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밭을 매고자 호미를 들었습니다. ‘어디 핀들 꽃이 아니랴~♪’ 이런 시, 이런 노래가 있죠. 작은 텃밭에 돋아난 온갖 풀들, 그 이름 잘 모를지언정 잡초라는 한 낱말로 묶어버리기엔 너무 부끄럽습니다. 어디에 피었든, 자랐든 참 아름답고 경이로운 생명들이니까요.

 

 

긴 겨울 버티고 이겨낸 풀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두 손 모으게 되는 그것들을 그럼에도 뽑아냅니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 몸, 입에 들이는 먹을거리를 짓는 농사의 순리를 무조건 하고 따라야 하겠기에.

 

사그랑 사그랑.

사그락 사그락.

사크랑 사크랑.

사가각 사가각.

 

호미가 흙에 닿으면서 맑고 고운 소리가 울립니다. 작은 돌이라도 만나면 그 울림이 더욱 맑게 퍼지네요. 아… 이 소리들이 왜 이렇게나 좋은 걸까요.

 

봄 가뭄이 길어져 땅은 메마르기가 한정 없거든요. 마른 기침 유도하는 퍼석 퍼석한 흙을 마주하면서도 호미랑 땅이 어우러져 이끌어내는 그 청량한 소리에 저는 푹 빠져 들고야 맙니다. 세상 힘든 농사일 두고서 제발 부디 덕분에 어설픈 낭만 따위 가지지 말자고 가지면 안 된다고 다짐하고 다그치고 숱하게 했건만은!

 

 

 

이 봄, 호미랑 흙이랑 만나는 그 아름다운 소리에 그만, 다시금 농사가 안겨주는 낭만을 내 안에 들이게 되었습니다. 밭을 맸고, 퇴비를 부렸고, 내일은 비님이 오신답니다. 옆지기와 힘 모아서 자연스러운 이 흐름에 몸과 마음을 맡긴 하루가 참으로 고맙고 행복합니다.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최백호 가수님 노랫말을 저는 이렇게 바꾸어 불러 봅니다

 

“얻은 것에 대하여~

산골 낭만에 대하여~~♪“

 

 


감자를 심었습니다. 여러 날 봄비가 다녀가신 터라 땅이 참 촉촉하네요. 콕 콕. 땅속에 살포시 감자를 박고는 흙을 살살 덮어줍니다. 음… 이 감자를 가장 먼저 맛보여 주고픈 소중한 인연이 떠오르면서요, 그리움이 몽실몽실 피어납니다. 그이가 보고 싶고, 많이 걱정되고, 그럼에도 싱그러운 초록빛 희망이 내 안에서 찬찬히 흐르더랍니다. 그 사람을 그리고 응원하면서 내 반드시 감자 농사를 잘 지어 보리! 굳은 다짐이 절로 우러나네요.

 

둥글넓적한 감자 싹이 벌써부터 기다려져요. 이 마음, 욕심이라 하여도 좋아요. 기약 없는 기다림은 아니니까요. 땅과 더불어 이러구러 살아가다 보면 반드시 다가올 시간이니까요. 조금 이르더라도 설레는 맘으로 어떤 순간을 기다리는 것. “그거이 디게 좋구나!” 새삼스레 느꼈답니다. 감자밭을 천천히 나오면서요.

 

고등학교 때 엄마가 싸 준 도시락 반찬이 아마도 칠팔 할쯤 감자였어요. 감자볶음, 감자조림…. 육남매 도시락을 챙겨야 했던 엄마한텐 감자가 가장 좋았나 봐요. 값이든 양이든요. (오뎅, 소시지, 달걀 등등은 정말 하늘의 별 따기로 도시락에 담길 수 있었네요.) 집에는 늘 감자가 상자째 있던 기억이 나요.

 

같이 밥 먹는 친구들이 너는 늘 감자반찬이고 얼굴도 감자를 닮았다면서 어느 날 저한테 ‘감자”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어요. 썩 기쁘지는 않았지만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어요. 엄마가 해 준 감자반찬이 전 늘 맛있었거든요. 이렇게 맛난 감자랑엮인다는 것이 그럭저럭 괜찮게 여겨지기도 했어요. 근데요, 울 엄마는 저랑 좀 다르셨어요. 아주 어릴 때부터 쌀, 보리 대신 감자랑 고구마로 밥을 대신했다면서요. 물린다고, 안 먹고 싶다고도 하셨던 것 같아요.

 

프라이팬에서 감자가 기름이랑 만나서 ‘촤라라락’ 하는 그 소리가 꼭 빗소리랑 비슷하거든요. 어느 어린 시절, ‘어, 비 오나?’ 하면서 부스스 눈을 떴더니만 비는 보이지 않고 엄마가 부엌에서 감자를 볶고 계셨어요. 그때 진짜 신기해서 감자볶음이 만들어지는 풍경을 마음에 담았어랬어요. 어른이 되어 감자를 볶을 때면 그때 그 풍경이 저절로 떠오르곤 합니다. 역시나 빗소리처럼 들리더라고요. 정말 좋아요, 감자가 기름과 더불어 촤르르 익어 가는 그 소리가요.

 

오늘 밭에 심은 씨감자는 마을에서 공동구매로 산 거고요. 지난해 우리가 심고 거둔 감자가 아직도 남아 있어요. 작고 쪼글해서는 다듬기가 영 어려운데요. 그래도 열심히 정성껏 맛나게 먹고 있어요. 한 해 동안 감자만큼은 우리 부부가 농사지은 걸로 먹고살았으니 그것만으로도 참 괜찮게 살았구나 저를 응원하고 싶어요.

 

저는 감자가 좋아요. 감자농사를 지을 수 있는 이 삶도 무척 고마워요. 걱정거리도 쌓여 있고 생각해야 할 일들도 많지만요. 오늘은, 오늘 하루만큼은 감자농사가 안겨준 추억 꾸러미 행복 꾸러미에 묻혀 자연에 몸을 실어 그저 그저 흘려보내고 싶습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어김없이 떠오를 테고요. 무엇보다 올해 첫 농사를 지었으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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