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어젯밤 동네에서 있었던 일 – 방모임 에피소드 1

 

 

 

 

가족보다 멀고, 이웃보다 가까운 사람들이
공동육아를 꾸려가며 겪는 좌충우돌이야기

매주 화, 목요일에 연재됩니다.

 

 

오로지 내 아이를 잘 기르겠다는 일념으로 부모라는 이름의 천차만별 ‘어른이들’이 모였다. 가족보다 멀고 이웃보다 가까운 사람들이 공동체를 꾸려가며 겪는 좌충우돌 이야기들. 때로는 낯 뜨겁고 이기적이며, 때로는 용기 있고 어리숙한 내 안의 진짜 모습들이 드러나는 곳. 지금 어른이들의 등원이 시작된다. 웰컴! 공동육아!

 

 


-방모임 에피소드2

 

# 저는 급진파거든요

 

처음 방모임을 마주하게 되면 나오는 다양한 반응들이 있다. 나처럼 연차부터 내거나, 친정엄마에게 SOS를 치기도 하고, 우리가 배달의 민족임을 확인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반응들은 나 또한 그러했기에 예상 가능한 일들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저는 급진파거든요”

 

라고 자신을 어필했던 ‘자몽’은 방 모임을 강경하게 비판했다. 한마디로 요즘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첫째, 대부분 아파트에 살며 둘째, 소가족 형태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지 않는다. 셋째, 맞벌이는 어쩔 것이며 넷째, 난 요리를 못한다. 당찬 신입의 주장에 기존 조합원들은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이런 구시대적 형태의 모임은 현대의 실상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졸지에 꼬릿 꼬릿한 옛날 방식을 고수하는 뒷방 늙은이가 된 묘한 기분이었다. 방모임의 어려움이야 다들 알고 깊이 공감하고 있으며 많은 논의 속에 여러 가지 방안들이 나왔다는 설명을 했다.

 

 

-불가필 할 경우 터전에서 방모임을 주최할 수 있다. 이때 식기들은 되도록 따로 가져와서 사용한다.

-주최가 아닌 집들도 한 가지씩 음식을 가지고 온다.

-꼭 직접 요리하지 않아도 된다. (배달음식 OK!)

 

 

더불어 방모임이 공동육아에서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지만 “누군가 희생하고 부담을 지는 방식으로는 즐기기 힘들어요.”라는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때부터 매 방모임마다 논란이 일어났다. 누군가에게 부담을 지을까 눈치를 보고 모든 준비를 최소화하는데 초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더 편하게 더 간소하게! 어느 때는 한 그릇 밥이 나오고, 어느 때는 피자를 주문했다. 김밥 몇 줄이 나오기도 하고 자연스레 술이 빠지게 되었다. 간단히 차를 마시자는 의견도 나왔다. 방모임은 간소화되어 가는데 이상하게 눈치 보이고 재미가 없어졌다. 매번 올라오는 방모임 방식 논의에 대한 피로도도 쌓여갔다.

 

 

‘우리는 먹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니니, 먹는 방식은 최소화하고 토론하고 스터디하는 시간을 늘리자!’는 급진적 의견에 맞춰가면서 나는 깨달았다. ‘아, 우리는 놀고먹기 위해 모였던 거구나…. 신나게 먹고 놀고 떠드는 게 방모임의 묘미였구나.’ 방모임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점점 적어지고, 이상하게 방모임이 하기 싫은 일처럼 느껴졌다. 나는 적어도 공동육아에서는 급진파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지나 놓고 생각해보니 자몽이 했던 말들은 많은 여자들이 ‘명절’을 치르기 전이나 후에 남편들에게 하는 말과 닮은 구석이 많았다. 그렇다면 자몽에게 터전은…. 시댁 같은 곳이었을까? 생각하니 씁쓸하다. 모두에게 터전이 놀고 싶고 즐거운 곳은 아닐 수도 있겠구나 깨닫게 되었다. 결국 자몽은 다른 이유로 터전을 떠나게 되었는데, 이런 마음들과도 연관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 비좁아도 괜찮아

 

‘둥굴레’는 새로운 이사진의 홍교이사였다. 홍교(홍보*교육)이사의 가장 큰 역할 중 하나는 신입 상담이다. 2차 상담은 이사진이 함께 하지만 그 전 1차 상담까지는 오롯이 홍교이사의 역할로 터전의 이미지를 결정짓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실로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순간만큼은 낯선 사람에게 조합의 대표가 되어 설명하고 답해야 한다.

 

 

상담을 온 어린아이들의 엄마, 아빠들은 매서운 의심의 눈빛으로 이곳저곳을 관찰하며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답 없는 독박 육아의 고충을 이야기하다 눈물, 콧물 다 쏟기도 한다. 그래서 상담은 훌쩍 한 시간, 두 시간을 넘기기도 한다. 나는 ‘전’ 홍교이사로 그 부담감과 수고로움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날도 긴 상담을 마치고 나온 둥굴레는 혼이 빠진 얼굴로 허둥지둥 어딘가로 향했다. 뒤를 쫓아가니 편의점에서 시원한 캔 맥주를 사들고 나오는 게 보였다. 해가 반짝이는 오후 캔 뚜껑부터 따고는 꿀꺽꿀꺽 단숨에 한 캔을 비웠다. “아우,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상담을 마치면 목이 타게 마련이다. 시원한 바람을 쐬며 놀이터 의자에 앉아 이사직의 수고로움을 얘기하고 있는데 둥굴레가 입을 열었다.

 

“그것보다…. 우리 집이 너무 좁아서요. 방모임 때 불편할까 봐 걱정이에요.”

 

돌아온 둥굴레 네 방모임 순번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다들 그렇죠, 집은 좁고 사람은 많고…. 그러면 터전에서 하는 건 어때요?”

“많이 좁긴 할 텐데… 그래도 우리 연이가 너무 기다리고 있고, 처음인데 한 번쯤은 집으로 초대하고 싶어요.”

 

둥굴레가 빈 캔을 탈탈 털어 넣고 일어났다.

 

방모임 날, 나는 터전에 남은 아이들 두어 명과 교사인 구름과 함께 택시를 타고 둥굴레 네 집에 가기로 했다. 문자로 보내준 주소를 기사님께 보이자 네비에 찍어 보시고 나오지 않는다며 갸우뚱하셨다. 목적지 근처에 도착하자 좁은 골목길이 거미줄처럼 나타났다. 헤매는 기사님과 신난 아이들로 택시 안은 어수선했고, 창 밖을 보니 똑같은 골목길 세탁소를 몇 바퀴째 돌고 있었다. 안 되겠다 싶어 일단 내려서 찾아보기로 했다. 전화를 걸어 알려주는 대로 즐비한 구옥들 사이를 걷고 걸었다. 도착했을 무렵에는 사방이 깜깜해져 있었다. 파란 대문의 다세대 주택 맨 위 층으로 오르니 복도 끝에 작은 문 하나가 열려 있었다. 쏟아져 나오는 빛과 목소리들, 바깥까지 떠밀려 나온 신발들이 보였다. 문을 열자 한눈에 꽉 차게 익숙한 얼굴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오셨어요!”

“찾느라 힘드셨죠? 저도 그랬어요.”

 

반갑게 인사하며 사람들이 자리를 내주었다. 이미 양 쪽 방 둘에는 아이들로 가득했고, 거실에는 신발장 바로 앞까지 어른들이 꽉 차게 들어앉아 있었다. 더 이상 자리가 날 것 같지 않을 만큼 비좁았는데 사람들은 엉덩이를 들썩들썩해서 또 자리를 내주었다.

 

둥굴레는 굴전, 감자전, 채소전을 붙이느라 구슬땀을 흘리며 언제나처럼 한 손에는 맥주를 들고 있었다. 고소한 기름 냄새가 코끝을 파고드니 참을 수 없이 배가 고팠다. 좁은 집에서 우리는 어깨를 맞대고 무릎을 내주며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그리고 따끈따끈한 각종 전들을 먹었다. 고소하고 바삭했다. 그리고도 몇몇이 더 도착했고, 먼저 와 있던 사람들이 일어나 자리를 내주었다. 참석률 백 퍼센트. 모두들 붙어 앉아 따뜻한 전을 먹으며 떠드느라 얼굴에 땀방울이 맺혔다. 이미 신발장에 놓인 신발들을 방석 삼아 앉아 있던 ‘우동’이 현관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하늘에 동그란 달이 휘영청 떠 있었다. 둥굴레는 그 뒤로도 찌개를 내오고 각종 장아찌 반찬과 노가리를 구워 주었다. 음식은 맛있고 달빛은 밝아서 우리는 자꾸만 웃었다. 좁다고 먼저 일어나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들 좁은 집에 사는 대가족처럼 시끄럽게 음식을 먹었다.

 

 

 

어릴 적 엄마아빠 없이 시골 할머니 댁에서 지낼 때면 할머니는 밤마다 나를 데리고 밤마실을 가셨다. 시골의 밤은 도시보다 빠르게 찾아왔고 사방이 깜깜하고 고요했다. 도시의 밤과는 달라서 가로등 하나 간판 불빛 하나 없이 어두운 논두렁 길을 오로지 발의 감각으로만 따라 걸어야 했다. 할머니는 두 손 가득 소쿠리 같은 걸 들고 계셔서 언제나 내 손을 잡아주지 못하셨다. 그렇게 낯설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나는 내가 엄마 없이 ‘혼자 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느꼈다.

 

그리고 어느 집 마당에 당도해 할머니가 “왔슈.”하며 작은 방문을 밀면 안에서 거짓말처럼 밝은 빛과 따뜻한 목소리들이 쏟아져 나왔다.

 

“왔슈?”

“왔는가. 어여 드루와~”

 

작은 방 안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던 많은 할머니들. 우리 할머니가 바닥에 놓여 있는 소쿠리들과 비슷한 소쿠리를 열면 그 안에 소복한 찐 감자, 옥수수, 전병 같은 것들. 나는 할머니들 목소리를 들으며 옥수수를 먹고, 신김치에 감자를 먹고 하면서 놀았다. 그렇게 한참을 놀다가 할머니와 빈 소쿠리를 들고 밖으로 나오면 어두컴컴한 밤하늘에 하얀 알전구 같은 보름달이 걸려 있었다. 그 달을 본 뒤로 시골의 엄마 없는 밤이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밤이 길어서 좋았고, 세상은 온갖 재미있는 것 투성이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 안킬로와 거북이 손을 잡고 달을 보면서 그때처럼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세상에는 재밌는 거 투성이라고. 비좁고, 어둡고, 무섭다고 생각이 들 때에도 따뜻하고, 다정하고, 재밌는 게 있더라고…. 그런 말들을 하면서 달을 데리고 집으로 향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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