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메주를 쑤었다아~~ 한 해 먹을거리 살림, 이젠 쫑이닷! *^^*
바람 참 세차게 불던 날, 바로 오늘. 아침부터 저녁까지 찬바람 가득 맞으며, 이글거리는 모닥불이랑 동무하며 메주를 쑤었다.
메주의 주인공인 메주콩님. 텃밭농사엔 없는 품목이라 마을분한테 실한 걸로 구해서는어제부터 물에 담가두었다. 메주콩 불릴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물 먹은 뒤로 거의 두 배는 커지는 듯해서. 통통하게 잘 분 콩을 솥에 붓는다. 어진간한 양은 다~ 받아주시는, 크고 듬직한 솥! (봄에 나물 데칠 때 몇 번 쓰긴 했으나 실은 메주 쑬려고 그에 맞춰 산 솥임.) 쇠부뚜막에 나무를 넣고 불 지피기 시작. 한소끔 끓기 전까진 센 불로, 슬슬 익기 시작하면 약하게 불을 잡는다.
지난해보다 콩을 쪼끔 많이 해서 그런지 콩물이 솥 바깥으로 막 끓어넘친다. 이럴 땐 옛사람들의 지혜를 빌려야지! 수건에 찬물 적셔 솥뚜껑 위를 닦으니 넘치던 물이 가라앉는다. 곧 다시 끓어오르기는 했지만 고거 참 신기해서 자꾸만 닦게 되더라니. 점심때가 지나니 물도 넘치지 않고 콩도 얼추 익어간다. 바로 이때부터가 중요!
불이 세면 콩이 눌어붙을 수 있으니 잔가지들 하나하나 넣어주면서 불이 살아는 있으되 꺼지지는 않을 만큼만 가늘고 약하게 유지해야 한다. 가스불이라면 쉽게 조절할 수 있을 테지만 부뚜막이니 어쩔 수 있나. 내둥 앉아서 잔솔가지 하나썩 둘썩 넣으며 꺼질락말락하는 불, 살리고 살리고~ 요거요거 시간잡아먹는 재미난 놀일세. 특히, 지난가을 산에서 주운 밤송이의 ‘껍질들’! 불땀이 어찌나 끝내주게 좋던지. 게다가 이글이글 타는 모습이 꼭 둥근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보이는 게 찬란하게 아름답더라니.
불 살리고, 보고 하는 재미에 추운 줄도 모르고 대여섯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불길 따라 콩도 익었다. 한두 알 집어먹으니 콩 익을 때 나던 딱 그 내음처럼 달짝지근하고 고소하고 구수하고. 오메, 맛난 거! 더 먹고 싶지만 메주를 위해 참는다.
곱게 누우런 콩을 빻아 메주를 빚는다. 볏짚 꼭꼭 눌러 박아 청국장도 만든다.
메주랑 청국장은 안방서 가장 뜨신 자리에 고이 모셨다. 이제부터 안방은 메주와 청국장이 쥔장이다. 쥔장이 첫날밤을 따시게 보낼 수 있도록 나무보일러 팍팍 뗀다. 덕분에 우리 부부도 이밤, 따땃이 보낼 수 있겠다.
메주를 쑤었으니 이제, 진짜로, 정말로! 올해 먹을거리와 이어진 살림농사가 끝났다. 연말결산이라도 마친 듯 씨언하구나. 감격스러운 나머지 뭉클해지기까지.
갑자기 기운이 스르르 내려앉는다. 찬바람 많이 쐬서 그런가, 그 와중에 찬 맥주까지 마셔서 그런가. 도저히 밥 할 힘이 안 나네. 힘든 일 치룬 날이라 저녁 맛나게, 담백질스럽게 차려먹으려고 했건만. 점심때도 먹은 라면을(요땐 불 옆에서) 저녁때도 또 먹고야 만다.(이땐 집 안에서)
뭘 먹었든 난 그저 좋기만 하다. 한 해 먹을거리 살림의 끝판왕 ‘메주님’을, 드디어, 쑨, 날이니까!
메주랑 청국장 없는 안방은 너무 허전해!
안방에서 젤 뜨신 자리 꿰차던 메주를 올 들어 가장 춥다는 오늘이 되서야 바깥세상으로 해방시켜드렸다. 다른 때보다 좀 늦었다. 방을 늘 따싯하게 해드리지 못해 곰팡이님이 들쭉날쭉하는 바람에 아예 주구장창 길게 놔두기로 했지. 원 없이 뜨시라구. 메주 담긴 상자 날마다 열어 살폈건만 요 며칠 살짝 놓쳤더니 흰 곰팡이 말고도 뭔가 좀 많이 생겼다. 뭐, 그리 놀라진 않는다. 전에도 더러 겪은 일인지라. 어쨌든 더는 두면 안 되겠다.
메주 감싸던 볏짚 고대로 써서 열 개 넘는 메주를 하얀 망에 나누어 담는다. 높은 자리에 고이 매달았다. 메주랑 눈이 참 잘 어울린다.
따뜻한 곳에만 있던 메주가 이제는 추위와 만나 새로운 숙성 시간을 맞이할 테지. 사람도 온탕 냉탕 번갈아 하면 몸에 좋다니까 메주도 아마 더 건강한 맛을 만들어낼 거야. 메주보다 더 뜨신 자리에 있던 청국장은 일찌감치 해방되어 어둡고 추운 곳에서 먹어줄 때만을 기다리고 있다. 구수한 냄새에 실끈까지 보여 청국장 여는 날 참 행복했더랬지.
청국장도 사라지고, 메주마저 없어지니 안방이 휑하다. 함께 있는 동안 든든하고 좋았는데. 한동안 사이좋게(?) 지내던 동무들이 떠난 빈자리가 못내 허전하다. 그래서일까. 안방에 들어가기가 괜히 싫으네. 이제 자러 가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