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믿는다면, 노조법 개정은 분명히 될 것이다

 

건수(노동당 경기도당 집행위원 / 노동당대변인)

 

 

노조법 2조 3조 개정이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에서 통과된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고, 재부의 했으나 국민의힘이 협조하지 않아 재부의 역시 실패했다. 돌이켜보면 거통고 조선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저 멀리서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과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생겨난 ‘노란봉투법’의 한 여정이 마무리 된 것이다.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만들어내었을 만큼, 이제 법은 국회의원들이 밀실에서 논의하고 결정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노동자민중이 삶의 현장에서 겪는 문제를 법안으로 만들어 제기하는 이른바 입법운동의 전성기를 맞이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측면에서 차별금지법제정운동에 대한 민주당의 외면, 그로인한 좌절은 다른 관점을 제공하기도 할 테다.

 

다만 중요한 것은 거리와 광장, 국회와 제도권, 청와대와 정부기관과 같은 ‘정치’와 ‘권력’의 장들 간의 경계는 점차 모호해지면서 또 뚜렸해지고 있다. 한편으로는 입법운동이 활발해진 것처럼 시민이 스스로 법안을 발의하고 쟁취하는 과정에서 국회의 문턱이 낮아지고 있다. 국회에 대한 시민의 개입력이 늘어나면서, 국회가 감찰 및 감사하는 권력기관에 대한 정보 역시 포화 상태에 가깝게 유포되고 있다. 그동안 우리가 생각해왔던 정치와 지금 시민들이 행하고 있는 정치는 매우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뀌지 않는 정치의 룰 같은 것이 있다면 바로 정치의 주체가 올바로 서야 한다는 것이다. 혹은 정치의 주체가 정치적으로 세력화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시민들은 각 개인으로 정치에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세력의 일원으로서 정치에 개입한다. 2010년대 반값등록금 운동이 그랬고, 2014년 페미니즘 리부트가 그랬고, 2014년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운동이 그랬던 것처럼 한 세력이 가지는 정치적 힘은 주체의 정당성에서 나온다. 그러니 공공성과 사회보장 청년세대가 하면 달라보이고, 사회운동이 하면 고리타분한 얘기가 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옳고 그름을 따지는 정치적 논쟁을 보기는 매우 어렵다.

 

무엇을 할 것인지보다, 누구를 영입할 것인지가 혁신의 과제로 둔갑한지 오래이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는 누구의 투쟁을 앞세워야 이 현실정치에서 명분과 정당성을 얻을 수 있는 것인지 잠시 생각해본다. 거통고 투쟁을 통해 지금까지 이어온 노조법 개정운동의 궤적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기실 노조법 개정운동의 동력은 노동자들의 고달픈 처지 같은 시혜적 문제가 아니였으며, 불법과 합법을 오고가는 제도적 착취의 문제를 고발한 데 있었다. 이는 평범한 시민들에게도 일정한 통찰을 주었다. 아무리 일해도 가난하고, 아무리 정치가 바뀐들 삶은 바뀌지 않았다는 아리송한 현실 말이다. 다시 말해서 불법을 저지른 자가 아무도 없는데 누구는 가난하고, 누구는 떵떵거리며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제도적 착취, 즉 이 세상이 착취구조로 설계되어 있다는 통찰을 던져준 것이다.

 

어쨌거나 시간이 흐르며 노조법 개정운동의 설득력도, 시민들의 관심도, 이를 촉발시킨 거통고 노동자들의 현실도 잊혀져 갔다. 그리고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며, ‘용두사미’로 투쟁이 끝나고 말았다. 이는 패배에 가깝지만, 동시에 우리가 현실이 어떻게 전진하는지, 운동이 어떻게 현실을 바꿔왔는지 다시금 일깨운 소중한 경험이기도 했다. 세상은 저절로 바뀌지도 않고, 단번의 기회로 바뀌지도 않지만, 사람들 가슴 속에 불을 지피는 하나의 계기와 계기마다 힘을 모아낼 때, 세상은 전진해왔었다. 전태일 노동자의 분신, 5.18 광주민중항쟁, IMF 이후 끊이질 않는 노동재해와 사회적 참사를 통해서 사회적 과제를 제시해온 우리의 역사가 곧 운동의 역사이고, 노조법 개정운동의 시간도 그 역사 속에서 함께 기록될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거꾸로 가고 있다고 하지만, 세상이 고장나는 패턴은 일정하다. 애석하게도 우리는 세상이 고장날 때 등장하는 사람들 같기도 하나 그것이 꼭 나쁜 것이 아니다. 세상이 고장나 있으니 운동을 시작한 것 아니었던가. 그러니 세상이 거꾸로 간다고 한탄하는 것도 좋지만, 세상이 고장나는 흐름 속에서 우리의 역할을 찾자. 좌절하지 않는 것도 실천이 되는 세상이다. 그러니 노조법 개정운동의 긴 시간, 마음 껏 노조할 권리를 세상에 외치며 국회와 대통령과 재벌과 싸워온 시간을 만들었던 우리의 힘을 떠올리자. 투쟁할 수 있어서 좋았다.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가 참담한 대법판결을 듣고 한 말이 있다. “지금은 지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사후 역사는 김병숙 사장이 잘못되었음을 판단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노조법 개정, 언젠가는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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