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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보다 멀고, 이웃보다 가까운 사람들이
공동육아를 꾸려가며 겪는 좌충우돌이야기

매주 화, 목요일에 연재됩니다.

 

오로지 내 아이를 잘 기르겠다는 일념으로 부모라는 이름의 천차만별 ‘어른이들’이 모였다. 가족보다 멀고 이웃보다 가까운 사람들이 공동체를 꾸려가며 겪는 좌충우돌 이야기들. 때로는 낯 뜨겁고 이기적이며, 때로는 용기 있고 어리숙한 내 안의 진짜 모습들이 드러나는 곳. 지금 어른이들의 등원이 시작된다. 웰컴! 공동육아!

 

 


-미세먼지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코로나 시대인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렸지만, 아이들은 매일같이 마스크 없이 바깥나들이를 나갔다. 하루 두 시간 이상 동네 하천과 텃밭, 가까운 산이나 강가, 그리고 놀이터로 나가 마음껏 소리 지르고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도록 뛰어다녔다. 덕분에 작고 동그란 두 볼들은 언제나 빨갛게 익어 있었다. 손톱엔 꽃물(개나리 똥풀) 매니큐어를 들이고, 옷 주머니에서는 작은 솔방울이나 돌멩이, 시든 꽃잎, 때로는 매미의 변태 껍질 같은 것들이 튀어나와 빨랫감을 정리하려다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다. 또각거리는 구두나 레이스가 달린 긴 원피스 같은 건 좀처럼 입을 시간이 없었다. 미끄럼틀 아니면 바위를 기어오르고 텃밭에 쭈그리고 앉아 배추벌레를 잡으려면 그런 의상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또 징검다리를 뛰어넘다 물에 퐁당 빠지는 불상사가 없으려면 운동화에 편한 바지가 유니폼과도 같았다.

 

이제는 거기에 마스크가 필수가 되었지만, 우리에겐 코로나 이전의 시대에도 마스크가 꼭 필요한 날이 있었으니 바로 ‘미세먼지’의 날이다. 등원 전 먼저 미세먼지 수치부터 확인하는 것이 부모들에겐 당연한 일과가 되어버렸다. 연일 미세먼지가 심한 날들이면 동네 소아과에는 대기시간이 기본 한 시간 이상이었다. 사방에 콜록대고 콧물 나고, 알레르기에 심하면 폐렴으로 입원까지 하는 아이들이 늘어났다.

 

어떻게 하면 미세먼지로부터 우리 아이들을 지킬 수 있을까?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 초미세먼지까지 형태 없는 습격자 앞에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오늘은 먼지벌레가 많은 날이네, 마스크 꼭 껴야 해.” 하고 아이들에게 알려주는 것 뿐이었다. 공동육아에서는 기본적으로 아이들이 매일 바깥 나들이를 나가기 때문에 미세먼지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오늘 미세먼지가 너무 안 좋은데 나들이 나가나요?”

 

걱정 어린 질문들이 아이들의 나들이길 발목을 붙잡는다. 터전 안이라고 상황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실내 공간에서 많은 아이들이 함께 뛰놀고 생활하다 보면 미세먼지 수치는 바깥보다 더 안 좋아지기 일쑤다. 아침마다 미세먼지 앱을 확인하고, 방독면을 쓴 캐릭터가 뜨는 날이 많아질수록 부모들의 불안감은 커져갔다. ‘이런 날은 나들이 나가면 안 되지 않아요?’라는 말들이 계속해서 나오자 나들이에 대한 미세먼지 수치 ‘기준’이 필요하다는 안건이 발의되었다. 시급한 문제인지라 ‘긴급 총회’까지 열리게 되었다.

 

“연일 미세먼지가 너무 안 좋아요. 이런 날엔 아이들이 바깥 활동을 하지 않는 게 맞다고 봐요.”

“그렇다고 언제까지 터전 안에만 있을 수는 없지 않나요? 실내라고 미세먼지에 안전한 것도 아니고요.”

“바깥나들이가 가능한 수치를 우리끼리라도 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매번 오늘은 아이들이 나갔을까? 걱정하게 돼요. 기준을 정하고 그대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저는 미세먼지가 나쁨이면 나가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요즘은 거의 나쁨 이상이지 않나요? 그나마 그게 괜찮은 날이고 매우 나쁨이나 위험도 수시로 뜨는데 그렇게 되면 나들이를 사실상 거의 못한다고 봐야 해요. 어느 정도까지는 마스크를 쓰고 나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어떤 앱을 기준으로 봐야 할지도 정했으면 좋겠어요. 앱마다 미세먼지 측정소가 달라서 어느 건 너무 낮게 나오고 어느 건 너무 높게 나와요. 언젠가는 미세먼지가 너무 안 좋은 날 아이들이 나들이를 하길래 선생님들께 여쭤보니 선생님들이 쓰시는 앱은 제 것보다 수치가 낮게 나오더라고요.”

“시간대마다 수시로 변하기도 하고요. 실제로 괜찮아서 나들이를 나갔다가 갑자기 수치가 올라가서 돌아와야 할 때도 있는데 아이들이 많이 아쉬워해요.”

 

선생님들도 어려운 점이 많은 듯했다. 다들 미세먼지에 민감했지만 미세먼지가 먼저인지, 나들이가 먼저인지에 따라서는 입장이 조금씩 달랐다.

 

“저는 일단 터전 실내 공기도 직접 측정해봤으면 좋겠어요. 관리는 잘 되고 있는지, 어플과는 실제로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요.”

 

적극적인 ‘부엉이’의 의견대로 우리는 미세먼지 측정기를 구입하고 오전, 오후대로 나누어 직접 터전의 안과 밖 미세먼지 수치를 측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될 수 없으니 불안의 실체만 확인하는 꼴이었다. 톡방에는 연일 아이들의 마스크는 어떤 게 좋은지, 미세먼지가 눈에도 치명적이니 고글이라도 씌우고 싶다는 심정의 글들이 올라왔다.

 

“오늘 아이들 나들이 나갔나요?”

“네, 나가더라고요. 지금 수치 높아졌는데 선생님들 돌아오셨을까요?”

“아무래도 미세먼지 100, 초미세먼지 50 기준은 너무 낮지 않나요?”

 


그러다 문제의 날이 생기고 말았다. 한 달에 한 번 나가는 먼나들이 날 아침, 미세먼지 수치는 간당간당하게 기준을 초과하지 않았고, 선생님들은 아이들과 대중교통을 이용해 가까운 캠핑장 숲으로 나들이를 나갔다. 그리고 미세먼지 수치가 심상찮게 오르기 시작하더니 점심이 되어서는 빨간 악마 캐릭터가 ‘매우 나쁨’을 위협적으로 알려주고 있었다. 더군다나 추적추적 어두컴컴한 하늘에는 빗방울까지 떨어지기 시작했다. 부모들의 꾹꾹 눌러왔던 걱정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날 먼나들이라니… 이렇게 까지 꼭 나가야 하나요?”

“비까지 오는데 지하철 타고 아이들이 잘 올 수 있을까요?”

“걱정돼 죽겠어요ㅠㅠ”

 

사실 아이들의 대중교통 이용은 공동육아 과정에서 거치게 되는 하나의 경험이지만, 어떤 아마들은 아직 아이들이 너무 어리지 않냐며 종종 걱정하는 일 중 하나였다. 그런 아마들을 다독이고 설득한 것이 교사분들이었고, 썩 내키지 않은 채 아이들을 보냈는데 미세먼지에 비까지 오니 원망과 걱정이 교사에게로 향하게 된 것이었다.

 

“샘들한테 톡을 보내도 확인도 안 하세요. 걱정되네요.”

“차 가지고 나가봐야 하지 않을까요?”

“괜찮을 거예요. 선생님들이 급한 일이 있으시면 먼저 연락하실 거고, 지금은 바깥이니 연락받기 쉽지 않으실 거예요.”

 

불안해하는 아마(아빠+엄마)들을 이미 경험이 있는 아마들이 다독였다.

“00 이도 첫 대중교통 이용한 날을 두고두고 기억하고 얘기하더라고요. 좋은 경험이 될 거예요.”

 


그리고 하원길 문 앞에서 전전긍긍하며 기다리는 아마들 앞에 비에 쫄딱 맞은 아이들이 나타났다. 그때의 어른들과 아이들 간의 상반된 표정이란…. “엄마! 우리 표도 끊고 지하철도 탔어!” 하며 달려오는 아이들의 표정은 예상과 달리 뿌듯함과 만족스러움으로 의기양양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흙먼지와 빗물로 골고루 뒤집어쓴 꾀죄죄한 행색이었지만 말이다. “힘들지 않았어? 역에서부터 계속 걸어온 거야? 마스크는 잘 찼어?” 아마들은 꾹꾹 참아뒀던 걱정을 질문들로 쏟아냈지만, 정작 아이들은 자신들의 ‘대중교통으로 먼나들이 다녀오기’ 정복담을 들려주고 싶어 안달이었다.

 

그날 이후로도 미세먼지는 일상과 뗄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고, 그때마다 나들이에 대한 걱정과 의구심이 세트처럼 따라다녔다. 미세먼지 수치가 애매하거나 수시로 변하는 날이면 나들이를 나갔는지 안 나갔는지가 어떤 아마(공동육아에서 아빠+엄마를 부르는 말)들에겐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고, 교사들은 그만큼 애를 먹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럴 일도 아니었는데 우리는 공공의 적인 미세먼지를 어찌할 수가 없어서, 또 다른 적을 찾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서로에게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어제 미세먼지 수치 확인하셨나요 선생님? 오전에 매우 나쁨이었는데 아이들 나들이 나갔더라고요.”

“제가 아침에 체크했을 때는 100 안 넘었거든요. 그런데 오후에도 미세먼지 나빴는데 하원길에 다들 집에 바로 안 가시고 놀이터에서 한참 계시더라고요?”

 

교사 ‘수박’은 유독 미세먼지 얘기만 나오면 예민하게 반응해 아마들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아마도 아마들의 각기 다른 미세먼지에 대한 요구사항에 교사들의 스트레스도 높았던 것 같다. 뛰어노는 아이들에게 ‘마스크’를 씌우는 것 자체가 호흡에 부담을 줄 수 있어 어디까지 씌워야 하나가 늘 갈등이 되었다. 지금은 그런 논란의 여지 조차 없이 ‘또 하나의 피부’처럼 마스크를 늘 차야하는 현실이 되었으니 이것도…. 해결이라면 해결일까?

 

“엄마, 먼지벌레랑 코로나 벌레 없는데 가서 살면 안 돼? 마스크 너무 답답해.”

 

둘째는 요즘 종종 이런 말을 한다. ‘그런 곳이 있을까?’ 생각하면 너무나 안타깝고 아이들에게 미안해진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떤 세상을 만들어 주고 있는 걸까? 당연하던 것들이 하나, 둘 당연하지 않은 것이 되고, 다만 마음껏 친구들과 뛰어놀고 싶은 작은 바람이 꿈같은 일이 된다면…. 그것에 대한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 마스크 너머의 기분과 표정을 볼 수 없고, 줌으로 친구들을 만나는 세상은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아무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를 아이들에게 떠넘기게 되어 가끔은 섬뜩하고 죄스러운 기분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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