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내리 비가 오기에 짐작은 했다. 온 밭이 풀 천지가 되리라는 걸. 계속 마음이 쓰이던 고구마밭으로 가 보니! 어떡해, 어떡해에~~ㅠㅠ 고구마잎이 안 보인다.

 

어지간하면 웬만하면 밭에 난 풀쯤 가뿐히 외면할 수 있지만 이번만큼은 도저히 ‘못 찾겠다 꾀꼬리~♪’가 아니라, 못 참겠다 저 풀을! 고구마잎 숨 못 쉬게 하는 징한 풀들 모조리 뜯어 주리!!


아주아주 오랜만에 호미를 쥐고 이랑에 난 풀, 고랑에 돋은 것까지 정성껏 매다가는 삼십 분쯤 지났을까. 작전 바꿈! 이 많은 풀을 언제 다 매~ 고구마잎 보일 만큼만 딱 그만큼만 하자.

‘무성한 저 풀이 밉다. 아니다, 풀은 죄가 없다. 미워하면 안 된다. 저 강인한 생명을 뽑아내는 내가 도리어 나쁘다. 하지만 이 또한 순리임을 풀은 알 것이다. 그리하여 제 생명 거두는 나를, 사람을 아마도 원망하지 않을 것이다.’

이 생각 저 생각 하고 또 하며 허리 다리 아프게 움직이기를 세 시간쯤 흘렀나… 드디어 고구마밭에 고구마잎이 보인다! 어찌나 속이 시원하고 후련하고 뿌듯하고 가뿐하던지!! 이런 보람은 그 어떤 일에서도 느끼기 힘든, 아주 특별한 무엇임을 참으로 오랜만에 깨닫는다.

저녁밥 먹고 나니 온몸이 두드려 맞은 듯 뻐근하다. 올 들어 가장 길게 밭에 있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 이불에 벌러덩 누웠다가는 잠들기엔 너무 이른 시간. 해야 할 다른 일도 있으니 애써 몸을 일으킨다.

아… 비가 온다. 비님이 오신다. 가뜩이나 물 좋아하는 고구마. 제가 사는 자리 훤해지고 비까지 내리니 얼마나 좋아할까. 내 마음이 다 기쁘고 흐뭇해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

빗소리 들으며 텃밭을 바라본다. 나야 몇 시간 밭에 있었을 뿐이지만, 이른 아침부터 온종일 땀 흘린 옆지기가 김을 맨 곳곳이 눈에 들어온다.

오늘 김을 매지 못했더라면 이 비가 지나고, 이 작은 텃밭이 얼마나 풀 난리가 되었을꼬. 밭일하기를 정말 잘하고 또 잘했다.

아, 이런 날은 이런 글귀 한번 다시 들여다보고만 싶다.

“달마대사 같은 성인은 소림사에서 9년 면벽하여 깨달음을 얻었다 하지만 범인은 가만히 있으면 생각이 정지된다. 노동은 심신을 상쾌하게 해 줄 뿐만 아니라 끝없는 생각 속으로 나를 끌어들인다.

‘노동’과 ‘글쓰기’와 ‘나’는 삼발이 같은 것이었다. 글을 쓰다 막히면 나가 풀을 뽑고 그러다 보면 생각이 떠오르고 막혔던 것이 뚫리는 것이었다.”

_박경리, <생명의 아픔>에서

한참 전 소설 <토지>를 본 뒤로 무언가 마음의 스승처럼, 내 삶의 어머니처럼 느껴지는 박경리 선생님.

당신의 글을 좋아하고 당신의 삶을 사랑하며 당신의 마음을 닮고 싶은 작은 욕심, 아니 어쩌면 너무 큰 욕심 하나 늘 마음에 품고 있음을 하늘에 계신 박경리 선생님께 수줍게 전하고만 싶은 그런 밤이다.

이 모두가 다 밭일 때문, 아니 덕분일지니! 앞으로도 가끔씩 (자주는 너무 힘들어~~) 김매기를 해야만 하겠다. ^^

Comments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