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나도원의 음악과 사회 집 짓고 밥 짓는 사람들의 재즈

이효정과 정수민

 

나도원(노동당 공동대표, 경기도당 공동위원장)

 

 

뜨거운 여름이었다. 성긴 벽을 타거나 달궈진 지붕을 뛰어다니면서도 안전장치 같은 것은 없었다. 아침은 숙소 앞 구멍가게에서 퉁퉁 불어버린 라면과 함께 시작했다. 한낮에는 각자 어디선가 구해온 스티로폼 위에 널브러져 잠을 잤다. 낮잠을 잘 수 있는, 낮잠을 자야 하는 일터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제대로 된 화장실이 없거나 화장실이 멀다 보니 공사 현장 곳곳에는 인간의 배설물이, 초등학교 소풍 때 종이 보물처럼, 숨겨져 있었다.

 

하루 일이 끝나면 각자의 사연을 품은 동료들이, 짬뽕 국물은 그냥 장식처럼 테이블 앞에 모셔두고, 맥주잔에 가득 담은 소주를 단숨에 벌컥벌컥 비우는 모습에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며 저녁을 맞았다. 그러고 나면 담배꽁초를 주워 피우면서 서울 가는 기차와 별을 바라보았다. 1990년대, 올림픽도 개최했고, 인터넷도 대중화되고, 개발도상국이 아니라 선진국 반열에 들었다는 나라에서, 나는 이렇게 몇 번의 계절을 보냈다. 이것이 ‘집 짓는 사람들’의 현실이었다.

 

그리고 몇 년 후 1990년대 후반, <별을 내 가슴에>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얻었다. 와, 색소폰을 부는 재벌 2세라니! 그렇게 재즈가,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레스토랑의 배경음악, 도회적이고 세련된 취향의 표식, 고도로 전문화된 고급음악처럼 포장된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재즈는 블루스와 록처럼 노예가 되어 낯선 땅으로 끌려간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손끝에서 태어났다.

 

미국의 경제구조 재편과 함께 남부에서 북부로 이동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고된 발길과 궤적을 같이 한다. 그들의 정서와 감각이 유럽의 기교와 만나 탄생한 재즈의 정신은 자유로움이지 엘리트주의와는 다른 것이었다. 애초에 재즈는 상처에서 비롯된 음악이다.

 

 


 

상처 난 손가락에서 혁명은 우아하게까지

 

나에겐 꿈꾸는 시간, 나만의 뮤즈의 시간

아무런 방해도 없는 그 시간이

너에겐 흐린 눈으로 어둠을 헤쳐나가서

끝없는 그 삶을 시작해야 하는 시간

조금씩 지쳐가는 너의 쉼 없는 몸짓

고단한 몸 앉힐 틈 한번 없는 반복된 노동에

작은 상처에도 아물지 못하는 너의 손가락

벌어진 그 틈 사이로 차가운 물이 또 닿네

<상처 난 손가락> 하상호, 이효정 작사 / 이효정 작곡

 

 

미국 뉴욕 식당에서 비정규 노동자로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 그는 잠시 앉아 쉬지도 못한 채 내내 서서 일해야 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 그리고 일하다 손가락을 베어 생긴 상처가 아물 틈도 없이 끊임없이 물기를 접해야 했던 노동자의 이야기를 기억했다. 아주 작은 상처였지만 접시닦이로 하루 12시간 이상씩 일해야 했던 불법이주노동자의 손가락에 난 상처는 도무지 아물 틈조차 없었다. ‘밥 짓는 사람들’의 현실이었다. <상처 난 손가락>은 그렇게 만들어진 곡이다.

 

이효정은 《상처 난 손가락》](2014)으로 데뷔한 재즈 싱어송라이터. 이 앨범에는 마치 작은 살롱에서 우아한 포즈로 노래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네 곡의 재즈 스탠다드(잘 알려진 명곡), 그리고 직접 작곡한 여덟 곡의 노래가 담겨 있다. 과하거나 덜하지 않은 연주를 이끌어가는 것은 남다른 보컬이다. 보사노바풍을 겸한 상쾌한 앨범으로 잘 들여다보면 노랫말도 범상치 않다. 앞서 말한 <상처 난 손가락>도 그렇지만, 제목부터 남다른 <파업>이 있고, <소금꽃 나무>는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을 소재로 하되 더 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곡이다.

 

어머니를 여의는 시간 속에 완성한 두 번째 앨범 《Betal Girl》(2018) 역시 우아한 분위기와 범상치 않은 메시지가 한 몸을 이룬다. ‘알파걸’을 강요하는 시대를 경쾌하게 되받아치는 <Alpa Girl Funk>와 <혁명은 우아하게>처럼 의미 있는 곡들을 담고 있다. ‘노동자의 딸’로 서울에서 태어나 일곱 살이 될 때까지 살았지만 이효정이 내내 자란 곳은 부산이다. 전기조명 관련 일을 하던 아버지는 외삼촌이 하는 사업에 기술자로 참여하기 위하여 서울에서 부산으로 삶터를 옮겼다. 어린 시절의 이효정은 ‘되게 별난 아이’였다고 한다.

 

‘록의 정신’을 발휘하여 정해진 길에 반항하고자 대학진학 거부 투쟁을 벌이던 이효정은 어머니가 사준 피자 한 판과 설득에 굴복하고 만다. 일종의 타협으로 대학에서 클래식 작곡을 전공하기로 한다. 물론 대학 생활 동안 온갖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해봤을 정도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업을 이어갔다. 대학 졸업한 후, ‘주위의 기대 속에 전공을 살려 음악인의 길로 나서 주목을 받더니, 곧 재능을 인정받아 전문음악인이 되어 왕성히 활동했다’는 프로필은 이효정과 거리가 멀었다. 돈 있는 사람만 예술을 할 수 있는 한국에서, 수입이 충분치 않았기에 결국 중소기업에 취업하여 평범한 회사원으로 지냈다. 회사에서 그의 별명은,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부당한, ‘싸움닭’이었다.

 

작은 회사의 (여)직원으로 근무하면서 겪어야 하는 불합리한 악습은 직장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능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이효정 역시 젊은 여직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커피 심부름 따위를 해야 했는데 이해할 수도, 참을 수도 없는 행태였다. ‘록의 정신’ 때문만은 아니었겠지만, ‘투쟁’에 돌입했다. 이번에는 피자 한 판 정도로는 어림도 없었다. 결국 회사에 커피자판기를 설치함으로써 ‘마시고 싶은 자가 직접 뽑아 먹으라’는 지령을 하달했다. 3년 반의 회사생활을 마무리하고 나오면서 이것만큼은 뿌듯했다. 다음에 들어올 (여)직원들은 더 이상 커피 심부름은 하지 않아도 될 테니.

 

이러다가 이효정은 가방을 다섯 개나 들고 공항에 내렸으나 막상 갈 곳이 없어 한 시간이나 벤치에 앉아 시작한 미국 생활을 4년 반 동안 이어갔다. 뉴욕 생활은 우아하고 치열한 음악만으로 채워질 수 없는 것이었다. 역시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다.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서빙과 계산원 그리고 시식 코너에서도 일했다. 이 과정에서 비정규 노동환경의 현실을 보았다. 알선업체에 보증금을 내고 하루 12시간씩 일했는데도 일거리는 불안정했고, 알선업체를 옮기다가 임금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싸워서 기어코 돈을 받아냈는데, 금액은 우리 돈으로 15만 원 정도였다고 한다. 몰래 겪은 외로움 속에서도 우리의 싸움닭(?)은 미국에서 벌어지는 연대 시위를 주도적으로 기획하기도 했다. 데뷔앨범 《상처 난 손가락》은 이 모든 과정을 겪고 태어난 작품이다.

 

목적 없이 만들고 싶었는데 정치색이 보인다고도 해요. 전혀 의도한 바가 아니에요. 하고 싶은 대로 했더니 이런 음반이 나왔어요. 그때그때의 내가 표현된 것이죠.”

 

이효정은 2022년에 세번째 정규작 《Touch》를 발표한다. 한국 폴란드 중국 3개국 7인의 음악인들이 참여했다. 여전히 상처와 연대를 노래한다. 부산에 터를 두고 활동하며 사회를 노래로 품어내고 여성으로서 정체성을 드러내는 재즈 싱어송라이터, 우리의 시선 때문인지 몇몇 곡의 노랫말과 제목에 주목할 수도 있지만, 결국 이 모두가 스스로 쌓아온 삶과 자연스레 낳은 음악이다.

 

 

너의 개념은 내겐 너무 가혹하다

너의 처사는 내겐 너무 모질다

혁명을 꿈꾸기엔 가진 게 많은 나는

초연해지기에는 가진 게 없는 나는

이렇게 길 위에 서는 것 밖에는 도리가 없네

저버리기엔 무겁고 함께하기엔 힘겨운

그네들과 함께

<파업> 이효정 작사 / 이효정 작곡

 

 

 

 

신자유주의를 그리는 재즈, 정수민 Neo-liberalism

 

대중음악계 동향도 어느 시점부터 회전목마처럼 맴돈다. 한때 유행했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은 조련된 아이돌에 가려 숨겨졌던 재능들, 이를테면 가창력이나 안쓰러운 사연을 가진 가능성을 발굴해내는 자리였다. 하지만 그조차 시들해지자 다시 아이돌 시대로 복귀했고, 미션을 던지고 경쟁하게 하며, 가학성을 숨기지 않는 환경에서 생존해야 하는 장면으로 시청률 승부를 걸었다. 자율과 협력을 요구하지만 결국은 조련이며 부품이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 광경은 입시사회 압축판이자 심리학 실험실과 같았다. 고대 노예제 사회의 검투시합의 재현이다. 콜로세움은 방송국으로, 관중은 시청자로. 그런데 최종 결정을 내리는 엄지의 주인은 누구일까? 오늘날 황제는 자본이다.

 

눈에 보이는 분노는 작아지고, 삶을 둘러싼 절박은 커지는 만큼 보다 과감한 시도는 점차 귀해진다. 이러한 시기에 과감한 제목을 단 앨범이 나온 적이 있다. 재즈음악인 정수민이 두 명의 음악인과 함께 2018년에 발표한 《Neo-liberalism》, 즉 ‘신자유주의’는 여러 면에서 시선을 끌어당기는 작품이다.

 

이 조합은 무척 무겁게 다가온다. 굉장히 난해하거나 의욕 과잉에 시달린 음악이 담겨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설령 꽤 괜찮은 음악이 실려 있다 해도 오지랖 넓은 걱정이 앞서기 마련이다. 과연 얼마나 사람들이 들어줄 것인가.

 

단도직입, 결론으로 직행하면 이 앨범은 ‘신자유주의’와 음악이 재즈라는 형식을 통하여 어떻게 만나 표현될 수 있는지 제대로 들려주었다. 수록곡들인 <Neo-liberalism>과 <Socialism>(사회주의!)은 제목과 무드 그리고 연주가 치밀하게 한 몸을 이루고 있다. 곡의 구성은 안정적이고, 연주는 아름답다. 한 마디로 ‘이 곡은 신자유주의를 표현하고 있다’, ‘이 곡은 사회주의 격동과 불확실한 미래를 표현하고 있다’라고 느낄 수 있는 흐름과 연주를 품고 있다.

 

베이스를 연주하는 정수민은 작곡가로서 노랫말 없는 음악을 통하여 비판의식과 격동이 어떻게 전해지는지 모범을 알려준다. 서울 강남의 속살, 철거지역인 구룡마을을 소재로 한 <강남 478>에는 서정성 속에 서글픔이 깃들어 있다. 가진 자는 더 갖고, 갖지 못한 자는 빼앗기는 21세기 신자유주의를 정면에서 다룬 정수민의 《Neo-liberalism》은 과감한 주제 의식과 아름다운 연주가 조화를 이룬다.

 

정수민은 계속 나아가고 있다. 2023년에 <동지가> 등이 실린 《통감》을, 2021년에 <빚>을 담은 《Lament》를 발표한다. 그의 사색은 깊이를 놓지 않고, 말이 없는 연주에도 사색을 담아낸다. 무엇보다 서정적인 연주는, 음악적으로 아름답다.

 


 

집 짓고 밥 짓는 사람들

 

언제까지 세습경영과 현대판 영주들인 자본귀족 중심의 신분제사회를 용인해야 하는가.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공분하는 사회도 일상화되었지만, 일상이 되어 당연해지고 용인되는 것도 있다. 일상화된 법정 최저임금을 받는 불안정노동자와 최저임금을 주는 영세자영업자의 존재 역시 누가 이들을 대책 없이 증가시켰고, 누구는 품팔이로 살고, 누구는 쫓겨날까 눈치를 보며, 누구는 망하지 않으려 버티는 세상을 만든 장본인, 한국사회의 정점과 중심에 있는 바로 저들이 이 일상을 바꾸리란 기대보다 헛된 것은 없을 것이다.

 

 

‘집 짓고 밥 짓는 사람들’이 바꾸는 날이 올 것이다. ■

 

 

※ 사진 출처 – 이효정 사진 / 유용현
                      정수민 사진 / 안보영

※ 재즈음악인 이효정과 정수민은 노동당의 당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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