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원장|발행인 편지] 
당원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 두 달 일곱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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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휴, 인제 나도 할 만큼 했으니 그만하고 나도 내 앞가림 좀 하자!”

9년 전인 2007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민중가요기본콘텐츠수집사업에 채록연구원으로 참여하면서 1980~90년대에 활동한 민중음악인들의 목소리를 담는 일을 했습니다. 1980년대에 활동을 시작하여 옥고까지 겪고도 꾸준히 활동 중인 분과 대화를 나누고, 청년 시절의 음악이 개인에게 남긴 의미를 물었을 때 돌아온 답의 첫 문장입니다. 우리 중 어떤 사람들, 저를 포함하여 어떤 사람들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정당이든 당원들의 만족도는 ‘미용실에 다녀와서 흡족해하는 사람들의 비율’과 비슷하지 않을까 합니다. 세상을 바꾸겠다고 참여했으니 소속정당 자체에 바라는 바가 많고, 그래서 미흡함을 느끼는 건 당연합니다. 한편으로는 민주노동당-진보신당, 청년진보당-사회당의 흐름이 합쳐진 노동당의 역사는 길지만 존재감은 위축되어 있습니다. 한때 국회의원을 보유했으며 지금도 여러 지방의원들이 활동 중입니다만, 현재의 위상에 아쉬워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미흡함과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1만 명이 넘는 당원들이 있는 이유, 새로운 입당자들도 꾸준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바람은, 고민은 무엇일까요? 두 달 동안 매주 촛불집회에서 당원동지들을 만나고 있지만, 그 사이에 별도로 마련한 일곱 차례의 당원 모임과 행사에서 깊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우리 ‘내부자들’의 이야기를 모아봅니다. 모임과 행사에 정식패널로 참석한 분들의 이름은 밝히되, 허심탄회하게 속이야기를 한 당원들은 익명으로 남기니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군포, 수원, 고양에서 만난 당원들 : 당과 당원에 대하여

노동당 혁신위원회 활동 기간에 경기도당은 경기중부, 경기남부, 경기북부로 나누어 세 차례 당원간담회를 개최했습니다. 광역시도당들 중에서 가장 많은 횟수입니다. 경기중부권 당원간담회는 10월 16일 군포에서, 경기남부권 당원간담회는 10월 19일 수원에서, 경기북부권 당원간담회는 10월 24일 고양에서 열렸습니다. 각각 이덕우 당대회 의장, 홍세화 금민 안효상 고문, 채훈병 혁신위원 등과 동행했습니다. 간담회는 대체로 당의 문제, 갈등 인식, 제안 해법의 흐름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당내 갈등이 화두였습니다. 지금도 완전히 해소된 건 아닙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당내 갈등은 심리․정서적 문제가 더 작용하는 것 같다. 서로의 차이와 과거의 질서를 해명하고 단절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과 “갈등은 상시적이다. 갈등의 제도적 해결책이 미비한 상태이다. 당의 운영, 지향을 반영하는 제도 개선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제언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반면 “당내 갈등과 당 대중성의 상관도는 낮다. 당원들은 활동가들의 갈등에 관심이 없다. 가시적인 노동당 활동이 더 필요하다.”며 “당이 당원들의 일상생활에 도움을 주었으면 한다. 당이 당원 대중에 무언가를 제공해야 한다.”거나 “당원들에게 정파갈등이 중요한 문제인가? 지역 당원들에게는 큰 의미가 없고 관심도 없다. 오히려 잦은 대표단 선거에 당황스러워 할 뿐이다. 다수 당원들은 일을 제대로 하는 당을 바라고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안타까운 대목도 있었습니다. “진보신당이 총선 비례대표 1번으로 김순자 후보를 세우는 것을 보고 관심을 갖게 되어 진보신당에 입당했는데도 나를 ○○당계로 분류하더라. 심지어 청년당원들 사이에서마저 그런 문화가 있다. 이것은 악습이다.”와 같은 성토가 있었고, “세대 간의 소통, 즉 여성주의, 장애인지 등 문화적응에 어려움을 느끼는 당원들도 있다. 당 활동을 하면서 체감하는 문제는 그런 쪽이 더 많다.”는 분석과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법을 고민하자는 제안도 나왔습니다.

당원이 소중하다는 이야기는 빠지지 않습니다. “근자열근자래(近者說遠者來)! 가까이에 있는 당원들부터 결속하는 방안이 우선이다. 당은 앞으로 사회의 구심점과 당원의 자부심을 잡아 확장해야 한다. 당원들은 대체로 당 밖에선 활동적인데 당 안에서는 피동적이다. 당 조직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지적한 당원은 얼마 후 스스로 중앙당 상근자로 자원했으니 기대해봐야겠습니다. 당원모임에 막 참여하기 시작한 당원은 “신입당원들에게 당은 불친절하고 활동 참여에 있어서 장벽이 높다. 당은 과거와 무관한 당원, 새로운 당원, 미래의 당원들의 자리와 역할을 마련해야 한다.”고 충고했습니다.

당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에 대한 의견도 깊습니다. 부문활동 핵심당원은 “당의 목표에 대한 합의가 있었는가. 설정하고 정립해야 한다. 노동당은 지역정치 성장으로 목표를 전환해야 한다. 지금은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지방선거를 착실히 준비하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고 했고, 학생운동 당원은 “학생과 대중에게 노동당과 다른 진보정당들 간의 차별성을 설명하기가 어렵다. 대중적인 설명법이 필요하다.”고 조언합니다. 그러면서 이런 명언을 남겼습니다. “경찰이 알아주는 정당이긴 하다.” 혁신위원회 회의에서 이 말을 전했더니 다른 위원이 말을 보태더군요. “검찰도 알아주는 정당”이라고.

과거를 거울삼아 과제를 정리할 기회도 얻었습니다. 진보신당 출신 당원은 “진보신당 이후 세 번의 환상이 있었다. ‘지못미’ ‘촛불’ ‘조승수 당선’이다. 활기찬 분위기가 만들어졌고, 확장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시기를 낭비한 건 아닐까. 분위기에 취하여 자기색깔을 만들고 자기정치의 기초를 만드는 데에 나태했다. 당은 완성을 유예해놓고 있었다. 결국 집단탈당이 있었고, 성과에 대한 기대가 낮아지고, 당원들의 충성도도 낮아졌다.”고 진단했습니다. 이에 오랜 경험을 가진 당원께선 “민주노동당 시절을 되돌아보면, 지역은 인적․물적 토대를 구축하며 연결․접촉면을 확대하고, 중앙은 지역활동을 위하여 사업․의제를 발굴하고 연계하는 역할을 수행했어야 했다. 기초를 놓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회고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미 답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만의 의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당원들은 의제를 만들어가는 토론에 대한 갈증이 있다. 의제 생산이 부족한 것은 비단 당 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왜 노동당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제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당의 활동과 의제를 만들어가는 것에 집중했으면 한다.”는 말씀도 기억에 남습니다. 이외에도 전국 각지에서 열린 당원간담회와 수차례 토론식 회의를 통하여 혁신위원회는 지난 전국위원회에 ‘권고안’을 제출했습니다. 버릴 것 없는 의견들을 바탕으로 2017년은 많은 걸 바꾸는 해가 될 것입니다.


부천과 의정부(양주)에서 : 당에서, 혹은 당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부천 원종종합사회복지관의 인권탄압과 여성차별에 저항했다는 이유로 사실상의 보복해고를 당한 이은주 당원, 그리고 그와 함께 투쟁하는 동지들이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당한 어려움을 지역시민들과 활동가들이 돕기 위해 마련한 자리가 10월 28일 후원주점이었습니다. 많은 당원동지들이 참석하여 농담부터 미담까지 다양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진보신당 초기에는 당의 주요 직책을 맡거나 공직선거에도 출마했던, 하지만 지금은 당 활동과 거리를 두고 있는 분들도 만났습니다. “재미있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다시 하고 싶다”는 말 속에는 함의가 있습니다. ‘재미와 의미, 동기와 활기’가 있는 당, 우리는 그것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역시 노동당원들이 주축이 되어 양주에 설립한 경기북부노동인권센터 후원주점을 11월 2일에 다녀왔습니다. 의정부에 마련한 후원주점에서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20세 자녀가 노동당에 관심을 보이는데 입당하라고 해야 할지 망설여진다. 입당하면 어떤 활동을 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 당원이 계셨고, 노동당은 “민주노총과 같은 대중조직에 대하여 저변의 마음부터 얻는 것이 먼저”라는 의견과 “대중조직-민주노총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의견 사이에서 열띤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전자는 고민하고 답을 내놓아야 할 대목이고, 후자는 새 대표단과 함께 입장을 정하고 수행할 과제입니다.


당사에서, 광화문에서 속리산을 거쳐 다시 광화문으로

 

이러한 고민과 토론을 체계화-자료화하기 위하여 경기도당이 12월 16일에 연 기획사업이 ‘경기‘道’를 아십니까? : 경기도당 150분 집중토론 – 이것!’이었습니다. 임석영, 최윤행, 신지혜, 정윤상 동지가 발제자와 토론자로 나섰습니다. 발표 자료는 여기([2016 노동당 경기도당 150분 토론](자료집).hwp)에 있으니, 플로어에서 나온 이야기 위주로 전하겠습니다.

“부문과 의제의 관계 재설정을 통한 보완을 바란다”, “인프라 구축이 중요하다. 부문과 의제모임의 골간조직화로 나아가는 데에 보다 적극성을 기대한다”는 의견이 있었고, 패널들도 플로어에 자리했을 때에는 “수용하지 않는 공유가 아닌 소통, 시대변화에 적응하는 지속가능한 발전, 재미와 공감을 통한 감동, 노동당 화법의 변화, 다양성을 수용하고 존중하는 인권의 실천”의 핵심어들을 제시했으며, “지역 현실 중 포인트를 찾아 포커스를 맞추는, 즉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제안 등이 풍성하게 제시되었습니다. 다음 지방선거에 대한 토론도 있었던 만큼, 차기 경기도당 집행부가 주안점으로 삼을만한 내용이 많았습니다.

다음날 바로 이어진 주말 촛불행진을 마치고 밤 9시에 대한문에서 ‘노동당 노동전략 대토론회(12월 17~18일)’가 열리는 속리산으로 출발했습니다. 자정 무렵에 도착한 속리산 하늘에는 별이 가득했습니다. 고백컨대 저는 밤을 완전히 새운 참가자(속칭 최후의 1인)가 되고 말았는데, 일정을 모두 마치고 다시 광화문으로 복귀하기까지, 아니 광화문에 복귀해서도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초청패널인 노동전선의 이호동 공동대표를 비롯하여 당원동지들이 함께 나눈 ‘노동운동의 변화’에 대한 토론을 졸음과 투쟁하며 경청했습니다. 이렇게 당원동지들과 나눈 이야기를 꼼꼼히 적어봤습니다. 이제 속에 품은 생각을 나누고자 합니다.


단절에서 이음으로

지금 동지들에게 내놓으려는 두 개의 핵심어가 있습니다. 하나는 변화입니다. 그동안 듣고 나눈 대화와 고민 그리고 경험과 반성은 당원 참여와 당 운영 시스템의 변화의 필요성으로 귀결됩니다. 사실 최장 노동시간과 미비한 사회안전망으로 정리되는 한국사회에선 정당 활동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돈벌이 바깥의 모든 활동이 어렵습니다. 게다가 이번 ‘촛불’의 성격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분명한 정치의식과 정치문화는 어느 언저리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과 당원의 관계는 이처럼 쉽지 않은 조건을 전제로 합니다. 하지만 함께 숙의한 방안은 있습니다. 그것은 ‘제도화와 일상화, 그리고 경험할 수 있는 모델의 제시’입니다.

다른 하나는 연속, 즉 이음입니다. 우리의 역사는 단절의 역사에 가까웠습니다. 경기도당에도 전임자들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전 위원장, 전전 위원장 모두 당을 떠났습니다. 남은 건 문서자료뿐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제가 속한 당협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전 위원장, 전전 위원장이 모두 다른 당을 찾아 갔습니다(하지만 거기에서도 사라졌습니다). 지역정치는 네트워크와 사업의 축적으로 가능하며, 그건 결국 사람의 일입니다. 이처럼 변화와 연속은 상충되지 않습니다. 변화를 통하여 연속성을 확보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찾아갈 길입니다.

글의 맨 처음으로 돌아가 볼까요. 인터뷰 말미에 “아휴, 인제 나도 할 만큼 했으니 그만하고 내 앞가림 좀 하자!”고 운을 뗀 노래운동가는 왜 자리를 지키고 있는지 말을 이어갑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그놈의 노래 만들어 놓은 것 때문에, 그 일종의 표식이 된 노래들에 책임을 지겠다고 바동거렸죠.” 우리 중 어떤 사람들, 저를 포함하여 어떤 사람들의 마음도 이와 같지 않았을까 합니다. 여기에 제 마음대로 문장 하나를 보탭니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만들어낼 새로운 노래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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