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나도원의 음악과 사회 여성대중스타는 어떻게 살아남는가

나도원(음악평론가, 노동당 경기도당 공동위원장)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 감독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의 단편들을 엮어 영화로 재창조한 <라쇼몽(羅生門)>(1950)은 ‘여성잔혹사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다. 영화사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이 작품에 대한 창작자의 뜻과 주제에 대한 해석 그리고 찬탄 어린 평가를 미뤄두고 다른 시각에서 보면, 탄식과 분노를 멈출 수 없는 스토리로 점철되어 있다. 도적에게 성폭행당한 여성이 어떤 처우를 받고 결국 어떤 처지가 되는지 떠올려보라.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흐른 1990년대, 다양한 영역에서 대중예술이 다양성을 확대했다. 당시에 영화에선 페미니즘이 주요한 소재가 되었고, 음악에서 여성주도형 창작이 활성화되었으며, 대중문화의 주 수용자층으로 20~30대 여성이 부상했다. 마니아와 활동가 사이에서도 깊이 있는 논의와 활동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또다시 많은 시간이 흐른 21세기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주류권 대중음악에선 걸그룹 소비가 주된 콘텐츠로 팔리다 못해 <아이돌학교>처럼 괴상한 프로그램까지 제작되었다. 심지어 병영체험 TV프로그램 <진짜 사나이>에 여성연예인들을 징집(?)하더니 걸그룹 에프엑스(FX)의 개성 강한 멤버 엠버를 출연시켜놓고 제작진의 편집과 자막으로 ‘다시 여자 만들기 놀이’를 했다. 이 부분을 진지하게 논의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예능프로그램 자막은 대개 작가들이 담당하며, 방송작가들은 대부분 여성이라는 점에 대해선 추가분석을 하지 않았다.

 

2017년에 주목받은 <효리네민박> 같은 ‘사생활 몰카형 프로그램’을 시선과 권력의 관계로 볼 수도 있다. 대개는 지켜보기-훔쳐보기가 권력이다. 그러나 유명인을 등장시킨 방송 프로그램은 그 역의 관계이다. 훔쳐보기보다 보여주기가 권력인 이유는 ‘보여줄 수 있는 지위’를 가지고 있는 자가 계약을 통하여 사적인 대화와 생활을 팔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이돌 걸그룹 ‘핑클’로 데뷔하여 솔로가수로도 오랫동안 활동해온 이효리는 남다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그는 유기견과 동물보호 활동, 환경문제와 정치참여(투표 독려), 그리고 위안부 문제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문제에까지 소신을 밝히는 소셜테이너로 성장했다. 한동안 상업광고를 중단했고, 심지어 ‘핫플레이스’와 ‘사회현상’의 결합이랄 수 있는 ‘제주 이주’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어쨌든, ‘공정○○’마저 트렌드가 되어버린 시대라지만, 유명인의 가치 있는 모델 제시에 일조했다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고맙고 훌륭하게도 진보정당을 지지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Huu3H5ei_-8

이효리 <미스코리아>

 

음악활동 면에서는, 가요계의 퇴행성관절염인 표절에 관한 기사와 칼럼이 표절이 아닌가 싶을 정도가 되어버린 가요계의 현실 그 자체였던 《H-Logic》 이후 다른 길을 모색하고(이 사건에서도 작곡가만 매장되고 스타는 살아남는 구조에 분명 문제가 있었다), 다음 앨범 《Monochrome》으로 새로운 모색과 생존을 도모하는데, 여기에 실린 <미스코리아>가 공개 직후에 거의 모든 음원차트의 1위를 휩쓸었다. 이때 이효리 곁에 적정기술의 소유자가 등장한다. 지누 그리고 조원선과 함께 롤러코스터(Roller Coaster)로 활동했으며, 베란다 프로젝트로도 호응을 얻어낸 이상순이다. 그는 이효리의 자작곡인 <미스코리아>를 편곡하며 힘을 보탰을 뿐만 아니라, 다른 영역의 음악인들, 그러니까 이규호 조동희 배영준 김태춘과 이효리를 연결하는 역할도 맡았을 것이다.

 

<미스코리아>는 오늘날 여성들의 고충을 대변하는 듯 자기 자신인 화자와 청자를 일치시킨다. ‘나쁜 여자’를 긍정하는 <Bad Girls>도 익숙하지만, 의미 있다. 그런데 이 곡들은 뮤직비디오와 안무를 통해선 성(性)스러운 이미지로 표현되었고, 미디어도 대부분 그런 이미지에 집중했다. 이효리도 솔직하게 말한 적이 있다. 자기의 몸을 마음껏 과시하고 싶은데 회사에선 ‘핑클’의 콘셉트 때문에 감추라고 성화였고, 그것이 불만이었다고. 물론 전쟁에 반대하는 영화가 리얼한 전투장면의 쾌감을, 폭력에 반대하는 영화가 폭력의 쾌감을,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영화가 곧잘 선정성을 무기로 삼는 것처럼, 주제와 형식의 불일치는 예술의 오랜 속성이긴 하다.

 

바로 이 모순과 불일치가 연예산업을 포함한 산업사회 전반에 내포되어 있다. 모든 산업이 성비격차, 경력단절, 보상차별로 점철된 한국사회-자본주의사회의 일부란 관점으로 봐야 지엽적 표현, 결과적 현상에 대한 오해를 넘어설 수 있다. 이것은 국경을 가리지 않는다. 성별을 떠나 성공한 사람들이 즐비하며 최고도로 산업화한 21세기 할리우드에서 성폭력 고발이 빗발쳤다. 한국 대중문화산업계에서 연예인들, 특히 여성 연예인의 자살이 유난히 잦은 이유에 대해서도 더 깊은 시각에서 곱씹어보자고 권하고 싶다.

 

일본에서 <라쇼몽>(1950)이 만들어지고 69년 후, 미국 언론재벌 폭스뉴스의 권력형 성폭력 문제를 다룬 <밤쉘(Bombshell):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2019)>이 제작되었다. 그 긴 시간 터울, 국경선 없는 너울, 다시 곱씹는다,

 

https://www.youtube.com/watch?v=kOw0k3IkIDs

미연 & <이어도는 땅 위에 있다>

재즈음악계에서 유명한 동반자, 박미연과 박재천의 진중한 음반들 중에서 미연 & 박의 Dreams From The Ancestor(2008)는 많은 박수를 받았다. 쉬운 음악이 아닌데도 폭넓게 인정받았다. 저마다 맡아 두드리는 건반과 타악기가 때론 격렬하게, 때론 오묘하게 하나의 그림을 그려낸다. 피아니스트 미연과 타악기를 내려놓은 박재천이 피아노를 함께 연주하며 아름다운 그림 폭을 펼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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