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인천국제공항공사를 방문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언한 날, 한 페친(페이스북 친구)이 올린 글에 줄줄이 댓글이 달렸다. 페친 글의 요지는 인천공항의 직접고용이 아니라 자회사 설립을 통한 비정규직 흡수가 유력한 방식으로 보이고, 임금과 근로조건이 개선될 것 같지 않다는 것이었다. 댓글 중 하나는 인천공항의 직접고용 정규직화에 대해 “공기업에 취업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청년들이 들고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직접고용되기 위해서는 정규직처럼 “시험 봐서 입사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댓글도 있었다.

유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2월 37만 학교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자는 취지의 교육공무직법 제정안을 발의 20일 만에 철회했다. 이유는 현직 교사와 교육 공무원, 교사·교육 공무원 지망생들의 집단적 반발 때문이었다. 수많은 수험생들이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해야 가질 수 있는 지위를 비정규직이 거저 가질 수는 없다는 정의론적 논거가 여기에서도 위력을 발휘했다.

가장 하층의 약자와 차상위 약자가 서로 싸우는 흉한 모습은 앞으로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방법을 둘러싸고 작지 않은 잡음을 예고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의 정규재 논설위원은 칼럼을 통해 세간의 인심을 “불만은 증폭되고 비교와 질투는 구조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임금은 생산성의 결과”라는 주류 경제학의 훈계도 빠뜨리지 않았다. 비정규직의 고용 안정성과 노동조건이 혹독한 경쟁을 통과한 정규직과 동일할 수는 없다는 주장은 평범한 이들의 정의 관념에 상당한 호소력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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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다른 처지가 과연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의 결과일까? 가족의 경제적 지원, 부모로부터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자질 등에서 만인은 동등하지 않다. 이 조건이 개인의 노력과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은 자명하다. 그리고 흙수저-금수저라는 용어의 유행은 이 출발선의 불평등이 능력과 노력을 압도한다는 사회적 신호이다. 시장 경쟁을 통한 불평등을 옹호하는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에게도 출발선의 불평등은 무시할 만한 사안은 아니었나 보다. 그는 사람들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나 재산과 같은 우연과 행운에 의한 불평등을 능력에 따른 불평등보다 더 기꺼이 수용한다는 주장을 폈다. 주류 경제학 대가의 허무한 팔자소관론은 시장의 공정 경쟁 논리가 결코 만족스러운 정의론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임금이 시장에서의 노동생산성 차이를 반영하기 때문에 비정규직이 정규직과 같은 임금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충분히 반박되어 왔다. 2014년 300인 이상 대기업 사내하청 규모가 87만명에 이른다. 대부분이 불법파견이다. 그리고 이들의 생산성이 정규직 이하라는 증거가 없는데, 임금은 원청 정규직과 40% 안팎 차이가 난다.

국제통화기금(IMF) 2015년 자료에 따르면,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스페인, 일본, 미국, 영국, 한국 8개 국가 모두에서 실질임금 인상률이 노동생산성 증가율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한국은 그 격차가 가장 컸다. 다시 한번, 임금이 생산성의 결과라는 주장은 궤변이다. 인천국제공항에서 회계 업무를 담당하는 정규직과 보안 업무를 담당하는 용역업체 소속 비정규직의 생산성을 객관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들의 급여 차이가 역으로 그들의 생산성으로 오역되고 있을 뿐이다.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다른 측면의 경제적 진실이 있다. 경쟁의 공정성 여부와 무관하게 불평등이 어느 수위를 넘어서면 막대한 경제적 비용을 치르게 된다는 것이다.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가 2009년 유엔회의에 내놓은 보고서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원인 중 하나로 각국에서 증가하는 소득 불평등을 꼽았다. 세계 최악 수준의 한국 비정규직 비율은 소득 불평등의 최대 원인이다. 저출산 고령화, 가계부채 폭증, 소비 절벽 등으로 이어지는 소득 불평등은 한국 경제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 허구에 가까운 시장적 정의에 집착하기보다는 불평등을 시급하게 시정하려는 정책적 결단이 더 중요한 시점이다.

인천공항의 경우 2016년 당기순이익이 9650억원이고, 당기순이익률은 2012년 31%에서 2016년 43%로 증가했다. 그럼에도 비정규직 비율은 85.6%로 공기업 1위다. 비정규직 수탈의 결과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모든 비정규직에게 정규직과 동등한 고용 안정과 임금을 제공하는 정규직화 여력은 충분하다. 그리고 경제에 정의란 게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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