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겨울 #14] 일상은 흐르고

[그 해 겨울 #14] 일상은 흐르고

일상은 흐르고 삼박 사일, 아니면 사박 오일. 지겨울 틈도 없이 어딘가로 거처를 옮긴다. 보통의 해외여행이다. 방학이나 휴가를 얻어 나온 이들은 어쩔 수 없다. 물론 우리의 여행도 마찬가지였다. 질리지 않는 건 좋지만 적응할 새도 없는 기간이다. 상당한 기간을 주기로 가끔 있을 법한 ‘별 일’은 피해가기 … 더 보기 →
[그 해 겨울 #13] 슬픈 독백이 없는 곳

[그 해 겨울 #13] 슬픈 독백이 없는 곳

슬픈 독백이 없는 곳 얼마 전 안과에서 ‘안검하수’라는 진단을 받았다. 하드 렌즈 착용이 힘들 수도 있다고 했다. 아니 그 정도인가, 하다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려 보니 납득이 됐다. 나는 두툼한 두덩에 눈이 처진 꼴이 아버지를 꼭 닮았다. 물려받지 않았으면 좋았을 법도 하다. 이마 근육을 움직여야 … 더 보기 →
[그 해 겨울 #12] 뻬쩨르

[그 해 겨울 #12] 뻬쩨르

뻬쩨르 우리는 생각보다도 넓은 땅을 휘저었다. 동시베리아의 설원이나 바이칼 반대편 산맥을 지켜볼 때는 잘 몰랐다. 대륙의 규모를 실감케 해 준 것은 공항에 내릴 때마다 휙휙 바뀌는 날씨였다. 블라디보스톡에서는 눈보라를 맞았지만 바이칼에서는 시리도록 푸른 햇빛을 쬈고, 모스크바에서는 재색 하늘에 질렸다. 그리고 한 시간 반 만에 … 더 보기 →
[그 해 겨울 #9] 잿빛 도시

[그 해 겨울 #9] 잿빛 도시

잿빛 도시 못난 마음이 안으로 향하고, 그 껍데기를 열등감으로 감싸는 부류의 인간이 있다. 그런 이들은 보통 스스로의 모양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누군가에게 탄로 나는 것을 걱정한다. 그러면서도 말이 많은 사람은 흔히 사교적인 사람이라 오해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분명, 결코 잘나지 않은 속내를 … 더 보기 →
[그 해 겨울 #7] 별들 많던가요?

[그 해 겨울 #7] 별들 많던가요?

   별들 많던가요? 유럽을 다녀온 이후 여행 이야기는 나의 주된 레퍼토리로 편입되었다. 물론 ‘1회, 22일’이라는 해외여행 누적 스탯은 누구와 견줘도 빈곤한 편이라는 걸 서서히 깨달아야 했지만. 어쨌든 시베리아를 다녀왔다는 얘기를 하면 썩 괜찮은 반응이 돌아오고는 한다. 자세히 들어보면 시덥잖은 소리를 매번 늘어놓다, 언젠가 받았던 … 더 보기 →
[그 해 겨울 #6] 잠시 서행(西行)을 멈추고

[그 해 겨울 #6] 잠시 서행(西行)을 멈추고

잠시 서행(西行)을 멈추고 겨울의 여행은 휴양보다는 체험에 가까웠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무언가를 자꾸 겪어야 한다는 것이 좋은 점이었다. 마음은 낯선 공기에 맡겼지만, 어디로 팔려가도 소문 없이 사라질 몸뚱이에 바짝 힘을 줘야 했다. 행로를 정하고 여비를 계산하고 추위를 피하면서 뭔지 모를 음식을 맛보는 사이 정신없이 … 더 보기 →
[그 해 겨울 #5] 침대칸

[그 해 겨울 #5] 침대칸

침대칸 익숙한 노래에서 생소한 음(音)을 느낄 때가 있다. 보컬이 전하는 가사를 따라가느라 듣지 못했던 소리. 어떤 음악이든 목소리의 배경에는 필경 짤랑거리는 기타의 마찰음이 있기 마련이다. 귀에 익은 후렴구 뒤에서 들려오는 리프를 어떤 동기도 없이 발견하는 것은 멋진 일이다. 그런 것은 마음먹고 찾으려면 찾아지지 않기 … 더 보기 →
[그 해 겨울 #4] ‘첫 아침’

[그 해 겨울 #4] ‘첫 아침’

‘첫 아침’ 된소리 하나 없는, ‘눈보라’라는 말은 참 예쁘다. 낱말만 놓고는 휘몰아치는 눈이나 살을 에는 바람이 도저히 떠올려지지가 않는다. 기구한 운명처럼 변화무쌍한 사계를 타고난 한반도였다. 그럼에도 평화를 사랑했던 우리 선조들은 날씨에 부드럽고 예쁜 이름을 붙였기 때문일까. 그럴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추측건대, 그것은 남도의 어디쯤에 … 더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