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화. “공동육아 선생님 되어보기” -교육 아마(아빠+엄마) 일지

 

 

 

가족보다 멀고, 이웃보다 가까운 사람들이
공동육아를 꾸려가며 겪는 좌충우돌이야기

매주 목요일에 연재됩니다.

 

 

오로지 내 아이를 잘 기르겠다는 일념으로 부모라는 이름의 천차만별 ‘어른이들’이 모였다. 가족보다 멀고 이웃보다 가까운 사람들이 공동체를 꾸려가며 겪는 좌충우돌 이야기들. 때로는 낯 뜨겁고 이기적이며, 때로는 용기 있고 어리숙한 내 안의 진짜 모습들이 드러나는 곳. 지금 어른이들의 등원이 시작된다. 웰컴! 공동육아!

 

 


-교육아마를 하며 알게 되는 것들

 

놀이터 지도

 

우리 동네에는 터전 아이들이 이름 지은 놀이터만 스무 개가 훌쩍 넘는다. 어느 날 운영이사인 ‘감자’가 이 놀이터들을 싹 정리해 지도를 만들었다. 쑥놀이터, 고양이놀이터, 버드나무놀이터, 정글놀이터, 마녀의 숲, 무덤놀이터, 비밀의 동굴, 징검다리놀이터, 나비놀이터, 우물놀이터…. 듣기만 해도 흥미로운 상상이 넘쳐나는 이름들이 많았다. ‘도대체 여기가 어디지?’ 궁금해하며 지도에 있는 장소에 도착해보면 그냥 공터이거나 굴다리 밑, 무성한 풀 숲 같은 곳이었다. 아이들은 친구들과 함께 재미나게 놀았던 기억을 중심으로 마을 구석구석을 저절로 알게 되었다.

 

“엄마, 여기 내가 나들이 나갔다가 풍덩 빠졌던 데다.” 큰 아이는 동네에 있는 징검다리를 지날 때면 아직도 이 이야기를 한다. “우리가 여기 꽃집에 떡을 나눠줬어. 근데 향기가 너무 좋았다?” 그때 맡았던 꽃향기가 아직도 생생한지 작은 아이가 코를 벌름거린다. 그럴 때마다 동네에 아이들이 이름 붙일 수 있는 비밀스럽고 도전적인 장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길이 아닌 곳, 어른들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곳, 그런 마법 같은 곳들에서 아이들이 차려 놓은 나뭇가지 밥상이나, 열매들, 솔방울 더미를 우연히 발견하게 되면 안심이 되곤 한다. 새로운 놀이터들은 여전히 추가되고 있는 중이다.

 


[ 그림 – 거북이 ]

 


거북이가 교육아마 된 날

 

거북이가 교육아마를 했던 어느 날은 우리 집 둘째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던 때였다. “두루미~~ 두우루우미이이이~~” 집에서 갓난아이와 둘이 있는데 창 밖에서 익숙한 아이들 소리가 들려왔다. 창문을 열어보니 거북이와 아이들이 깡충깡충 뛰며 반갑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아이들은 갑자기 목이 마르다는 둥, 쉬가 마렵다는 둥 하며 집 안 현관으로 쳐들어 왔다. 아이들은 번갈아 물을 마시(는 척 하)며 곁눈질로 아기를 쳐다보며 눈을 떼지 못했다.

 

“작고 예쁘다!”

“안킬로랑 똑같이 생겼어.”

 

사실은 갓 태어난 아기에게 인사가 하고 싶어 들어온 꿍꿍이를 모를 리 없다.

 

어느 날은 이사하는 친구네 빈 집에 아이들이 먼저 들어가 둘러보기도 하고, 겨울 추위를 피하기 위해 동네에 있는 친구 아빠네 사무실에 들러 돌아가며 짐수레를 타보기도 한다. 동네에 있는 친구 집, 회사, 학교 운동장…. 모든 곳이 나들이 장소가 된다.

 

거북이는 그날 아이들이 ‘마녀의 숲’으로 가자고 하는데 도대체 그게 어딘지 몰라 아이들 손에 끌려갔다고 한다. 마을 아파트와 주택단지를 휘감아 도는 산책로 길을 따라 한참을 걷다 보니 내리막길 끝에 작은 동굴 같은 비밀공간이 그림처럼 나타나더란다. “바로 여기야!” 동굴 입구에 선 아이들 얼굴이 한껏 의기양양했다.

 

“이 동네에 산 지 7, 8년이 다 되어가는데 말이야, 난 그런 게 있는지 전혀 몰랐어.”

 

거북이는 감탄했다. 마녀의 숲에 도착한 아이들은 굴 옆 돌담 하나하나에 기어오르기 시작한다. 돌담 하나에 아이 하나 ‘도레미파솔’ 음계처럼 튀어나온 돌담 위를 자유롭게 오르내리는 아이들은 마치 들고양이 같았다. 고양이 같은 아이들에겐 길이 아닌 곳이 없었다. 만약 당신이 높은 곳을 보면 기어코 올라가고 싶어지고, 다 올라가면 뛰어내리고 싶어진다면? 당신이 아이였을 때의 본능이 사라지지 않은 것일지도! 아이들은 좁고 높은 돌이나 경사진 길 위도 반드시 올라가 걷고야 만다. 균형을 잡고 끝까지 걸은 다음, 뛰어내린다. 나들이를 나가면 종종 지나가던 어른들로부터 “아니 애들을 저렇게 위험하게 놔두면 어떡해요!”라는 꾸지람을 듣는다는 교사분들의 말이 떠올랐다. 그럴 때마다 봄이(어린이집 교사)는 꼭 이 말을 덧붙이곤 했다.

 

“넘어져 보면 알지요. 내가 이걸 뛸 수 있는지 없는지,

내 몸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자꾸 알게 되지요.“

 

[ 그림 – 거북이 ]

 


나들이를 나가지 못하는 날

 

미세먼지가 심하거나 비가 많이 와서 나들이를 나가지 못하는 날은 그동안 미뤄두었던 가내수공업? 들을 줄줄이 해치워야 하는 날이다. 잼에 들어갈 과일을 으깨고 끓이고, 어느 때는 감이나 무말랭이를 실에 꼬여 천장에 걸어두기도 했다. 그림을 그리다 누군가 물감으로 손도장을 찍기 시작하면 모두가 물아 지경이 되어 손도장을 찍고, 요리를 만들다 말고 음식재료들은 조그만 입 속으로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가 사라졌다. 집에서 내 아이와 하려면 고되고, 잘 안 되는 일들이 공동육아 구역에서는 너그럽고 재미있게 하게 되는 걸 보며 함께 하는 시간 자체에 대한 행복감을 되찾기도 했다.

 

물론 평화롭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한정된 실내 공간 안에서 놀 때 아이들은 더 쉽게 다치고 싸우기도 했다. “두루미, 00 이가 저 놀잇감 자기만 가지고 놀아. 나도 놀고 싶은데….” “아냐, 너는 아까 가지고 놀았잖아.” 아이들은 종종 나를 솔로몬의 시험에 들게 했다. 양 쪽의 팽팽한 의견을 들고 내 앞에 서서 ‘그래서 두루미 어떤 게 옳아? 어떻게 할 거야?’ 하는 얼굴로 판가름을 기다렸다. 나는 몇 번의 교육아마 경험을 살려 나름의 현명한 도피를 선택했다. 최대한 어떤 판단도 내리지 않고 자꾸만 아이들에게 역으로 질문을 던져보는 방법이다. “어머 그랬구나.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00이라면 어떻게 할거 같아?” “그렇게 하면 될까?” 그러다 보면 아이들은 (답답해서인지) 알아서 답을 내리거나 포기하고 떠나갔다.

[ 그림 – 거북이 ]

 


 

낯가림이 심한 아이

 

처음부터 서슴없이 다가와 손을 잡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익숙지 않은 아마의 출현이 그다지 달갑지 않은 아이도 있었다. 평소에도 눈이 마주치면 황급히 피해버리며 낯을 가리던 ‘세하’와 이번 기회에 친해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말도 걸어보고 가까이 다가가 보았지만 그럴수록 왠지 멀어져 가는 것이었다. 그렇게 별다른 진전 없이 오늘 아마도 끝나려나 보다 하고 있는데…. 다른 선생님들의 희한한 행색이 눈에 들어왔다. 모두가 티셔츠를 한껏 끌어올려 머리 위로 뒤집어쓴 채 걸어 다니고 있었다. “도대체 왜….?” 하고 묻자 봄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에 티셔츠를 머리 끝까지 뒤집어쓴 세하가 보였다. 봄이가 그런 세하와 눈이 마주치자 세하는 거짓말처럼 활짝 웃어 보이고는 다시 블록을 쌓았다. “와…..!” 감탄하는 내게 봄이가 으쓱하며 말했다.

 

“제가 이 맛에 교사한다니까요.”

 

나는 허겁지겁 티셔츠를 머리 위로 올려 썼다. ■

 

[ 그림 – 거북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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