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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보다 멀고, 이웃보다 가까운 사람들이
공동육아를 꾸려가며 겪는 좌충우돌이야기

매주 화, 목요일에 연재됩니다.

 

 

오로지 내 아이를 잘 기르겠다는 일념으로 부모라는 이름의 천차만별 ‘어른이들’이 모였다. 가족보다 멀고 이웃보다 가까운 사람들이 공동체를 꾸려가며 겪는 좌충우돌 이야기들. 때로는 낯 뜨겁고 이기적이며, 때로는 용기 있고 어리숙한 내 안의 진짜 모습들이 드러나는 곳. 지금 어른이들의 등원이 시작된다. 웰컴! 공동육아!

 

 


-반전 모꼬지

 

오월이 되면 어린이집에 큰 행사가 있다. 바로 터전의 온 가족들이 함께 놀러 가 하룻밤을 자고 오는 ‘모꼬지’다. 적게는 스무 명에서 많게는 마흔 명이 넘는 대인원이 함께 한다. 일 년에 고작 하룻밤이지만, 함께 ‘잔다’는 것은 때로는 남은 364일의 시간보다 서로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나는 7년 동안 출산으로 한 번, 코로나로 한 번을 쉬고, 총 다섯 번의 모꼬지를 다녀왔다.

 

 

모꼬지는 워낙 큰 행사라 일찌감치 여러 소위에서 역할 별로 일을 분담해 소위원끼리 회의도 하며 차근차근 준비한다. 운영소위에서는 제일 중요한 장소 섭외와 먹을 것을 준비한다. 어린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정이니 너무 멀어도 힘들고, 안전하게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이어야 한다. 대인원이 묵어야 하니 시끄러워도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을 독립된 공간인지도 따져봐야 한다. 이곳저곳을 알아보고 최종 가격까지 재정소위의 컨펌이 떨어지면 사전 답사를 다녀온 후 확정된다. 그다음은 먹을 것.

 

 

“음식량이 만만치 않으니 O스트코 같은 대형 마트에서 장을 보는 게 낫겠어요.”

“미나리가 의견을 주셨는데 우리 조합이 지켜오는 것들을 위해서라도 외국 자본의 대형 마트에서 장을 보는 건 자제해야 되지 않겠냐고 하시더라고요.”

 

 

회의를 할수록 신경 쓰고 염두해야 할 사항들이 의외로 많았다. 내가 운영이사로 있었던 해에는 의견들을 조율해 나가는 과정에서 진땀을 빼야 했다. 서로 다른 의견들에 ‘너무 예민한 것 아니냐’는 식의 반응과 비아냥, 불편함을 드러내기도 했기 때문이다. ‘사슴’이 말했다.

 

“아니, 외국 자본이 안되면 O마트는요? O플러스는 되고요? 참, 나”

 

사슴의 남편 ‘드래곤’은 외국 국적을 가지고 있었고, 때문에 ‘외국’ 자본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을 배타적으로 받아들였다.

 

 

“호빵은 해산물을 안 먹잖아요. 방사능 때문에….”

(숯불에 생선 구워 먹어도 맛있는데….)

“드래곤은 비건이에요. 비건 메뉴도 생각해봐야겠어요.”

(자기 남편 비건 메뉴까지 우리가 챙겨가야 해?)

“일회용은 최대한 줄여야 하니, 가정마다 식기를 준비해 가도록 하죠.”

(놀러 가서는 좀 편하게 하지….)

“달걀은 비싸더라도 동물 복지 인증을 구입했으면 좋겠어요.”

(가격이 두 배인데 그걸 사라 마라 한담, 자기 집에서나 사 먹던지…)

다들 중요시하는 가치관의 우선순위가 달랐고, 현실적으로 어디까지 수용해야 할지 난감했다. 그 과정에서 평소 감정이 그다지 좋지 않은 관계들이 묘하게 드러나기도 했고, 크고 작은 신경전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예전에 안킬로가 첫 어린이집을 그만둘 때 그곳 원장에게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고민 중이라고 하자 제일 먼저 돌아왔던 말이 떠올랐다.

 

“거긴 사공(조합원들)이 많아서 배가 산으로 간다니까요.”

 

이번 모꼬지에서 만큼은 내가 방향키를 잡고 있는 운영이사여서 다들 줄줄이 의견만 말하고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에 치이는 느낌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다양성이라는 듣기 좋은 말이 현실적으로 부딪혔을 때 얼마나 첨예하고 이기적이 될 수 있는지 피부로 와닿았다.

 

내 의견은 당연히 존중받아야 할 ‘권리’였지만, 남의 의견은 ‘쓸데없는 예민함’이라며 손가락질했다. 나와 다른 의견대로 일이 진행되면 “또 구조합원들 마음대로야?” 혹은 “신입 들어오고 분위기가 다 바뀌었다니까….”라는 식의 말들이 패를 나뉘어 돌아다녔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의견이 곧 나’라는 생각이 서로를 견고하고 방어적으로 만들었던 것 같다. 누군가를 상처 주려고 마음먹고 한 말은 아니었지만, 내가 상처 받지 않기 위해 한 말이 날카로운 칼 끝이 되어 날아갔다. 휴, 준비부터 말 많고 탈 많은 우리의 1박 2일은 무사히 이뤄질 수 있을까?

 

 

홍보교육소위에서는 모꼬지 동안 진행될 프로그램을 준비한다. 아이들과 가족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게임과 놀거리, 조합원 간의 친목을 다질 수 있는 시간들을 기획한다. 언제 해도 아이들에게 반응이 좋은 보물찾기, 팀별 색깔 공 모으기, 아마들 몸에 달린 꼬리(수건) 떼기도 한다. 비가 오면 장화와 우비를 입고 빗 속에서 게임을 하다가 물장구를 치며 놀기도 하고, 밤이 되면 불꽃놀이도 하고 텐트에서 손전등을 가지고 놀았다.

 

아이들의 게임이 순수하고 귀여운 그림이었다면, 어른들의 게임은 스파크 튀는 서바이벌에 가까웠다. 모두가 눈에 불을 켜고 목이 터져라 ‘정답!’을 외치고,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팔씨름에 열을 올리며, 낯 부끄러운 벌칙이나 미션에도 서슴없이 망가졌다. 이유는 바로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특별한 보상 ‘주말 청소 면제권’ 때문이었다. 주말마다 돌아가며 해야 하는 어린이집 청소를 1회 면제받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어떤 상품보다 꼭 갖고 싶은 달콤한 특혜였다. 모두가 쉬고 싶은 주말, 부부가 2인 1조로 함께 해도 족히 3시간 이상 걸리는 이 노동은 의외로 공동육아 어린이집 생활에서 가장 적응하기 힘든 일로 손꼽힌다. 고로 가열차게 타오르는 승부욕, 이글이글 먹이를 노리는 집념의 눈빛, 오고 가는 고성과 안간힘들이 뒤 섞이며 분위기는 클라이맥스로 치닫는다.

 

그중 ‘햇님’은 올해도 당연 강력한 우승 후보다. 평소 깔끔하기가 이루 말할 데 없는 햇님네 집은 처음 가보는 사람들 누구에게나 감탄이 흘러나오게 한다. 말하자면 ‘아이가 있는 집도 이렇게 깔끔할 수 있습니다’의 표본 같은 집이다. 더러움을 못 보는 햇님은 좁은 창틀, 장식품이 올려진 선반과 겹겹이 쌓인 책들 사이처럼 특수한 구역의 청소 노하우와 비장의 아이템들도 보유하고 있다. 햇님네가 주말 청소를 할 때면 이런 청소 도구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간다.

 

“저러고 먼지 제거하는 데만 두 시간 훌쩍이에요.”

 

남편인 ‘달님’은 청소 얘기가 나올 때면 체념한 듯 한숨을 내쉬며 얘기한다.

 

“나도 좋아서 하는 건 아닌데 안 하고 못 배기겠는 걸 어떡해.”

 

항변하는 햇님. 그러니 청소면제권이 걸린 모꼬지나 해보내기 날, 체육대회 같은 행사 때마다 햇님은 두 팔 걷어 부치고 전의를 다지는 것이다. 여타의 ‘정답!’들을 덮어버리기 위해 의자 위로 과감히 올라서고, 그런 햇님이 부끄러워 고개 숙인 달님. 아랑곳하지 않고 햇님은 올해도 청소면제권을 쟁취해냈다.

 

 

게임이 끝나고 이제 본격적으로 고기 타임. 야채를 손질하고 고기를 굽고, 찌개를 끓이며 모두들 분주히 움직인다. 그런데 어쩐지 주방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엄마들이고 아빠들은 고기를 굽는다며 불가에 모여 있다. 고기를 구우며 술도 한 잔, 여유 있게 이야기도 나누는 아빠들과 반대로 안에서는 엄마들이 분주하게 준비하고 나르고, 아이들 밥까지 먹이느라 정신이 없다.

 

“아유 아빠들도 부엌에 좀 있어요~ 애들도 보고~ 엄마들도 고기 굽고 술 좀 마시게.”

 

‘단풍’이 답답한 듯 아빠들을 향해 외친다. 몇몇 아빠들이 재빠르게 부엌으로 들어온다. 사실 이런 일은 모꼬지 때마다 거의 매번 일어나는 일이다. 자연스럽게 놔두면 늘 그렇듯 대부분의 아빠들은 밖으로, 엄마들은 부엌으로 가서 음식을 준비하게 되곤 했다. 너무 역할 분담이 성 고정적으로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어김없이 나오고 그때마다 의식적으로 미리 일을 나눠서 배정하거나, 시간별로 돌아가며 보도록 하기도 했다. 늘 반복되는 이슈였다.

 

“고기 굽는 건 아빠들이 더 잘하잖아요, 하하”

 

한 잔 두 잔 들어가는 술에 기분이 좋아진 ‘달콩’이 눈치도 없이 웃으며 대답했다. 엄마들은 비난의 눈빛을 달콩에게 보내는 대신 도착했을 때부터 쭉 젖먹이 둘째를 안고 있는 ‘알콩'(달콩의 아내)의 눈치를 살폈다. 둘째 보랴, 첫째 챙기랴 알콩이 정신없는 동안 달콩은 불 가 옆 명당자리에 앉아 ‘형님’들과 술잔을 비우느라 한 번도 엉덩이를 떼지 않고 있었다. 취기가 오르자 별명은 온 데 간 데 없고 죄다 ‘형님’이고 ‘아우’다. “아빠 쉬 마려.”하고 첫째가 오면, “응 엄마한테 가서 해달라고 해. 아빠 술 마셔야 해.” 하며 등을 떠밀었다. 엄마들이 아기를 받아주려 했지만 낯을 가리느라 엄마와 떨어지질 않고 결국 알콩은 아이를 안은 채 큰 아이와 화장실로 간다. 알콩을 더 불편하게 하는 건 소리 없는 엄마들의 동정 어린 눈빛이었을 터. 고기를 잘 굽기는…. 까맣게 타버린 고기처럼 알콩의 속도 타들어 간다는 걸 달콩만 모르고 있었다.

 

폭탄은 부부들이 모두 둘러 모여 이야기를 나누던 중 터졌다. 부부게임으로 사전에 짝꿍의 장점과 단점을 적어낸 것을 사회자가 발표하면 다른 사람들이 듣고 맞추는 게임이었다. 다들 안 그런 척하면서도 닭살이 오도도 돋아날 것 같은, 혹은 뜻밖의 심쿵하는 칭찬들을 적어내서 발표 때마다 야유 아닌 야유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었다.

 

“내가 원하는 건 따지지 않고 무조건 결제부터 한다.”

“여전히 클레오파트라처럼 도도하고 아름답다. “

“잠든 모습을 보면 아기 같다.”

“내 눈엔 BTS”

 

그때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를 한 순간에 얼어붙게 만드는 카드가 있었으니….

 

“아내는 청소도 잘하고 요리도 잘한다.”

 

아…. 이런 조선시대 타임 슬립형 칭찬이 웬 말인가! 모두가 침묵하고 있는데 “정답! 알콩” 누군가 외친다. 맞았…. 다. 그것은 달콩이가 적어낸 배우자 알콩의 장점이었다고 한다. 기분 좋으라고 적어 낸 장점일 텐데 알콩이는 기분이 썩 좋아뵈지 않는다. 이미 어둑한 저녁이었지만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싸 차로 간다. 벌건 얼굴로 종종 따르는 달콩에게 차갑고 낮으막하게 묻는다.

 

“내가 네 식모야?”

 

터전에서 어른들이 별명을 갖는 이유는 다양하다. 첫 번째는 아이들에게 권위적이지 않기 위함이고, 둘째는 관계의 평등이다. 터전에는 다양한 동물과 식물, 과일, 갑각류, 파충류, 캐릭터 같은 별명들이 있을 뿐 부장님도 차장님, 대리님도 없다. 굳이 나이를 알 필요도 없거니와 어느 학교 출신인지, 어느 지역 출신 인지를 알려야 할 의무도 없다. 그래서 조합 내에서 조합원들은 편견 없이 서로를 만난다. 그저 집에 아이가 있다는 공통점만으로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모꼬지라는 특별한 장소와 시간에서 사람들은 좀 더 특별해지고 싶은 욕구를 자연스럽게 느낀다. 그래서 ‘형님’ ‘아우’로 서로를 부르기도 하고, 지연, 학연을 거슬러 올라가며 공통점을 찾고자 하는 한국인 고유의 습성이 기어이 나오고야 만다. 거절할 수 없는 술 권하는 분위기로 점점 무르익어 가다 보면 한쪽은 취해만 가고, 상대적으로 엄마들은 아이를 도맡게 된다. 내 남편이 저기 앉아서 벌겋게 되어가는 모습을 보며 “내 이런 자리 다시는 오나 봐.” 같은 소리를 읊조리는 걸 심심찮게 듣게 되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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