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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보다 멀고, 이웃보다 가까운 사람들이
공동육아를 꾸려가며 겪는 좌충우돌이야기

매주 화, 목요일에 연재됩니다.

 

오로지 내 아이를 잘 기르겠다는 일념으로 부모라는 이름의 천차만별 ‘어른이들’이 모였다. 가족보다 멀고 이웃보다 가까운 사람들이 공동체를 꾸려가며 겪는 좌충우돌 이야기들. 때로는 낯 뜨겁고 이기적이며, 때로는 용기 있고 어리숙한 내 안의 진짜 모습들이 드러나는 곳. 지금 어른이들의 등원이 시작된다. 웰컴! 공동육아!

 

 


-아마(아빠,엄마)들과 잘 지내지 못하는 교사에 대하여

 

여기 문제의 중심에 교사 ‘동백’이 있다. 고백컨데 나는 동백에 대한 이 글을 쓰는데 가장 많은 고민의 시간과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썼다 지우고 썼다 지우며 ‘동백’에 대해 자꾸만 생각해 보았다. 나는 왜 동백에 대해 쓰려는 것일까? 쓴다면 어떤 얘기를 써야 할까?

 

 

동백은 우리 공동육아에서 가장 오랫동안 일하고 있는 교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들에게 호불호가 가장 확실한 교사이며,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논란의 중심에 빈번히 오르는 이 이기도 하다. 내가 동백에 대해 글을 쓰기 어려웠던 이유는 아마도 그에게 또 한 번의 어떤 평가를 내리게 될까 염려되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교사라는 직책이 학부모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숙명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동백에 대해서는 유난히 많은 말들이 흘러나와 돌아다니곤 했다. 때로는 그게 과하다고도 생각했고, 개인에게 가혹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불편했다. 한 번쯤은 평가 대상으로서의 교사가 아닌 내가 알고 겪은 사람, 동백에 대해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동백은 붙임성이 없다. 아이들을 무척 좋아하고 잘 지내지만, 아마들과는 썩 그렇지 못한 편인 것 같다. 누군가 ‘동백~ 00 이가 어제 비염이 심해서 밤에 잠을 잘 못 자서요. 아침에 컨디션이 좀 별로더라고요. 피곤할 텐데 잘 때마다 건조한 지 숙면을 못해서 낮잠 잘 때 힘들어할까 봐서 미리 연락드려요~”라는 긴 톡을 보냈다 치자. 동백은 한참이 지나서야 답을 보낸다.

 

‘네’

 

‘응? 이게 다야?’

 

하고 잠깐 허망한 마음이 되어 골똘히 글자를 들여다보게 되는 것이다. 하원길 내 아이가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너무나 궁금한데, 동백은 늘 말이 없어 아마(공동육아에서 아빠+엄마를 부르는 말)들이 스스로 단념하게 했다. 어느 날 “엄마 나 오늘 여기 쿵 했쪄.”하며 아팠던 이야기가 아이 입에서 먼저 나올 때에도 대수롭지 않은 듯 “아까 양치하다가요.”라고 중얼거리는 게 다였다. 몇몇 부모들은 그런 동백을 답답하고 어려워했다. 그래서 담임인 동백을 놔두고 다른 선생님에게 상담을 하거나 의지하는 경우도 종종 생겨났다.

 

“두루미, 나 지금 아무도 안 와서 동백이랑 단 둘이 있단 말이에요. 너무 어색해요!! 제발 빨리 와줘요ㅠㅠ”

 

동백과 단 둘이 있는 자리가 부담스러운 다른 아마들로부터 sos 문자가 날아오기도 했다.

동백은 말주변이 없다. 한동안 아이들의 늦은 등원 시간이 터전(공동육아에서 어린이집을 일컫는 말)의 이슈로 떠오른 적이 있었다. 터전의 하루 일과는 오전 나들이로 시작되는데 등원 시간이 제각각이 되면서 나들이 나갈 시간이 자꾸만 늦춰졌던 것이다. 교사들은 나들이 시간이 줄어들지 않도록 출발 시간을 못 박았고, 아침마다 늦은 아이들 손을 잡고 나들이 장소를 찾아 우왕좌왕하는 아마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동백은 그런 아마들의 연락을 잘 받지 못했다. 나들이 중 아이들의 안전을 신경 써야 하므로 연락을 받기 힘들기도 했지만, 다른 교사들과 비교해 문자 한 통 보내주지 않는 동백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터전 주변을 서성이며 시간을 흘려보낸 아마들은 약이 오를 대로 올랐다.

 

“뚝방길로 나들이 간다고 게시판에 써져 있어서 거기서 기다렸는데, 장소가 바뀌면 바뀌었다고 톡 하나 보내주시는 게 그렇게 어려워요!”

 

그러면 동백은

 

“아이들이 가다가 멈추기도 하고 갑자기 장소를 바꾸기도 해서요. 그러게, 일찍 오시지…”

 

하며 조용히 기름을 들이부었다.

 


그러다 동백의 반 아이, 하준이가 갑자기 아침마다 등원을 거부하며 자몽(하준 엄마)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는 일이 일어났다. 아이들이 등원을 거부하는 일은 어디에서나(공동육아에서도!) 다양한 이유로 일어날 수 있지만, 문제는 자몽과 동백의 소통이었다. 자몽은 원인을 몰라 답답해 보였고 등, 하원길 동백과 종종 심각한 얼굴로 마주 서 있거나, 언성이 조금 높아지는 장면들을 스치듯 보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 자몽은 퇴소를 하게 되었다. 이 일로 동백에 대한 몇몇 아마들의 불만 어린 평가들이 수면 위로 얼굴을 드러내게 되었다.

 

“00이 적응 문제로 날적이에 장문의 편지를 적어 보냈는데 한마디 답이 없었어요.”

“저렇게 쌀쌀맞으니 애들이 안 무서워하겠어요?”

“애가 울어도 잘 안 달래주더라고요, 다쳐도 놀라지도 않고…”

“활동은 또 어찌나 많은지 애들이 쉴 틈도 없이 굴린다니까요.”

“위생 관념도 좀…. 나들이 중에 애들 아무데서나 오줌 누이는 것도 그렇고…”

“나들이 중에 애들한테 아무 간식이나 사서 먹이더라고요. 입맛 떨어져 밥 못 먹으면 어쩌려고…”

 

나는 이런 말들이 아마들 사이에서 나오는 것이 꽤나 불편했다. 그 평가들이 교사로서의 자질에 대한 것인지, 개인적인 성격에 따른 것인지 경계가 불분명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누구나 성격의 모난 부분이나 움푹 파인 부분이 있게 마련이다. 교사라는 이유로 원만치 못한 인간관계나 개인적 성향까지 비난받는 것은 어쩐지 정당치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그것이 교사와 학부모의 관계, 학부모들이 교사를 고용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것이라면 더욱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 마음과 달리 아마들 사이에서 동백의 입지는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와중에도 동백은 흔들림 없이 한결같아 보였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하준아~ 보고 싶었어. 어서 와!”

 

어느 날 터전에 가보니 문 앞에 하준이와 자몽이 놀러 와 있었다.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하준이를 둘러싸고 반갑게 그간의 소식을 묻고 있는데, 동백이 보이지 않았다. 자몽은 흘긋흘긋 동백을 찾는 눈치였지만, 동백은 끝끝내 터전 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못내 아쉬운 듯 발걸음을 떼는 하준이와 자몽을 보며 저 안에서 끝까지 버티고 있을 동백을 생각했다. 도대체 무슨 마음인 걸까.

 

“하준이가 저 때문에 나가게 되었는데 절 보면 싫어할 거 아녜요.”

 

누군가로부터 동백의 말을 전해 들었고, 그간 아무렇지 않아 보였던 동백이 사실은 그렇지 못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 졸업한 고래로부터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웬일이냐고 반갑게 인사하는데 다짜고짜 고래가 물었다.

 

“동백한테 무슨 일 있어요?”

 

동백에게 전화가 왔는데 많이 힘들어하더라는 얘기였다. 무슨 일인지는 얘기가 없고 그저 내가 교사라는 직업을 해도 되는지 회의가 든다며 눈물을 흘리더라는 다소 충격적 얘기였다.

 

‘동백이…. 눈물을?’

 

나는 거북이에게 오늘 있었던 일들을 들려주었다. 이전에 동백과 함께 이사회를 해본 경험이 있었던 거북이는 동백이 의외로 낯을 가리는 성격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낯을 가린 거라고? 무시하는게 아니고??’

 

뭔가 한참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식간에 큰 나무 같았던 동백이 길가에 핀 하늘거리는 꽃처럼 작고 여려 보였다. ‘이 사람을 좀 알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봄이'(다른 교사)에게 조심스레 하준이에 대한 이야기를 물었다. 정말로 하준이가 동백 때문에 등원을 거부한 건지 궁금했다.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을 늘 갈구하고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불안해지기도 해요. 그런 시기가 있지요. 등원을 거부하기 시작할 즈음에는 하준이가 엄마의 머리카락에 굉장히 집착했어요. 하도 머리를 잡고 있으니까 자몽이 힘들어하고 그랬지요. “

“그럼…. 동백은요?”

“동백이요? 하준이랑 얼마나 친한데요. 평소에도 잘 놀고…. 참, 동백이랑 우리 교사들 하준이 때문에 샴푸도 바꿨잖아요.(웃음)”

“네? 무슨 샴푸요?”

“하준이가 엄마 머리에 집착하니까. 자몽이 쓰는 샴푸 물어봐서 그걸로 교사들 다 바꾸고, 잘 때 머리도 내어주고 그랬죠.”

“….”

나는 아이들이 아는 동백이 궁금해졌다. 큰 아이는 동백과 몇 년을 한 반으로 지내다 졸업했고, 지금은 둘째 아이가 동백의 반에 있었다. 아이들에게 넌지시 동백의 이야기를 꺼내 보았다. “엄마, 동백 아미래! 근데 아미가 뭐야?” 둘째가 말했다. 초등학생인 첫째가 그런 동생이 가소롭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답한다. “비티에스 팬이 아미잖아.” 아, 동백은 아미구나. “응 그거, 비티에스 노래 틀고 우리 같이 춤춘다!” 생각만 해도 신난다는 둘째의 표정이다. 그나저나 동백이 춤을 춘다니…. “그리고 우리 나들이 나갔다가 마카롱 먹었다!” 그러자 옆에서 질세라 받아치는 첫째 “나도 예전에 동백이랑 먹어봤어. 그때 참 좋았지….” 어느새 추억에 잠긴 초딩. “나 일곱 살 때 말이야. 동백이랑 진짜 많이 돌아다녔거든. 그때는 너무 많이 걸어서 다리가 아파서 살짝 눈물이 나기도 했어. 엄마 보고 싶어서.” “진짜? 그런 적이 있었어?” “응… 그때 동백이 호떡 사주면서 우리 보고 많이 컸다고 멋지다고 했는데, 정말 뿌듯하고 호떡이 맛있었어. 그때가 가끔 생각나.” “그랬구나….”

 

첫째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아이가 7살 동백의 반이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 당시 첫째는 또래 친구들 여섯 명과 함께 졸업을 했다. 지금까지 가장 많은 졸업생을 배출한 해였다. 동백은 신체적으로 가장 자란 7살 아이들을 데리고 매일 같이 동네를 쏘 다녔다. 어느 날은 산으로 가고, 어느 날은 동네 재래시장에 갔다. 졸업 사진을 찍으러 시내 큰 마트까지 걸어 다니고, 터전살이(터전에서 보내는 하룻밤으로 달밤에 손전등을 들고 마을을 탐험했다), 졸업여행(지하철을 타고 서울에 가서 시티투어 버스를 타고 하루 종일 돌아다녔다), 들살이(터전 밖에서 보내는 하룻밤으로 남이섬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왔다)까지 알차게 돌아다녔다. 터전에 있는 날이라고 한가하지는 않았다. 손재주가 유독 많은 동백이었다. 실뜨기, 뜨개질, 천연염색, 무말랭이 만들기, 장 담그기, 잼 만들기, 팽이치기, 가방 만들기 등 다양한 가내수공업이 쉼 없이 돌아갔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왕성한 공동육아 활동들을 했던 해였다.

 

“엄마 동백도 나처럼 오빠가 있대, 오빠랑 어렸을 때 맨날 맨날 밖에서 놀았대. 아주 많이.”

 

둘째가 옆에서 조잘조잘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동백의 어린 시절을 상상해 보았다. 개구진 오빠와 매일같이 동네를 쏘 다니며 놀았을 작은 아이는 어쩌면 그때의 추억으로 공동육아의 교사가 되기로 마음먹은 건 아녔을까. 나의 상상을 확인해 볼 기회가 마침 찾아왔다. 나는 그 달의 교육아마(연차를 낸 교사의 빈자리에 일일교사로 아마가 들어가는 것)로 터전에서 좀 더 가까이 동백을 볼 수 있게 되었다. 터전 안에서 오롯이 여덟 시간을 보내고 나니 생각보다 동백의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 동백은 정말 손재주가 좋다. (아이들이 주문하는 어떤 머리든 “엘사 머리 해줘” “난 안나!” 만족도 높게 만들어 준다.)
  • 먹는 걸 좋아한다.(숨겨 놓은 간식 상자가 따로 있다. 가끔씩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한다.)
  • 아이들이 다치거나 울어도 바로 달래주거나 놀라지 않는다.(“으응~ 넘어졌어? 다쳤어? 일어나 볼까? 하는 식으로 아주 천~천히 아무렇지 않게 말하면, 아이들도 금세 툴툴 털고 아무렇지 않게 가버리는 매직)
  • 놀 때는 제대로 논다.(아이들과 놀 때는 깔깔대며 웃고 목소리가 엄청 커진다. 자신이 아는지 모르겠지만 자주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 한 번 놀이가 시작되면 물속에도 망설임 없이 들어가고, 맨 땅에도 마구 구른다. 나들이 시간이 한없이 길어져 배가 고프면 요깃거리를 사 먹기도 하고, 급한 아이들 오줌도 길 가 외진 곳에서 누인다.)

아이들과 지내는 동백의 모습은 마치…. 아이 같았다. 놀아주는 사람이 아니라, 진짜 아이처럼 함께 노는 사람. 아마들 속에 있을 때의 어렵고 불편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자기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소리 내어 자꾸만 웃는 사람이었다. 넘어지거나 뭔가를 쏟거나 해서 당황한 아이들에게 여유롭게 “괜찮아”라고 말해줘서 정말로 뭐든 괜찮아지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언젠가 통통이 “동백은 공동육아 그 자체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정말이었다.

 

“세상엔 봄, 여름, 가을에 잠을 자다 겨울이 되어야 깨어나는 꽃들도 있어요.

그런 꽃한테 왜 봄인데 피지 않느냐고 하면 오히려 이상한 거예요.”

 

언젠가 교사 봄이가 아이들을 꽃에 비유한 적이 있다. 세상엔 향과 색과 모양이 다 다르게 피는 꽃들처럼 아이들도 그렇다고 했다. 어떤 꽃은 봄에 피지만, 또 어떤 꽃은 여름이나 가을, 혹은 겨울에 피기도 하며, 꽃 없이 열매만 달리기도 한다. ‘때’와 ‘시기’가 아이들마다 다 다르다는 말이었다. 거기에는 정해진 어떤 기준도 없고, 다만 ‘너무 느리네’ 혹은 ‘참 빠르네’라고 말하는 어른들이 있을 뿐이라고 했다. 그런 시선으로 바라볼 때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나(아이)만의 속도도 고쳐야 할 문제로 보인다고. 마치 겨울이 되면 빨간 꽃을 피우는 동백처럼 터전의 동백도 아이들 곁에서만 활짝 피는 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동백이 몇 달간의 휴직을 신청하는 일이 생겼다. ‘손목터널 증후군’이라고 했다. 듣는 순간 ‘그럴 만도 하지, 손을 가만히 놔두질 않더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아이들과 뭔가를 만들곤 하던 공식 금손, 동백이었다. 수술까지 해야 한다니 안타까웠다. 양 쪽 모두 수술을 해야 하는데 동시에 둘 다 못쓰게 되면 생활 자체가 안되니, 한쪽 먼 저 하고 회복기가 끝나면 또 다른 한쪽을 해야 하는 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근무 공백이 길어지게 되고 터전에서는 몇 달 간의 대체 교사를 고용해야 했다. 동백은 자신의 휴직 기간 동안 안식월을 사용하기를 원했다. (안식월은 3년 이상 근무한 교사에게 휴식, 재충전의 시간으로 한 달 간의 유급휴가를 주는 제도다. 조합에서는 안식월을 준비하기 위해 교사마다 첫 해부터 안식월에 필요한 대체교사 비용+유급 휴가 비용을 차곡차곡 적립해 둔다.)

 

동백은 수술을 받고 휴직에 들어갔고, 터전에서는 새로운 대체교사를 고용했다. 그러나 손목의 회복에 예상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로 했고, 그때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유급휴가 기간 동안의 대체교사 비용 등은 이미 적립해 놓은 안식월 비용과 정부지원으로 부담이 가능했지만, 추후 길어지는 휴직 기간에 대한 대체교사 비용이 추가로 나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거기다 대체교사 분이 근무 중 부상을 입으면서 예상 밖 지출이 늘어나게 되었다.

 


어느 날 통통으로부터 성난 전화가 걸려왔다. “아니 글쎄, 동백 너무 오래 쉬는데 조합이 이렇게 경제적인 부담을 지면서 까지 기다려줘야 하냐는 말이 나오잖아!”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그래서 동백을 어쩌자는 말인가. “그래서 내가 사람 썼다 버리냐고 막 뭐라 했더니 당황해서 아니라 하더라고…”

 

공동육아도 다르지 않다.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 우리는 그 이상이 될 수는 없는 걸까?

 

평소 아마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강하고, 소통이 원활치 않았던 동백이었기에 이번 일이 더욱 심각하게 느껴졌다. 만약 동백이 아마들과 두루 잘 지내는 교사였다면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아마들과의 관계 형성도 공동육아 교사의 업무 범위 안에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아마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교사는 아이들과의 생활에 특별한 문제가 없어도 결격사유를 가진 것이 될까? 처음으로 공동육아라는 다정했던 울타리가 뾰족한 철조망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동백이 돌아왔다. 동백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등, 하원길 아마들과 이야기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되었고, 아이들의 세세한 생활들을 이야기해주기 시작했다. 반이 바뀌어 새로운 반을 맡게 되었을 때는 톡방에 “제가 원래 말이 좀 짧고 무뚝뚝해요. 안 그러려고 노력해볼게요.”라는 양해의 문자를 먼저 올리기도 했다. 농담을 던지고 소소한 이야기를 조금씩 들려주기 시작했다. 나는 이 작고도 평범한 행동들에서 엄청난 변화의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등을 돌렸던 몇몇 아마들도 조금씩 이 변화에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방모임 날 동백의 깜짝 생일 파티를 열어주고, 연말에는 고마움의 영상편지를 준비했다. 동백은 아마들과 아이들 앞에서 미쳐 숨기지도 못하고 닭똥 같은 눈물을 또르륵 흘렸다. 그날 저녁 잠들기 전 동백으로부터 메시지 하나가 모두에게 날아 들어왔다.

 

“고마워요, 정말 고맙습니다. 잊지 못할 거예요.”

 

한참을 몽글몽글한 마음이 되어 문자를 들여다보았다.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 공동육아도 그렇고 아이를 기르는 일도 그렇다. 대부분의 일이 미완성 인체 굴러간다. 그러다 운이 좋으면 조금씩 성장할 수도 있겠다. 확신을 갖고 기다려주는 누군가가 곁에 있다면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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