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3지대의 괴물들22대 총선과 시대 군상

 

나도원(전 노동당 공동대표, 현 노동당 경기도당 공동위원장)

 

 

<서울의 봄>, 2023년 말부터 2024년 초까지 한국 인민의 스트레스 지수를 한껏 높여주고 있는 이 영화는 사회적인 의미가 있으나 예술적으로는 아쉬움이 많다. 영화-예술적으로 아쉬운 부분 중 하나는 특정 영화, <작전명 발키리>(2008년, 브라이언 싱어 감독, 톰 크루즈 주연)의 아류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1979년 한국에서 벌어진 사건을 재현한 <서울의 봄> 제작진이 영향을 받았건 그렇지 않건 간에, 1944년 독일에서 있었던 히틀러 암살과 반나치 쿠데타 시도를 그린 <작전명 발키리>와 겹치는 설정과 장면이 너무 많다.

사실 <서울의 봄>의 두 세력인 진압군과 반란군 모두 박정희 정권의 잔당이었으며, <작전명 발키리>의 양심적인 군부와 나치정권 역시 침략 세력이었다는 점에서 ‘애국심과 군인으로서의 사명감’이라는 척도가 다르긴 해도 결국 ‘정도의 차이’라는 사실도 곱씹을만하다.

 

양당 체제 극복이 정말로 시대 과제인가?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정확히는 선거를 앞두면, 유권자들은 날이면 날마다 돌아오는 재방송을 시청한다. 이번에도 이 채널 저 채널에서 절찬 방영 중이다. 프로그램 제목에 ‘제3지대’나 ‘혁신’이 굵은 글씨체로 달리기도 하지만, 어떻게 말을 꾸며대든 그저 자기들 잘 먹고 잘살겠다는 수작인 것을 세상 사람들이 모를 리 없다. 특히 아무나(!) 양당 체제를 극복하자며 제3지대를 운운하니 가히 ‘막장막하’이다. 양당 체제 자체가 아니라 ‘보수’ 양당 체제라서 문제이고, 매번 그 안으로 수렴/고착되기에 문제였는데 말이다.

우선 그 보수 양당 체제를 견고히 해온 당사자들, 이준석과 이낙연 등의 신당 세력화 시도는 제3지대라 말할 수 없다. ‘제3’이 아니라 ‘제1-1’이나 ‘제2-1’쯤 될 것이다. 그들까지 뒤섞여 벌어지고 있는 제3지대라는 난장판은 단물 더 빨아보겠다는, 속이 뻔한 늪지대일 뿐이며, 온갖 교배를 마다치 않는 정치생태계 교란종들의 공개 번식장에 불과하다. 특히 한때 진보정당 출신들이 가관이고, 그 모습은 비루하기까지 하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이었으나 ‘정체를 알 수 없는-정체가 없는’ 행보를 보여온 금태섭 전 의원과 함께 ‘새로운 선택’으로 제3지대를 만들겠다고 정의당 출신 조성주와 류호정 의원이 손을 잡았다. 그들은 청년‧여성정치의 상징인 양 등장했다가 탈이념을 주장하더니. ‘새로운 선택’이라며 여성징병제와 주휴수당폐지 등의 정책을 발표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정체가 없는’ 정치를 과감히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류호정 의원은 정의당 비례1번 의원직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소속 정당 간판에 먹칠까지 하고 있어 광범위하게 지탄받고 있다.

민주진보 혹은 민주개혁세력의 성공을 말하며 전통적인 친민주당 표심에 기대려 ‘개혁연합신당’을 제안한 용혜인의 기본소득당, 천호선 등 사회민주당에게도 공통점이 있다. 둘 다 과거 소속 정당에서 자신들의 뜻을 관철할 수 없게 되자 탈당하여 급조한 정당으로, 사회민주당은 정의당을, 기본소득당은 노동당을 탈당한 인사들이 꾸렸다. 기본소득당은 지난 총선에서 선거제도개혁의 성과를 일거에 짓밟은 민주당 비례위성정당에 용혜인 씨를 파견하여 원내에 진입했고, 이후 진보정당으로 인정받지 못하게 되었으며,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발표한 2022년 정당 개황에 따르면 당비납부당원이 4%에 불과한 페이퍼정당에 가깝다. 조직력은 없고 지방선거 참패로 활로가 전혀 보이지 않자 또다시 비례위성정당으로 꿀맛을 탐하는 중이다.

탈이념, 운동권 극복, 정치개혁을 말하는 류호정, 용혜인 등은 비교적 젊다는 생물학적 나이만 가졌을 뿐 그 정치행태는 배신과 변절, 보수정치와의 결탁으로 점철되었다. 개혁대상이 개혁을 외치고 있는 셈이다. 한국정치사라는 보다 넓은 관점에서 보면 청년정치, 여성정치, 나아가 진보정치에게마저 ‘의문의 1패’를 남기고 있어 그 해악이 작지 않다. 이런 식으로 양당체제의 변화를 꾀한들 무슨 의미가 있는가. 설령 선거에서 일시적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정체가 없는’ 제3당이 등장한들 그 정당이 과연 얼마나 유지되겠는가.

 

원칙 없는 연대연합, 아니라면 색깔 분명한 경쟁과 공존

노동당 녹색당 정의당 진보당, 자타공인 4개 진보정당의 모색은 늘 험난했다. 일시적으로 흥하기도 하였지만, 그때마다 상대를 무시하고 외면하는 자당 중심 전략이 전체의 성장을 가로막기도 했다. 하지만 4개 진보정당 정립이 지속되고 공통으로 난관에 봉착함으로써 상호인정과 협력의 필요성에 대한 기본적인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그렇지만 진보정당들의 선거전략 역시 총선을 앞두고 상충할 수밖에 없고, 최소한의 공통분모가 될 원칙을 내려놓으면 문제가 발생한다.

그런 점에서 진보당 윤희숙 상임대표가 진보정치세력의 연대연합 범위로 노동당 탈당파 중심의 기본소득당과 정의당 탈당파 중심의 사회민주당으로 이루어진 ‘개혁연합신당’에 대해서도 “진보당은 가치와 방향에 동의하면 열려 있다”고 언급한 것(‘아직 판 안 깨졌다’ 연대 고심 중인 정의·진보·녹색·노동, <오마이뉴스>, 2023.12.28.), 그리고 진보당 강성희 의원이 반윤석열을 위한 “야권총단결”, “비례연합정당”을 주장한 것(전북도의회 기자간담회, 2023.12.27.) 등은 우려스럽다. 진보정당들의 기조는 물론이고 민주노총이 2023년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채택한 총선방침과도 상충한다.

※ 민주노총은 총선방침에서 연대연합의 대상을 “진보정당을 포함한 진보정치세력”으로 규정하는 동시에 지지 금지 대상으로 “친자본 보수양당 –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친자본 보수정당과 위성정당”으로 설명했다.

현재 진보진영에서 나오고 있는 여러 갈래의 연대연합론이 풀어야 할 난제의 핵심은 대상과 방식이다. 그 대상에 민주진보 혹은 민주개혁이라 불려온 자유주의 세력과 부역자들은 포함될 수 없다. 방식도 세심해야 한다. 동네잔치를 열겠으니 이웃들 다 모이라고 해놓고 잔칫상 위에 숟가락 두어 개만 올려놓는다면, 혹은 같은 자리에 앉을 수 없는 사람들까지 죄다 불러놓는다면, 진짜 이웃들은 그 자리에 흔쾌히 앉을 수 없는 노릇이다.

 

양두구육(羊頭狗肉)이 아니라 양두구골(羊頭狗骨)이네

다양한 연대연합 논의의 결정적 변수는 선거제도이다.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유지될지, 아니면 보수양당이 당리당략을 위해 만지작거리고 있는 병립형-권역별 비례대표제로 변경될지에 따라 현재의 논의들이 원점부터 재검토될 수 있다. 과거 정당투표만으로 비례대표를 선출하는 병립형으로 회귀할 경우, 준연동형을 위해 탄생한 꼼수-위성정당은 불필요해지고, 보수정당 내 이탈 세력은 견제를 받는다. 물론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첫걸음도 제자리로 돌아간다.

여기에 전국을 권역별로 나누어 비례대표를 선출하는 안까지 더해지면 더 먼 뒷걸음질이 된다. 지금처럼 비례의원의 수가 소수에 불과한 상황에서 기존 득표수를 계산해보면 권역별로 7~8% 이상의 지지를 받아야 비례의원을 배출할 수 있다. 3%벽도 소수정당의 성장을 가로막는 장벽인 현실이 더욱 악화하여 새로운 정치세력의 국회 진입은 사실상 원천 봉쇄당할 수 있다.

이러한 변수 외에도 한국사회에는 소비자주의가 만연해있다. 2023년, 많은 이들이 가슴 아파했고 분노했으며, 또 반성하는 계기가 된 대한민국 학교의 현실에도 교사-학부모의 관계가 서비스제공자-고객의 관계로 변질된 소비자주의가 있었다. 한국정치 역시 마찬가지다. 차이가 있다면, 표를 지불하고 만족감을 기대하는 유권자가 갑이 아니라 을이라는 사실이다. 정치 주체를 소외시킨 한국 보수정치가 혐오정치를 낳았고, 악한 자와 덜 악한 자의 대결로 고착되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메뉴를 바꾸는 대신 메뉴명과 간판만 바꾸려 하는 시장 앞에 서면 탄식이 새어 나올 뿐이다. “양두구육(羊頭狗肉)도 아니고 양두구골(羊頭狗骨)이네…”

 

봄의 투쟁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진보정치는 정치지향을 분명히 하고 견지하는 정당의 성장, 그리고 직접적이고 자율적인 정치참여를 통하여 ‘재통합과 회귀’가 아니라 ‘재정립과 교체’로 다시 일어설 수 있다. ‘평등, 생태, 평화’는 이 시대의 가치이자 모두의 생존을 위한 길이다. 싸움이 급하니 ‘정도의 차이’를 선택하자고 강요하며 ‘회군’할 것인가, 아니면 원칙을 세우고 다양한 방식으로 힘을 모으며 키워갈 것인가.

※  노동당은 “사회변혁을 위한 공동투쟁을 기반으로 진보정치 성장과 노동자정치세력화를 위한 선거연대에 임하되, 사회주의 대중정당 노선을 견지”하면서 “진보정치의 성장을 위하여 자유주의 세력과의 선 긋기와 비타협을 조건으로, 의미 있고 현실성 있는 연대연합정치를 위한 정치선거제도 개혁운동 그리고 반노동 반민주 반평화 정부에 대한 반정부 공동투쟁에 나설 것을 제안”하였다(<노동당 2024 총선방침>, 2023.06.). 또한 “정당법과 선거법이 가로막고 있는 상황에서 정당 간 선거연합의 형태로 제기된 선거연합정당 시도는 의미 있는 진전임을 확인”한 바 있다(2023년 9차 (임시)중앙집행위원회, 2023.11.).

봄-산은 죽음 속에서 삶이 피어오르는 곳이다. 흔히 봄 앞에 ‘만물이 소생하는’이란 수식을 붙이지만, 아지랑이 아래에는 힘겨운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새봄이 오기 전까지 뿌리 한 가닥 내릴 흙 한 줌 얻지 못한 사람들은 차례로 벚꽃처럼 스러져 ‘모란꽃 피는 공원’으로 가야 했다. 그들이 보지 않겠다고 숨을 돌려버린 봄날을 우리는 살고 있다. 그래서 봄은 눈의 계절이다. 벚꽃이 질 적엔 분홍 꽃눈이 날리고 아까시꽃이 질 무렵엔 하얀 꽃눈이 내린다. 그래서 또한 봄은 눈물의 계절이다. 많은 사람들이 제사와 추도식을 같은 날에 지내야 하는, 그런 계절이다. 지금도 산에서, 도시에서, 그리고 거리에서 봄을 위한 투쟁(春鬪)은 계속되고 있다. 어떤 이들에게 봄은 마냥 기다린다고 절로 돌아오는 계절이 아니다.

가능할 것 없을 것 같은 세상에도 자신의 몸을 활처럼 팽팽하게 당겨놓은 반동분자, 반동의 동반자들이 있다. 등을 보이는 자들에는 두 부류가 있다. 방향을 튼 그들은 도착지가 어딘가에 따라 배신자가 되기도 하고 선구자가 되기도 한다. 그 차이는 등이 아니라 옆얼굴을 보여주며 함께 걷는 것에 있다. 꽃은 땅에 떨어져 썩고, 그 자리에 열매는 씨앗을 품고 떨어진다. 걸음 하나하나가 봄-빗방울이 되어 귀하고 여린 작물을 키운다. 좋은 나무를 심으면, 열매가 맺힐 것이다.

2024년 4월, 우리는 어떤 ‘한국의 봄’을 선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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