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겨울 #25] 흩어진 종교의 땅

[그 해 겨울 #25] 흩어진 종교의 땅

흩어진 종교의 땅   종교에는 무엇이 필요한가. 먼저 교리가 있다, 처음에는 말씀이었던 것이 입에서 입으로 옮아가면 전언이 된다. 그걸 누군가 받아 적고 번호를 붙이면 그 때부턴 교리가 된다. 그걸 책으로 펴내면 경전이다. 현생에 지친 자들을 끌어당길 매력이 있어야 한다. 희랍의 신화는 벗어날 수 없는 … 더 보기 →
[그 해 겨울 #24] 다시 초조해지다

[그 해 겨울 #24] 다시 초조해지다

다시 초조해지다   우리는 이미 여행의 베테랑을 참칭하고 있었던 것 같다.   지난 보름간 건너온 곳은 세부나 발리가 아니라 시베리아와 구소련이었다. 어리숙한 관광객이 덮어쓰는 호객과 바가지는, 다소간의 시행착오는 있었으나, 훌륭히 극복했다. 모스크바를 지나면서는 가벼운 후리스나 코트가 두꺼운 외투와 내복을 갈음했다. 뿐인가, 파리에서 프라하로 오던 … 더 보기 →
[그 해 겨울 #23] 한 번뿐인 것은 전혀 없었던 것과 같다

[그 해 겨울 #23] 한 번뿐인 것은 전혀 없었던 것과 같다

한 번뿐인 것은 전혀 없었던 것과 같다 분명 다 읽기는 읽었는데 기억이 흐리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배경에 아마 프라하도 있었을 것이다. 그 소설은 어느 여름 언젠가, 잘 해보려던 이성이 좋아한 책이었다. 두 번째 데이트 전전날(이던가)에 그녀는 메신저의 상태 메시지를 ‘Einmal ist keinmal’로 … 더 보기 →
[그 해 겨울 #22] 안녕 파리

[그 해 겨울 #22] 안녕 파리

안녕 파리 18km. 그것이 나의 생활’반경’이다. 서울 중심부의 학교에서 경기도 남부의 집까지의 직경이 딱 36km. 반지름과 원주각이 재어지는 원의 중심은 서울시계에 못 미치는, 아마 과천쯤, 어딘가일테지만 교통공학적 정가운데는 다른 곳에 있다. 서울역. 나의 통학수단은 버스도 지하철 이전에 기차이기 때문이다. 사대문 밖에 살면서도 그 안을 … 더 보기 →
[그 해 겨울 #21] 익숙한 풍경들

[그 해 겨울 #21] 익숙한 풍경들

한강에는 스물일곱 개의 다리가 있다. 누군가 한강을 – 어떻게든 – 내려다본다면 그 많은 대교(大橋) 중 하나 눈에 뜨이는 것이 있으리라. 북단의 연결 도로가 없어 목이 잘린 모양의, 동작대교다. 강북에서 동작대교를 진입하려면 보통 이촌동을 지나야 한다. 사는 사람은 많지만 조용하고 한적해 별 사건이 없는 동네다. 중년의 … 더 보기 →
[그 해 겨울#20] 찾기

[그 해 겨울#20] 찾기

#20. 찾기 우리의 여행을 거칠게 요약하면 세 가지가 남는다. 먼저 걷는 것이다. 낯선 곳을 어지간히 헤매다 보면 발바닥에 통증이 따라오기 마련이었다. 관광지를 찾아다닐 때 그랬고, 교통비를 아끼려고 일부러 걷기도 했다. 걷는 걸 좋아하는 나였기에 웬만큼 긴 거리도 걷자고 우기기도 했다. 하루 동안 스마트폰 앱에 … 더 보기 →
[그 해 겨울 #19] 몽쥬

[그 해 겨울 #19] 몽쥬

몽쥬 우리는 아직 얼얼한 손목을 어루만지던 지환이를 데리고 언덕을 내려왔다. 몽마르뜨는 숙소(17구) 근처의 18구에 있었다. 다음 행선은 노트르담이었는데, 그 전에 들른 곳이 ‘몽쥬 약국’이었다. 여기가 유명하다며 가자던 진수는 물론이고 넷 모두가 입구에서부터 조금 ‘벙찌고’ 말았다. 웬걸, 사람이 너무 많았다. 식상하지만 적확한 표현이 ‘도떼기시장’ 되겠다. … 더 보기 →
[그 해 겨울 #18] 텀블러

[그 해 겨울 #18] 텀블러

텀블러 쓰다가 만 반쪽짜리 장기판이 스테인리스 대야를 받치고 있다. 물론 이것은, 현대 바둑의 보급에 지대한 공헌을 했음이 분명한, 경첩이 달려 반으로 접히는 바둑판이다. 원목이 아니라 합판 아니면 MDF를 썼겠지만 대신 가볍고 편하고 저렴하다. 무엇보다 양면이라 장기판이 뒤에라도 그려질 수 있었다. 언젠가 아버지는 그것을 사들고 … 더 보기 →
[그 해 겨울 #17] 몽마르뜨와 친구들과 아시아인과

[그 해 겨울 #17] 몽마르뜨와 친구들과 아시아인과

몽마르뜨와 친구들과 아시아인과      그게 기억이 나? 라는 것이 여행기를 쓰고 있다고 했을 때 보통의 반응이다. 여행을 가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살면서도 여름이건 겨울이건 실제로 그러했던 일이 잘 없었다. 먹을 것에 후한 성미 때문에 엥겔 지수가 1에 매우 근접하기 때문이지만, 아무튼, 따라서 내가 ‘여행’을 … 더 보기 →
[그 해 겨울 #16] 개선문으로 가는 길

[그 해 겨울 #16] 개선문으로 가는 길

그동안에 비하면 파리의 숙소는 퍽 만족스러운 편이 못 됐다. 엘리베이터는 지하철이 그랬듯 손잡이를 직접 돌려야 여닫이문이 열렸다. 문을 열면 신발을 신고 돌아다녀야 하는 낡은 마루가 현관도 없이 나타난다. 삐거덕거리는 그 바닥을, 우리는 (통상 젖어있던)신발로 딛어야 했다. 화장실은 의외로 두 개(인 줄 알았)다. 하나에는 좌변기만 … 더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