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나도원의 음악과 사회 겨울 분향소에서

 

 

나도원(음악평론가, 노동당 경기도당 공동위원장)

* 사진설명 : 방영환 열사 분향소는 한강성심병원, 강서구청사거리를 거쳐 현재는 동훈그룹 회장 거주지로 옮겨졌다.

뒤늦게

2023년 끝자락 어느 날, 찬 바람 휭휭 부는 곳, 강서구청사거리 방영환 열사 차량분향소에 있었다. 길 건너 교회엔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가 반짝인다. 사거리 교통섬을 빠르게 흐르는 인파 속 걸음 멈추고 조문하는 사람의 마음이 한기를 녹인다.

오랫동안 한강성심병원 앞을 지키다가 강서구청사거리로 자리를 옮긴 분향소는 차량 위에 세워졌다, 스피커에서 <전태일다리에 서서>가 흐른다. “스크린도어 좁은 틈새, 쇠마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용광로,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컨베이어 벨트”, 이 노랫말 뒤로 마음속에 ‘그리고 스스로 불꽃이 된 노동자’가 절로 이어진다.

방영환 열사 분신과 사망 이후, 많은 동지와 단체가 뜻을 모아 투쟁을 벌였다. 그러자 고용노동부 남부지청은 방영환 열사가 생전에 제소한 건에 대한 무혐의 처분이 잘못된 것임을 ‘뒤늦게’ 시인하였다.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 그리고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위반을 ‘뒤늦게’ 적발하여 시정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근로감독 결과에 따라 해성운수를 ‘뒤늦게’ 송치하고, 동훈그룹 확대 조사를 진행 중이다.

서울시 역시 ‘뒤늦게’ 택시 전액관리제 실태 전수조사를 개시했다. 1단계로 동훈그룹 21개 사업장을 조사하고, 2단계로 올해 봄까지 특별관리대상업체 등 34개사를 조사하기로 했다. 3단계로 연말까지 199개사를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검찰 남부지검은 해성운수 정승오 대표에 대하여 폭력, 모욕, 집시법위반 등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법원은 구속을 결정했다. 폭력적인 회사대표 정승오 역시 ‘뒤늦게’ 구속되어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당연한 것, 당연하지 않은 것

어떤 사람들이 당연시하는 자본주의의 시간은 불과 이백 년 남짓이다. 수만 년 인류 역사에선 눈 깜박이는 새처럼 아주 짧은 기간 유지된 체제이다. 당연한 것이 아니다. 한편, 날 때부터 혈통으로 신분이 정해지던 사회는 아주 오랫동안 운명처럼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당연하지 않게 된 지는 불과 백수십 년, 민중-우리가 바꾸었다.

묻는다. 열사들의 뜻을 받아 노동자가 존중받고 주인 되는 것이 당연한 세상을 위해 투쟁할 각오가 되었는가? 열사들의 뜻을 이어 자본주의를 근본부터 바꿔, 돈보다 생명이 중한 것이 당연한 사회를 위한 투쟁을 함께 결의하겠는가?

한 시절 마음 들뜨게 하다 그날 하루만 지나면 갑자기 처량해지는 것이 있으니 크리스마스트리다. 다른 일에도, 모든 삶에도 때가 있는 법, 이 체제는 자꾸 늦추려 하지만, 당연한 것을 더는 늦추지 말자.

https://youtu.be/pehshJoQZnY?si=XkuKMBRY9k7YoL2M

<전태일다리에 서서>, 박은영 작사‧작곡, 박준 노래

※ 2020년 11월,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아 노동가수 연영석, 작곡가 박은영, 노래패 ‘꽃다지’의 정윤경, 작곡가 강전일이 추모곡을 발표했고, <전태일다리에 서서>는 그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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