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과 폭염이 찾아올 때마다 소환되는 1994년, 그 뜨거웠던 여름에는 ‘평창올림픽’과 남북화해가 화제였던 2018년 겨울과 비슷한 일도 있었다. 1993년 말에 닥친 한반도 전쟁위기로 식량 사재기 소식이 전해지더니 갑자기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이 이야기되고 있었다. 평화시대를 앞둔 1994년 7월 8일, 또래들 중 일찍 입대한 ‘메기’의 성화에 못 이겨 강원도 양구로 면회를 가는 중이었다. 근처에 ‘평화의 댐’이 있다는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에 버스 라디오에서 속보가 흘러나왔다.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였고, 군인들의 외박과 외출이 전면금지 되었다고. 부대 정문에서 ‘메기’의 낙담한 표정을 보려고 강원도까지 여행한 셈이 되었다.


[사진 출처 – e영상역사관]

 


훗날에 1994년을 회상하는 것과 똑같이 당시 사람들은 과거를 회상하곤 했다. 김운경 작가의 <서울의 달>은 <한 지붕 세 가족>(1986)과 <서울뚝배기>(1990)를 잇는 서민극이었다. 집마다 문패가 있던 시절, 그 문패의 주인마저 될 수는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비슷한 시기에 <종합병원>은 젊은이들의 호응을 얻었고, 1995년이 되자 거의 모두는 <모래시계>를 보는 사람과 보지 못한 사람들로 나뉠 정도가 되었다. 또 다른 젊은이들은 ‘왕가위 시대’를 영접 중이었으며, 거리마다 자리한 음반점의 스피커들은 <중경삼림> 삽입곡인 마마스 앤드 파파스(Mamas & Papas)의 <California Dreaming’>을 뿌려댔다.

다시 말하지만, 1990년대는 경제호황기이자 많은 것들이 무너져간 시기다. 아시아나항공 733편 추락사고(1993년 7월)에 놀라야 했고, 성수대교가 무너지고(1994년 10월), 서울 아현동에서 도시가스 폭발사고가 일어났다(1994년 12월). 이것이 다가 아니었다. 대구지하철 공사장 가스폭발사고(1995년 4월)와 삼풍백화점 붕괴(1995년 6월)를 연달아 지켜봐야 했다.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지만. 그로부터 20년 후에는 세월호 참사(2014년 4월)를 실시간으로 지켜보아야만 했다. 1994~1995년의 사고들이 하드웨어의 붕괴였다면, 2014년의 사고들은 낡고 병든 시스템의 붕괴이다.

 


 

이러는 동안에도 음악동네는 부산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교실이데아>, <발해를 꿈꾸며>, <시대유감>을 연달아 히트시키더니 <컴백홈>으로 정점에 올라선다. 그들보다는 덜했어도 나름 만만찮은 인기를 누린 ‘듀스’ 역시 훗날 한국 힙합의 역사를 논할 때에 꼭 거론될 《Force Deux》를 내놓는다. 김건모의 세 번째 앨범이 판매량 280만 장을 넘기며 한국 기네스북에 등재될 무렵에 강산에의 <넌 할 수 있어>,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도 세상에 나타난다. 프로그레시브 록을 추구한 ‘넥스트’와 한국 헤비메탈의 한계를 단숨에 넘어버린 ‘크래쉬’, 그리고 코믹메탈을 선보인 ‘멍키헤드’는 각자의 영역을 구축해갔다. 서정성과 사회성을 겸한 ‘블랙홀’의 《Made In Korea》는 1995년의 공기에 소란스러운 소리를 더해놓았다. 브라운관을 들썩이게 하던 ‘룰라’ 등이 표절로 와해된 자리는 ‘삐삐밴드’와 ‘패닉’처럼 참신한 음악인들이 채워갔다. 이상은의 《공무도하가》와 한영애의 《불어오라 바람아》 그리고 <난 행복해>, <잊지 말기로 해>를 비롯하여 모든 수록곡들이 훌륭한 이소라의 《이소라》가 모두 이때에 나왔다. 이렇게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특히 정태춘의 노고에 의하여 음반사전심의제가 위헌판정을 받은 것은 역사적인 사건이다.

 

 

그 무렵, 오렌지색으로 머리를 염색한 나는 지하세계(심지어 그곳의 이름은 ‘HELL’이었다)에서 끔찍한 뉴스들을 지켜보면서 실험적이고 무시무시한 해외 뮤직비디오들을 찾아보고 있었다. 벚꽃 핀 교정을 산책하다가 선배의 부름에 이끌려 총장실에 난입하여 연좌농성을 벌이는가하면, 사무처에 쳐들어가 집기를 들어내기도 하고, 학생들을 완전히 고립시킨 전경부대 사이를 유유히 뚫고 ‘가투대열에 합류하기도 했다(그때 전경들의 황당해하는 표정이란…). 동시에 말도 안 되는 대학생활의 모범도 시도했으니 강의에 들어갈 시간에 중앙도서관에서 노스트라다무스의 책을 읽는다거나 대학동기의 리포트를 대신 써주어 A+를 받게 해주면서 정작 제 것은 쓰지 않는 식이었다. 그러는 동안 차츰 일과의 주된 배경은 교정보다 어두운 조명과 촛불을 켠 지하 록 클럽의 비중이 커져갔다.

 

그래도 이따금 자전거를 타고 빨간 벽돌로 쌓은 벽을 푸른 담쟁이가 덮고 있는 교회 옆 화단을 찾곤 했다. 그 자리에 있던 라일락 향은 시간이 갈수록 기억 속에서 더 짙어졌다. 그러다 잠실대교와 탄천교 철제 난간 아래에 무언가를 숨겨두었다가 잃어버린 적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나중에 여의도에서 만나게 될 그 친구와 공유한 비밀 같은 것이었는데, 정작 무얼 잃어버렸는지는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무언가 감춰두었다가 잃어버렸다는 사실과 장소만 기억할 뿐이다. 이런 기억은, 술에 취해 노래방을 찾아 노래책을 뒤적여 찾아보지만 매번 찾을 수 없는, 그런 노래 같은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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