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나누기] 나의 감옥살이 이야기

 

 

글 – 김호중노동당 경기도당 전국위원(건설노조 경기중서부지부 지부장)

 

 

요즈음 사람들은 “너 콩밥 먹을래”라고 이야기 하면 아마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과거에는 감옥에 갇히면 콩밥을 먹었습니다. 제가 제일 처음 감옥에 간 것이 1986년 성남 상대원 공단지역에 있었던 박영진 열사 분신 이후 노학연대 가두 시위에 참가했다가 구속되었는데 당시에는 정말로 콩밥을 먹었습니다. 가다밥이라고 일정한 틀로 찍어 만든 밥으로 쌀과 보리 그리고 콩으로 지어 만든 밥을 나눠주었습니다. 화장실도 똥통과 직접 연결되어 있어서 냄새가 올라오는 것을 대포알이라는 것을 만들어 막아 두었다고 오줌이나 똥을 쌀 때 한쪽으로 치워두고 싸고 다시 막고 하던 화장실이었지요. 그래서 화장실 옆에서 잠을 자면 지독한 가스 냄새를 맡으면서 자고는 했지요.

 

다시 감옥에 가게 된 것은 1987년 구로구청 부정투표함을 지키기 위한 투쟁에 참여하였다가 구속되었습니다. 이 당시에 구속되고 보니 얼마 안되는 기간이지만 콩은 없어지고 쌀과 보리로 지어 만든 보리밥을 가다밥으로 나눠주더군요. 당시 화염병이 난무하고 경찰관도 많이 다친 상태였고 나름대로 학년도 높고 해서 다들 실형을 살 거라고 했는데 노태우가 당선되고 부정투표에 대한 여론이 있었지만 잠재운 상태여서 그런지 실형을 살지는 않았습니다. 구속되었다 나와서 당시 학생운동을 통해 노동현장에 관심을 가지게 된 우리 세대가 그러하듯 당연한 수순으로 공장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반월공단에 있는 처음 들어간 회사에서 노동조합을 결성하였습니다. 1990년에 파업하고 점거농성을 진행하였다고 또 구속되었습니다.

 

불과 몇 년 만인데도 감옥에서 가다밥은 여전하였는데 쌀밥을 나눠주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까지도 대포알로 화장실 구멍을 막고 쓰고 있었지요. 출소한 이후 건설현장에서 일하면서 여기저기 공장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였지만 때로는 받아주지 않고 때로는 3개월 안에 쫒겨나는 생활을 이어가다가 결국 전업이 건설노동자가 되었습니다. 1990년대는 많은 사람들이 혁명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리고 때로는 자살하고 때로는 살 곳을 찾아 떠나는 시대였습니다. 건설현장은 나름 희망까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노동자의 삶을 살아가면서 노동조합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황소가 뒷발로 걷다가 쥐를 잡는다는 격으로 건설노조가 원청과의 단협을 통하여 전국의 현장에서 건설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시작했고, 한차례 성장하는 계기가 있었지요.

 

 

자본은 성장하는 건설노조를 마냥 지켜보지 않았고 당시 공갈협박이라는 파렴치범의 죄목으로 건설노조 간부들을 구속했고, 명동성당에서 건설노조활동 정당하다고 하면서 289일간 농성투쟁도 했지만 결국 다시 2004년 구속되었습니다. 구속되고 보니 감옥은 아파트처럼 지어졌고 화장실에 수도가 들어와 있고 쌀밥을 나눠주면 밥그릇에 떠먹는 것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잠깐의 구속이었습니다. 국제적인 항의가 있었고 너무 무리한 탄압이라는 것이 이유였을 겁니다. 정권의 무리한 탄압이라는 것이 누가 봐도 뻔한데 건설노동자의 조직된 힘으로 돌파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후 이를 악물고 현장투쟁을 조직하였고, 2007년 안산 목수 총파업을 성사시켰습니다. 지금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드물겠지만 건설노동자가 일용직 노가다라고 노동자도 아니라고 천대받았는데 자신의 요구조건을 걸고 총파업을 한 것입니다. 안산목수총파업은 수도권 최초의 전문업체와의 단체협약이었고, 당시 지부장으로 투쟁을 이끌었기에 투쟁에 대한 책임을 지고 구속될 때는 나름 열심히 살았다는 자부심도 있었습니다. 감옥의 밥은 쌀밥으로 바뀌었지만 범치기라고 일부 재소자들이 댓가를 지불하고 고기나 영양가 있는 반찬을 가져가 버리는 바람에 일반 재소자들은 부실하게 먹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닭파우치처럼 영양가 있는 부식을 구매해서 먹는 날이면 설사하기 바빴던 기억이 납니다.

 

 

 

 

 

 

 

 

 

 

 

건설현장에 단체협약이 생겨나고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사람대접 좀 받는가 했더니 무식하고 무지한 대통령이 뽑히고 나서 또 다시 2023년 윤석열의 건설노조 탄압 ‘건폭몰이’로 구속되었습니다. 간만에 감옥에 들어와 보니 일단 감옥 안에 전기장판이 깔리거나 온돌이 들어와서 바닥이 따듯하다는 것입니다. 밥이나 부식이 과거보다 상당히 좋아져서 기름기를 먹는다고 설사하는 일은 없더군요. 코로나 영향으로 면회가 힘들어져서 일반 재소자의 경우는 대부분 면회가 없는 관계로 감옥 생활이 힘든 것은 사실이었지요.

 

활동가들이 투쟁을 하다보면 감옥에 갈 수 밖에 없는 선택을 할 때가 있기도 합니다. 아니면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정권의 기획탄압으로 감옥에 가기도 하지요. 감옥에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투쟁하자고 하지만 그럼에도 감옥에 들어가는 것은 많은 활동가의 부담일 것 이지요. 그러나 감옥 안에서 생활을 잘 설계하고 활동하는 기간 쉬지 못한 것을 충전하면서 푹 쉴 수 있는 계획을 가진다면 탄압하는 자들에게 엿을 먹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활동하는 기간 제대로 학습하지 못했던 것을 학습하고 사색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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