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부록2” -우리가 가꾸는 터전

 

 

 

가족보다 멀고, 이웃보다 가까운 사람들이
공동육아를 꾸려가며 겪는 좌충우돌이야기

매주 목요일에 연재됩니다.

 

 

오로지 내 아이를 잘 기르겠다는 일념으로 부모라는 이름의 천차만별 ‘어른이들’이 모였다. 가족보다 멀고 이웃보다 가까운 사람들이 공동체를 꾸려가며 겪는 좌충우돌 이야기들. 때로는 낯 뜨겁고 이기적이며, 때로는 용기 있고 어리숙한 내 안의 진짜 모습들이 드러나는 곳. 지금 어른이들의 등원이 시작된다. 웰컴! 공동육아!

 

 


-공동육아 하는 아빠들

 

그 해에는 시작이 좋지 않았다. 터전이 생긴 이래로 가장 많은 졸업생을 배출한 의미 있는 해였지만, 바로 그 졸업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사소한 문제로 이사회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갈등은 부풀어 올랐고 끝내 대화는 단절되었다. 이사진 일부가 이사회를 나갔고 조합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하루, 이틀 얼굴을 본 사이가 아녔기에 충격은 더 컸다. 나무가 스스로 제 가지를 쳐내듯, 조합 내에서 서로를 할퀴고 찌르는 일들이 계속되었다. 이 일로 조합원 몇몇이 퇴소했고, 남겨진 것은 상처와 엄청난 적자의 위협이었다. 우리는 상처를 채 수습하기도 전에 여기저기 지역 카페에 신입 모집 글을 올려야만 했다.

 

 

부모들이 모여 함께 키우는

공동육아 어린이집

신입 모집, 상담 환영

 

 

불행인지 다행인지 신입 문의는 적지 않았다. 나는 그 뒤로 정신없이 신입 상담을 해야 했는데 사건을 겪은 직후라 좀 냉소적인 상태였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었다.

 

★신입- 공동육아하기 힘들진 않나요?

♣ 나- 무얼 생각하시든 그보다 훨씬 힘드실 거예요. 물론 즐거울 때도 있지만요.

★신입- 행사도 많고 자주 만나니 서로들 친하고 재밌겠어요?

♣ 나- 네, 그런데 다 친한 건 아녜요. 나랑 안 맞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고, 자주 보니 싸우기도 해요. 다 큰 어른이 왜 싸워? 싶은데 정신 차리고 보면 내가 그러고 있기도 하고 그래요.

 

전처럼 공동육아의 좋은 점만을 줄줄이 환상적으로 늘어놓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어떤 강 하나를 건너버린 느낌이랄까. 나는 좀 자조적인 상태로 한 말들이었는데…. 이게 또 예상 외로 반응이 좋아버렸다. 사람들로 하여금 ‘그렇게 힘든데 왜 거기 계속 있는 건데?’ 같은 궁금증을 유발한 모양이었다. 어떤 부모는 상담 내내 집요하게 ‘아~ 이 사람들 뭔가 있는 거 같은데, 여기 좋은 뭔가가 있는 거 같은데…’ 하는 얼굴로 돌아서 나가는 마지막까지 물었다.

 

“여기 있으신 동안 뭐가 제일 좋았어요? 아니, 솔직히 얻은 게 뭔가요?”

 

그분의 간절한 마음이 느껴져 더욱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냥…. 선택이에요.

뭐가 좋고 뭐가 나쁘고 명확하게 계산할 수가 없어요.

내가 선택한 일이니까 그냥 하는 거죠.“

 

나의 무덤덤한 대답에 그는 허탈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이만하면 알 것도 같다고 생각했던 공동육아 생활은 일련의 사건들로 내 확신을 모조리 뒤엎어 버렸다. 타인에게 어떤 기대를 심어주는 일도, 섣불리 판단을 내리는 일도 다 허상 같았다.

 

그럼 나는 왜 여전히 공동육아를 할까? 이전의 공동육아가 그 이름만으로 반짝이는 이상향 같은 것이었다면, 지금의 공동육아는 있는 그대로의 ‘사람들’이었다.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 그리고 나를 믿어주는 사람. 혼자서는 감히 시도치 못할 일들을 둘이 되고, 셋이 되어 그냥 뚝딱 해버리게 만드는 사람들 말이다. 예전에는 틀릴까 봐 긴장하고 망할까 봐 무서웠는데 이제는 틀려도, 망해도 다시 하면 되니까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틀릴까 봐 무서워 아무것도 못하는 빳빳한 시험지보다 쓰다 지우다 고민하다 꾸깃꾸깃 해진 종이가 한결 마음 편했다.

 

 

 


 

“망하면…. 다시 열죠 뭐, 그럼 되죠?”

 

 

봄이와 통통은 그런 말을 종종 했다. “공동육아 한 번 열어 봤는데, 두 번은 못하겠어요? 그 때도 딱 세 집이서 시작했어요. 어떻게 터전만 구해놓고는 점심 때마다 밥 해 들고, 국 해 들고 가서 아이들 먹이고, 같이 먹고, 또 밤 늦게까지 회의하고…. 그 때에 비하면 지금은 상황이 더 낫죠.” 난 그 말이 참 좋았다. 망하면 다시 하면 된다는 말. ‘뭐가 문제야? 같이 하고 싶은 사람들이 여기 있는데 몇 번을 망하던 뭐가 문제겠어?’ 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내가 저 사람들에게 그럴 수 있다고 믿게 해주는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이런 사랑스러운 느낌을 공동체 나부랭이 같은 딱딱한 단어로 교묘하게 위장해 놓다니! 역시 삶은 고단수다.

 

나는 경계심을 내려놓고 사람들과 더 많이 밥을 먹고 더 많이 함께 하고 싶어졌다. 신입들과도 아마(터전에서 아빠+엄마를 일컫는 말)들과도 적극적으로 자리를 만들어갔다. 그것은 거북이의 제안이기도 했다.

 

“인연 하나 만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우리는 어린이집에서 그런 인연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잖아. 그걸 그대로 쉬이 흘려보내면 너무 아깝잖아. 결국 귀한 건…. 사람이란 생각이 드네.”

 

마침 거북이가 속해 있는 홍보교육 소위에는 아빠들이 꽤 많이 있었다. 많은 아빠들이 시설소위로 당연한 듯 쓸려 들어가는 반면, 몸 쓰는 일보다는 얘기하는 걸 좋아하는 아빠들의 욕구가 잠재적으로 깔린 곳이 홍교소위였다. 판만 깔아주면 이 아빠들은 언제까지고 수다가 가능했다.(술 없이도!)

바야흐로 홍교소위의 친목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말로 쾌감을 느끼는 아빠들의 수다는 과연 발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흥미로웠던 점은 이 아빠들이 ‘공동육아’에서 해보고 싶은 일들의 열정이 엄청났다는 것이다. 자기 자리가 없을 때에는 흠흠, 하고 뒷짐 지고 한 발짝 물러서서 예전에 내 아버지가 그랬듯 그림자 역할을 했다면, ‘그래도 되는’ 자리가 생기자 각자 가슴속에 품고 있던 작은 불꽃같은 것들을 슬며시 꺼내 놓기 시작했다.

 

“저는 아빠가 되면 정말 아이랑 친구같이 지내고 싶었어요.”

“육아나 교육에 관심도 많고 생각도 많아요. 그런데 보통 회사나 사회에서 아빠들을 만나면 그런 얘기 잘 안 하잖아요. 그래서 공동육아 오면서 기대를 많이 했어요. 나 같은 아빠들이 많지 않을까…. 하고.”

“맞아요, 저도 처음 들어올 때 기대를 많이 했어요. 들어오면 참여도 일도 많고 힘들 거라고 부담을 팍팍 주셨는데 생각보다는? 뭐가 없었어요. 전 교육도 받고 소통도 하고 아빠들 참여도 훨씬 많을 줄 알았거든요.”

 

 

아빠들의 터나오는 진심에 나는 좀 어리벙벙한 상태가 되었다. 가족과 함께 무언가를 하기 좋아하는 아빠, 아이들 이야기로 쉴 새 없는 대화가 가능한 아빠, 더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기꺼이 공부하고 싶은 아빠…. 과연 세상은 넓고 아빠는 많았다.

 

 

“신입 교육을 이론 위주가 아닌 구체적인 어려움이나 직접 겪은 경험담을 들어볼 수 있는 자리로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신입뿐 아니라 전체 조합원 교육도 정기적으로 했으면 좋겠어요. 가끔 왜 공동육아를 하는 거지? 싶을 때가 있거든요. 저 자신에게 자꾸 인식시키고 싶어요.”

“홍교소위니까 소통이나 교육은 우리 역할이 크잖아요. 신입들 적응을 돕는 짝지 프로그램이라던가…. 할 수 있는 게 많을 것 같아요.”

 

 

그동안 분출되지 못하고 있던 아빠들의 에너지가 퐁퐁 샘솟듯 올라왔다. 그리고 이루어진 첫 신입 조합원 교육에서는 홍교소위 아빠들이 모두 참석하는 이변이 일어났다. 자발적 참여였다. “굉장히 재미있었어!” 거북이가 상기된 표정으로 돌아와 그날 있었던 일들을 얘기해 주었다. 얘기하는 내내 신난 거북이의 얼굴에 뭐라도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기가 넘쳐흘렀다.

 

 

아빠들이 많은 교육 자리는 역시 달랐다. 가장 달랐던 점은 신입 교육을 받으러 온 또 다른 아빠의 반응이었다. 신입 상담이나 교육 자리에 가면 많은 아빠들이 ‘어색함’에 어쩔 줄 몰라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아빠’라는 이름표를 달고 서는 자리가 어색한 아빠들은 하나같이 아내에게 ‘당신이 알아서 해~’ 하는 표정들이었다. ‘공동육아는 이렇습니다. 아빠들도 함께 해야 합니다.’라는 말 백 마디보다 그 자리에 직접 모여 몸소 보여주고 직접 들려주는 현직 조합원 아빠들의 한 방이 있었다. 신입 아빠는 엄마나 선생님이 아닌 자신과 같은 아빠들에게서 조합 생활에 대해 듣는다. 또 다른 주양육자로서 겪는 육아의 고단함과 내 아이에 대한 이야기도 솔직하게 나눌 수 있게 된다.

 

“아이들이 어릴 때 만이라도 아빠와 함께 지내는 시간을 최대한 많이 갖고 싶어서요. 그러다 보니 공동육아를 오게 됐어요.”

“전 선생님과 날적이(아이의 하루 일과 교환 편지)를 되도록 제가 쓰는데 우리 애가 요즘 어떤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이런 것들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 돼서 좋더라고요.”

“퇴근이 늦을 때가 많아 아이들 얼굴도 못 보고 잠들 때도 많지만 대신 소풍날 김밥은 꼭 제가 싸줬어요. ㅎㅎ”

“해 보내기 때 아빠들의 공연은 어때요? 아기 상어 같은 노래에 율동 같은 거요. 우리 애가 요즘 이 노래에 꽂혀서요. ㅎㅎ”

 

 

아빠들의 얘기를 들으며 당장에 조합이 망할 일은 없겠구나 싶었다. 망하면 뭐 다시 열면 되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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