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나도원의 음악과 사회 연영석 나간다

 

 

글 : 나도원(노동당 공동대표, 경기도당 공동위원장)

 

 

 

어떤 노동자의 이름, 우리 윤식이

 


[사진 – 연영석, 2019 ‘레드 어워드’에서]

 

 

2019년 11월 4일, 서울시민청 바스락홀 맨 뒤, 꼭대기 객석에 앉아 있었다. 이른바 좌파예술 시상식을 표방하며 2013년부터 노동당이 열어온 <레드 어워드> 시상식이 막 시작되었을 무렵이다. 축하공연자 겸 수상자 연영석이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가 두 번째로 <윤식이 나간다>를 부를 즈음, 이미 여러 번 들어본 노래인데도 감정이 북받쳤다. 이 노래에 담긴 사연, 당시 (노동당이 마주한 상황과 대표단 선거에 나서야 했던 결연한) 심정, 그리고 그 자리의 의미가 한데 뒤섞이고 있었다.

 

 

▲연영석 <윤식이 나간다> (2019)

 

 


 

공장 그리고 자본주의

 

너도 몰래 나도 모르게 모든 것은 익숙하다

반복 속에 반복된다, 시간 속에 반복된다

까도 까도 똑같은 나, 까도 까도 똑같은 내가

자꾸 자꾸 생겨난다, 자꾸 내게로 다가온다

빠르게 낯설게, 때론 너무도 당연하게

자꾸 자꾸 밀려온다, 자꾸 자꾸 넘쳐난다.

능숙한가 신속한가 필요한 만큼 유연한가

시간 속에 맞춰가도 나는 네게서 밀려난다

넘쳐도 점점 줄어간다, 넘쳐도 점점 죽어간다

넘쳐도 점점 줄어간다, 넘쳐도 점점 죽어간다

연영석, <공장> (2001)

 

 


[사진 – 2집(2001) 시절의 연영석]

 

 

연영석의 오래된 노래 <공장>의 훌륭함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공장>은 그 자체로 자본주의 체제를 요약하고, “넘쳐도 점점 줄어간다”는 노랫말로 체제의 모순을 함축해낸다. 그만큼 이 시대를 단숨에 간파한 곡이다. 둘째, <공장>은 하나같이 ‘~다’로 끝나는 한국어 문장의 약점을 역으로 활용하여 흥미로운 라임을 만들어냈다. 셋째, 프로듀서이자 연주자로 동참한 기타리스트 고명원은 자신의 주특기를 활용하여 단번에 각인되는 리프를 만들어냈다. 이 세 요소가 결합하며 <공장>은 21세기 민중가요의 희귀한 성과로 남았다. 사회의식과 음악성, 진솔함과 해학으로 삶의 향기를 품어낸 연영석은 민중음악의 새로운 길을 제시한 록 음악인이자 대중음악인이다.

 

그러한 연영석의 음악 멜로디와 리듬은 자유롭고 서정적이며 통쾌했다. 솔직함이 꾸밈보다 진한 감동을 준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노래들은 음악의 본질에 대한 리포트였다. 직설의 쾌감과 평범함 그리고 원숙한 노래는 자유분방한 선율을 만나 삶 자체에 근접했다. 더구나 문화노동자로서 늘 현장에 서는 성실함을 겸한 연영석은 민중가수로는 이례적으로 2006년에 <한국대중음악상>에서 ‘특별상’을 수상함으로써 시대에 걸맞고 유효한 민중음악의 가능성을 열어온 공로를 인정받았다.

 

 


 

묵묵한 걸음으로 나아가다

※ 《결국, 음악》(나도원 著, 2011, 북노마드) 부분 발췌

 

1997년 윤도현이 펑크를 낸 공연에 대타로 무대에 서게 되면서 데뷔한 사람, 서른이 넘어 ‘자신을 위로하기 위하여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사람, 연영석이다. 그의 입을 통하여 비속어를 포함한 일상어는 거침없이 노래가 된다. 2000년대 초반에 발표한 노래들, 이틀테면 순대국 타령이라 할 <미련> 등의 해학미는 요즘에 흔치 않다. 아니, 해학이라는 말 자체를 교과서에서나 볼법한 세상이다. “그저 밥만 먹고 살기도 힘드네요”라는 넋두리 <밥>은 처연하고 아름다운 록 음악이 되고, 쑥스러울 정도로 진솔한 <엄마 미안해>와 <구르는 돌> 그리고 <간절히>의 절박함은 감동으로 이어진다. 현실을 고발하고, 우리말을 본능적으로 연구하며, 해학을 되살린다. 이처럼 연영석이 직설적으로 풀어내는 평범한 언어 풍경과 시대착오적인 노래는 자유분방한 선율을 만나 삶 자체에 근접하고 있었다.

 


[사진- 연영석을 주인공으로 한 음악다큐 <필승 연영석>]

 

 

세 번째 앨범인 《숨》(2005)에도 <나약해>, <떼레비>, <빵>처럼 시원하고 재미있고 무섭고 슬픈 곡들을 담아낸다. 한국 내 이주노동자들을 대변한 <코리안 드림>은 노동 현실에 대한 고발이면서 ‘한국 속 외국인’과 ‘외국 속 한국인’ 사이에서 작동하는 이중잣대까지 상기시킨다. 유난히 신분 상승 욕구가 강한 이 사회에서, 그리고 중산층이 상대적 개념이 아닌 절대적 개념임을 인정하게 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이 나라에서 자신이 ‘2진’임을 인정하는 용기는 아무에게나 가능하지 않다. 연영석은 그것을 고백하고, 듣는 이로 하여금 공명케 한다.

 

어떤 면에서 노동음악작곡가 김호철과 <포장마차>를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어쩌면 늦은 시기인 30대에 창작을 시작했기에 오히려 틀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있었을 테고, 그래서 정형화되지 않은 어법을 지니게 된 것일지 모른다. 또한 홍대 앞에 위치한 클럽 ‘빵’에 종종 기타를 들고 나타나면서, 잔잔한 반향을 불러온 인디음악인들의 앨범 《빵 컴필레이션 3》(2007)에 젊은 음악인들과 협연한 <현실>을 싣기도 했다. 그래서 현장을 지켜온 노동가수이자 싱어송라이터이고, 젊은 음악인들과의 교통을 시도해온 접경의 예술인이다. 그의 쑥스러울 정도로 진솔한 고백과 처연한 절박함에서 밥 짓듯 통쾌한 감동이 피어오르고 선연한 삽화가 그려진다.

 

 

연영석이 자유로운 에너지로 내용을 채우고 형식을 세워 생활인(노동자)이 공감할 수 있는 포크록을 제시할 수 있었던 데에는 앞서 언급한 고명원의 역할이 컸다. 고명원은 민중가요와 헤비메탈의 결합이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저항음악을 시도한 ‘메이데이’의 연주자였으며, 연영석은 메이데이의 <산 자를 위한 발라드>, <전선은 있다>, <동지에게>의 가사를 써준 인연이 있다. 고명원은 연영석의 앨범들에 프로듀서 겸 연주자로 참여하여 의미 있는 작품들의 탄생에 기여했고, 그래서 연영석의 공연 역시 고명원(을 비롯한 밴드 맴버들)과 함께 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음악적 풍경이 달라진다.

 

2005년 10월 경기도 어느 도시에서 열린, 이 글을 쓰는 이가 공연 프로그래머 겸 진행감독으로 함께 제작한, 대규모 공연에서 연영석은 수천의 입들이 분명 그날 처음 들었을 법한 <이씨 니가 시키는 대로 내가 다 할 줄 아나>를 다 함께 따라 부르는 장관을 그려냈다. 통쾌함이 관객들의 얼굴 곳곳을 누비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유를 잃어서가 아니라 잊어서였던 것은 아닐까. 오랜 시간 동안 ‘공장음악’을 제외한 다양한 음악이 대중과 만나지 못하게 된 것처럼, 이러한 노래들 역시 시민과 만나지 못해서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러한 노래가 귀한 이유는 그저 피가 뜨거웠던 시대를 회상케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금도 뜨거운 피가 필요한 시대임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를 만났을 때의 풍경은 마치 비 갠 후의 달처럼 투명하고 맑았다.

 

 


 

다시, 우리 윤식이

 


[사진 – 4집(2019) 시절의 연영석]

 

 

그리고, 긴 기다림 끝에, 연영석이 무려 14년 만에 발표한 《서럽다 꿈같다 우습다》(2019)는 반가움에 그치지 않았다. 연영석은 직설의 쾌감과 분방한 선율을 넘어 원숙의 경지에 올랐고, 삶에 더욱 근접한다. 개인의 성찰을 바탕으로 <내 이름은 진아영>처럼 약한 사람의 이름 하나하나를 아픈 현실과 역사에 포개어 슬프고 아름답게 노래한다. 록 밴드 편성과 인상적인 기타 리프로 한층 격을 높였던 시절에 비하면 차분하게 들리지만, 특유의 리듬감은 여전하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좋은 음악’에 대한 대답 혹은 포크 본연의 순간이 여기에 있다.

 

그중에서 자신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또 다른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가 <윤식이 나간다>이다. 조선소에서 선박을 만들다 산업재해로 생명을 잃는 노동자들이 있다. 그렇게 완성한 배가 아름다운 이름을 달고 거창한 진수식을 벌일 때에 그 광경을 바라보는 노동자들은 배를 만들다 앞서간 동료의 자리에 불붙인 담배 한 개비 내려놓고 그의 이름을 불러본다는 것이다.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리듬, 아련한 트럼펫 멜로디-라이브에선 직접 연주하는 카주로 대신하는 멜로디에 어떤 노동자의 이름이 실려 한 몸을 이룬다. 해마다 일하다 죽는 노동자 수천 명 중 하나의 이름, 그것이 윤식이다. 또 다른 나, 또 다른 당신의 이름이다. ■

 

 

저기 거대한 뱃머리 위로 날아오르는 비둘기

오색종이 하늘 위로 바람이 불면

뱃고동 소리 높이 울며 바다로 떠난다

담배 한 모금 태워 놓고 너를 보낸다

윤식이 나간다, 바다로 떠난다

우리 윤식이 이젠 바다로

닦고 조이고 기름치고 쇠를 녹이고

푸른 작업복 위로 소금꽃 피면

여린 담쟁이 공장 벽을 치어 오른다

붉은 노을 바다 위로 바람이 분다

윤식이 나간다, 바다로 떠난다

우리 윤식이 이젠 바다로

나의 손가락 내 몸뚱이, 내 영혼과 내 이름

나의 손가락 내 몸뚱이, 내 영혼과 내 이름

손가락 던져 하늘을 본다, 몸뚱이 던져 바다를 본다

배는 얼마나 내던져야 바다로 갈까

윤식이 나간다, 바다로 떠난다

우리 윤식이 이젠 바다로

연영석, <윤식이 나간다>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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