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학생인권조례를 지키자

세연(노동당 경기도당 공동위원장)

 

지난 9월 20일 경기도교육청 임태희 교육감은 경기도학생인권조례를 개악하는 입법안을 예고했다. 경기도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은 사람이며 인간다운 삶을 위해 조건 없이 인권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 나아가 학생이라는 지위, 어린 존재라는 이유로 부당하게 인권을 침해당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법으로 보장한 전국최초의 학생인권조례로 2010년 10월 제정되었다. 이 조례가 제정되기까지 전국에서 수많은 학생, 교육, 시민사회단체의 노력들이 있었고, 몇 번이나 좌초되는 어려움을 겪었다. 진보교육감의 당선 이후 경기도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기는 했으나 극우보수단체의 반대에 의해 ‘사상•양심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 조항이 삭제된 반쪽짜리 인권조례라는 한계도 존재했다. 하지만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제정 이후 광주와 서울, 전북에서 잇따라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는 성과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지역에서는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또한 교육부는 서울과 전북의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대법원에 무효 소송을 하고 헌법재판소에 쟁의심판을 청구하는 등 공격을 계속해왔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유효하다는 판단이 내려진 이후에도 교육부는 자신의 재량권을 이용해 ‘초•중등 교육법’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학교장의 학교규칙 자율권을 보장을 강화하며 학생인권조례의 무력화를 계속해왔다.

 

경기도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고 시행된 지 13년이 지났지만 학교현장에서 학생들의 인권이 온전히 보장받고 있지는 못하다. 경기도교육연구원이 발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여전히 학교에서는 성적에 의한 차별은 말할 나위도 없고, 휴대전화제한, 용의 복장 규제는 80%가 넘는 학교에서 존재한다. 심지어 2019년 조사결과에 따르면 초등학교 3.9%, 중학교 14.8%, 고등학교 6.8%에서는 체벌까지 벌어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학생인권조례로 인해 학생인권은 ‘억압과 규제의 정도가 완화’되었지만 학교가 민주적이고 인권적이 원칙이 완전히 뿌리내리지는 못한 것이 현실이다. 특히 고등학생의 경우 가장 많은 인권침해를 겪고 있지만 대학입시와 직결되는 학생 생활 기록부에 미칠 악영향이 두려워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제 경기도교육청은 서이초 사건을 빌미로 학생인권조례를 개악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교육청은 학생들이 학생인권조례를 악용하고 학생인권조례가 교권침해의 원인이라고 호도하고 있다. 하지만 교사들의 교육 할 권리는 학생인권조례 때문이 아니라 학교 민원해결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지 못했기 때문에 침해당하고 있다. 실제로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시도별 교육활동 침해건수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학생인권조례가 있는 지역과 없는 지역의 차이가 없다.

 

임태희 교육감의 조례개정안은 교권회복을 핑계로 학생들의 인권을 제한하겠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변경하겠다는 조례안의 명칭만 보더라도 ‘학생의 권리와 책임에 관한 조례’로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책임은 스스로가 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로부터 주어지는 강요받는 책임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학생의 책임 강화를 통하여 학생인권과 교권이 상호존중할 수 있는 조례 개정 방안’이라고 나와 있지만 학생인권과 교권을 대립구도로 만들고 상호존중이 아니라 학교 구성원의 갈등을 조장하고 어느 한 쪽이 속한 집단에 대한 혐오, 소외 배제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다. 교권이 추락하는 이유는 학생인권 때문이고, 학생인권이 추락한 이유는 교권이 강하기 때문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 갇혀서 서로 갈등하게 만든다. 학생들의 책임을 강조하기 위해 임태희 교육감이 강조하는 또 하나의 정책이 ‘인성교육’이다. 임태희 교육감의 인수위 백서에는 ‘시대적 가치를 반영하여 행동하고 실천하는 인성교육’을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시대적 가치’는 무엇인가. 임태희 교육감은 ‘사회와 가정의 역할 변화에 따라 중요한 기본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인성교육에 집중했다’라고 말한다. 흔히 말하는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사회와 가정 안에서 바르게 자라는 것이 인성을 확립하는 것이고, 이를 위한 통제와 책임부여를 학생들에게 강요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구체적인 개정안의 내용을 살펴보면

 

1. 제1조(목적)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를 ‘보장하고 그 한계 및 책임에 관하여 규정하는’ 것으로 변경했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 자유와 권리에 어떤 한계를 규정하겠다는 것인가.

2 제4조(책무) 3항 ‘학생은 인권을 학습하고 자신의 인권을 스스로 보호하며, 교장 등 타인의 인권을 존중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임태희 교육감의 개정안에는 이 문구가 모두 삭제되었다. 권리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을 삭제한 것이다.

3. 개정안에는 제4조의 2(학생 및 보호자의 책임과 의무)를 신설했다. 인권을 보장하기보다는 통제의 근거를 만든 것이다. 특히 4항에서는 ‘학생은 학내의 질서를 문란하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함으로써 학생을 억압하는 취지의 조항을 담았다.

4. 제8조(학습에 관한 권리) 2항 ‘학교는 교육과정을 자의적으로 운영하거나 학생에게 임의적인 교내외 행사 참석을 강요하여서는 아니 된다’를 ‘학교는 교육과정을 변경하여 운영하거나 학생의 교내외 행사 참여가 필요할 경우, 학생의 의견을 존중한다’로 수정했다. 교육과정의 변경과 운영에 개한 학교의 정당성을 부여하고 ‘학생의 의견 존중’ 정도로만 기술하여 권리를 축소했다.

5. 매년 실시해야 하는 경기도 내 학생인권실태조사를 2년으로 수정했고 ‘학교별 학생인권실현 상황을 조사하고 그 개선을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는 조항은 아예 삭제시켰다.

 

위에서 살펴본 대표적인 조항의 개악 내용만이 다가 아니다. 임태희 교육감의 개정안에서는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학교 구성원들의 협력과 상호존중을 위한 노력을 찾아볼 수 없다. 학생인권조례를 무력화하기 위한 시도를 끊임없이 계속하던 교육부는 윤석열정권 하에서 서이초 사건을 빌미로 ‘학생인권조례’를 대체할 조례로 ‘학교구성원의 권리와 책임에 관한 조례 예시안’을 만들어 전국의 교육청에 내려보냈다. 경기도를 시작으로 전국에서 학생인권조례를 개악하거나 아예 폐지하려는 시도들이 강화되고 있다. 지난 11월 29일 경기도의회에서는 임태희 교유감의 개정안을 보류시켰다. 당장의 개악은 막았지만 학생인권조례 폐지까지를 포함한 전방위적인 공격이 예상되고 있다. 인권에는 나중이나 예외, 한계가 있을 수 없다. 모든 인간, 나아가 모든 존재가 존엄하고 평등할 수 있도록 다 함께 투쟁하자!

Comments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