸덕 단단히 마른 메주를 이불 겹겹이 싸서 뜨뜻한 아랫목에 띄웠다. 일주일을 넘기니 메주 곰팡이가 구석구석 잘 피었다. 이만하면 될 것 같다.

다시 겨울 하늘 아래 메주를 맡긴다. 장 담그기 전까지 햇살과 바람과 밤이슬까지 메주한테 힘이 돼 주길 빌면서. 메주를 널고 마당 끝자락에 있는 장독대를 보았다.

 

눈보라가 몰아치고 비바람이 불어대도 장독들은 한 치도 흔들림이 없었다. 그 안에 담긴 된장과 간장도 아마 그럴 테지.

지난해 12월, 메주를 만들던 그즈음. 좋지 않은 생각에 좀 휘둘렸다. 콩을 씻으며, 메주를 쑤고 빚으며 스스로에게 빌고 또 빌었다. 메주 앞에서만큼은 절대로 나쁜 생각은 안 된다, 좋은 생각만 해야 된다. 메주가 다 듣는다. 이도 저도 안 되겠으면 아무 생각도 하지 말자.

간절한 기도 덕분인지 내내 화덕 앞을 지킨 옆지기 덕분인지 콩은 되직하게 잘 쑤었고 메주도 곱게 빚을 수 있었다.

지난 한 해 후회도 많았고 힘든 시간도 길었다. 잘한 일도 분명 있을 텐데 못한 일들만 자꾸 생각나곤 했다. 메주를 감싸듯이 피어난 귀한 곰팡이들을 보면서 그 메주를 대나무에 매다는 옆지기를 보면서 그리고 장독대를 바라보면서 후회와 자책만 일삼던 나한테 아주 오랜만에 칭찬을(?) 들려주었다.

‘벌써 여덟 번째나! 거르지 않고 장을 만들어 온 거 그것참 장~한 일이야! 그만하면 잘 살았어. 그걸로도 충분해. 뭘 더 잘해 보겠다고 아등바등하니, 안쓰럽게스리. 가끔 흔들리면 어때, 그러면서 익어 가는 거지. 천천히 느리게 저 간장처럼 된장처럼.

또 비틀거리는 순간이 오거들랑 메주랑 장독대한테 기대 봐. 휘청거리되 쓰러지지는 않도록 아마 너를 붙잡아 줄 거야. 그러니까 이젠 웃자, 웃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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