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화. “망하려면 아직 멀었다” -공동육아하는 아빠들

 

 

 

가족보다 멀고, 이웃보다 가까운 사람들이
공동육아를 꾸려가며 겪는 좌충우돌이야기

매주 목요일에 연재됩니다.

 

 

오로지 내 아이를 잘 기르겠다는 일념으로 부모라는 이름의 천차만별 ‘어른이들’이 모였다. 가족보다 멀고 이웃보다 가까운 사람들이 공동체를 꾸려가며 겪는 좌충우돌 이야기들. 때로는 낯 뜨겁고 이기적이며, 때로는 용기 있고 어리숙한 내 안의 진짜 모습들이 드러나는 곳. 지금 어른이들의 등원이 시작된다. 웰컴! 공동육아!

 

 


-어른이 친구들

 

“그런데 내년 이사진은 어떻게 될까요?”

 

달마다 이어져 온 홍교소위의 사적 모임은 연말이 다가오자 자연스레 내년 이사진에 대한 이야기로 초점이 맞춰졌다. 이사진이라 하면 보통은 전직 이사들이 ‘이제 할 만한 순서가 됐다.’ 싶은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하셔야 해요, 지금 아니면 내년에 하고 어차피 해요.’ 라며 떠넘기듯 꾸려갔었다.

 

“제 생각에는 오름이 하면 좋을 거 같아요.”

 

달님이 입을 열었다. 우리 조합의 초창기 멤버로 조합원 생활이 가장 길고 그만큼 경험이 많은 오름이였다. 무엇보다 홍교소위 모임을 통해 공동육아에 대한 생각 면면과 입담을 보아온 소위원들은 하나같이 오름을 이야기했다.

 

“오름이 이사장 하신다면, 제가 홍교이사를 해볼게요.”

“야… 홍교 소위 아빠들이 이제 제대로 나서는 건가요? 내년이 기대되는데요.”

 

매 년 이맘때면 이사회 청탁이 돌고 돌아 끝까지 채워지지 않는 자리를 꾸역꾸역 받아 채워 온 나였다. 어느 때는 운영이사, 어느 때는 시설이사, 홍교이사…. 마치 조커 카드처럼 빈자리에 끼여 맞혀지다 보니 적어도 한 해 걸러서는 늘 이사회에 있었다. 눈물이…. 앞을 가리는 장면이었다. 이전 이사회가 물밑 작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자발적으로 여론이 형성되고, ‘내가 하고 싶소!’ 나서기까지 하다니! 더군다나 아빠들이라니! 거기에 터전의 살림꾼인 운영이사를 최초로 아빠가 맡게 되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우리 조합 아빠들 만세다.

 

 


# 운영이사-감자

 

두 딸의 부모이자 운영이사를 맡은 최초의 아빠 ‘감자’는 첫 신입 상담 때 이렇게 자신을 소개했다.

 

“연년생으로 딸아이 둘이 생기고 누군가는 아이들을 맡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풋콩'(감자의 아내)은 직장 생활이 잘 맞았고, 저는 아이들 보는 일이 더 맞았어요. 그래서 제가 아이들을 보고 있어요. 아마 어린이집 일도 제가 주로 하게 될 겁니다.”

 

얘기했던 대로 감자는 거의 전적으로 두 아이들을 케어했다. 엄마들의 소통이 많은 곳에 들어가고 싶다며 부러 ‘운영소위’에 들어갔고,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엄마들의 티타임이나 소위 모임에도 열심히 참여했다. 요즘 아이들의 주된 관심사나 힘든 점 등 디테일한 육아 고충도 나눌 수 있어 감자와 금세 편해졌다.

 

“감자는 참 다정한 아빠여서 아이들이 좋아하겠어요. 오죽하면 봄이가 보육 교사 해 볼 생각 없냐며 탐을 내시겠어요.”

“아휴(도리도리) 보육교사는 무슨…. 전 둘로도 충분히 벅찹니다. 풋콩이 애 키우는 게 힘든 줄 몰라서 자꾸 셋째 갖자고 그러는데 나는 절대로 못한다고 드러누웠어요. 애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지 모르고….”

 

한 해 동안 감자를 지켜본 조합원들은 셋째는 몰라도 운영이사만큼은 감자가 잘할 수 있을 거라며 다들 뜻을 모았다. “자신은 없는데, 알려주시면 뭐든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그렇게 감자는 터전의 살림꾼이 되었다.

 

*

 

감자가 운영이사를 맡고 능력을 발휘할 첫 공식행사는 스승의 날이었다. “이번 스승의 날에는 어떤 이벤트를 하면 좋을까요?” 매년 톡톡 튀는 서프라이즈로 선생님들을 감동시켜온지라 올해는 또 어찌해야 할지 다들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었다. 선생님 한 분 한 분에 대한 감사 메시지를 담은 카톡 프로필 사진 제작해서 바꾸기, 선생님 사랑해요 스티커 붙인 옷 입혀 등원하기, 줄지어 차례로 꽃 전달하기 등등 매년 소소한 이벤트들로 감사한 마음을 전해왔다. 올해에는 각자 가정에서 선생님들께 드릴 그림 편지를 만들어 오기로 했다. 감자가 스승의 날 아침에 이 카드들을 터전 문 앞에 걸어두고 선생님들이 출근하시면 함께 꽃을 드리기로 했다.

 

*

 

당일 아침 둘째 아이 손을 잡고 조금 서둘러 터전으로 향했다.

 

“와….!”

 

터전이 가까워지자 수십 장의 그림카드로 만들어 놓은 꽃길이 눈부시게 펼쳐졌다. 오색 줄에 한 장 한 장 걸어 놓은 아이들의 그림과 아마(공동육아에서 아빠+엄마를 일컫는 말)들의 손편지는 마치 야외 전시장의 작품 같았다. 삐뚤빼뚤 따라 그려놓은 글자들과 알록달록한 꽃과 나비 그림들, 그림 속 웃는 얼굴들은 신기하게도 어떤 선생님을 그려놓은 건지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아이들 특유의 관찰력이 담겨있었다. 바닥에는 터전 문 앞까지 징검다리처럼 이어지는 색종이들과 풍선, 꽃들로 수놓아졌다. 하나 둘 등원하는 아이들은 마치 파티장에 도착한 것처럼 좋아하며 폴짝폴짝 뛰었다. 아마들은 감탄하며 그림카드 한 장 한 장을 들여다보았다.

 

“감자, 어떻게 이렇게…. 언제부터 준비하신 거예요?”

“새벽에요. 저녁에 미리 해 놓으면 날아가거나 없어질 것 같아서요. 아이들 잘 때 일찍 나와서 만들어 놓고 다시 가서 아이들 준비시켜 나왔어요.”

“이걸…. 혼자 다 하신 거예요?”

 

감자가 머쓱하게 웃었다. 우리는 모두 설레는 마음으로 선생님들의 출근을 기다렸다. 이윽고 봄이와 동백, 수박이 차례로 도착했고 저 멀리 입구에서부터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한 발짝 한 발짝마다 그림카드와 수줍은 손편지, 손수 오리고 만들어 붙인 장식들이 정성껏 선생님들을 맞이했다.

 

*

 

감자는 무엇이든 열심히 했다.

 

“어린이집 일 뿐이잖아요. 뭘 그렇게까지 열심히 해요?”

 

낯선 아빠의 등장에 의아해하거나 별 이유 없이 반감을 갖는 아마도 있었다.

 

“감자, 이상하지 않아요? 난 좀 그렇더라고요. 뭐랄까… 자연스럽지도 않고 묘하게 불편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정형화된 아빠의 모습과 맞지 않아 부자연스럽게 느낀 걸까? 아니면 아빠의 기준치를 높이는 것 같은 감자의 활약이 못마땅했던 걸까…. 이유가 뭐든 알게 뭐람. 나는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감자를 더 좋아하게 되었고, 마음속으로 열렬히 지지하게 되었다.

 

*

 

오월은 행사의 달, 스승의 날에 연이어 모꼬지까지 바쁘게 준비했을 감자는 모꼬지 장소에 도착해서도 쉬지 않고 이것저것을 챙기고 있었다. “감자, 준비하느라 며칠을 신경 썼을 텐데 좀 쉬고 같이 놀아요.”라고 권하자 감자가 대답했다. “이따 풋콩이 퇴근하고 오면요. 그때는 저도 좀 풀고 제대로 놀 겁니다.” 예상 밖 결연한 대답에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드디어 주말 근무를 마친 풋콩이 합류했다. 감자는 깍듯했던 그간의 이미지(독박 육아와 운영이사)를 출근복 벗듯 벗어던지며 풋콩에게 말했다.

 

“나, 오늘은 놀 거야.”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의자 위로 올라가 빗자루 기타를 치고 있는 감자를 우러러보게 되었다. 다들 감자의 반전 매력에 깜짝 놀랐지만 정작 풋콩은 평온했다. “감자가 총각 때는 얼마나 잘 놀았는데요. 노래방 가거나 회식자리 있으면 분위기 뛰우는 데는 최고였어요. 그나저나…. 요즘 육아 스트레스가 좀 많이 쌓이긴 했었나 보네….”

 

 

훗날 감자네는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가게 되어 아쉽게도 퇴소 신청을 했다. 퇴소 전 감자와 풋콩은 조합원 모두를 새 집에 초대했다. 주말까지 일하는 풋콩의 업무 때문에 평일 저녁에 약속시간이 잡혔고, 조합원들은 퇴근시간과 겹친 험난한 서울 나들이를 감행했다. 거리는 멀어졌지만 마음의 거리만은 그대로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꽤 많은 가족들이 늦은 저녁 먼 길을 달려 감자네 집으로 모였다. 사람들은 감자와 풋콩이 직접 싼 김밥을 먹으며 아쉬운 마음을 저만치 미뤄두고 더 많이 웃고 이야기했다.

 

 


#이사장-오름

 

어느 날인가 사람들과 모여 대화 중에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이를테면 그림 그릴 때 행복하다던지, 운동을 꾸준히 한다던지 그런 얘기들이 나오고 있었다.

 

“독대요. 저는 독대에는 자신이 있어요.”

 

오름이 이렇게 말했을 때 나는 잠깐 당황했다. ‘독대? 무슨 독대? 장독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다들 나랑 비슷한 상태였는지 여기저기서 “네?” “독대요? 그게 뭔데요” 하는 반응들이 나왔다.

 

“저는 누군가와 단둘이 마주해서 설득하거나, 대화하는 일에 자신 있어요.”

 

난생처음 들어보는 능력에 오름이 히어로물 영화의 캐릭터처럼 황당무계해 보였다. ‘전 벽을 타요.’ ‘전 눈에서 레이저가 나와요.’ 거의 그런 급이었다. 그런 오름과 이사회를 함께 하게 된 대표교사 봄이는 전에 없는 난항을 겪고 있는 듯했다. 옆에서 보기에도 두 사람의 성향은 이과와 문과의 양 극단에 서 있는 것처럼 달랐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내일이 일식이래, 근데 일식이 뭐야?” 하고 물으면 봄이는 “어느 날, 하늘에 달님이 햇님이를 너~무 보고 싶어서 놀러 갔대~ 달님이는 오랜만에 햇님이를 만나 행복하고 즐겁게 논 다음 다시 집으로 돌아온 거야.” 하며 두 손으로 햇님과 달님을 만들어 동화 한 편을 들려주었다.

 

오름은…. “자, 지구가 태양을 도는 궤도가 있어.”로 시작해서 은하계를 종이에 그리고 강의를 시작한다. 강의 후에는 천체 망원경을 구입하거나 어린이과학관 관람을 예약한다. 남 다른 온도차를 보여주며 두 사람은 달마다 의무적으로 회의 책상에 마주 앉았다.

 

*

 

그러던 어느 날 이사진은 어느 신입의 2차 면접을 치르게 되었다. 전년도의 졸업과 조합 내 갈등으로 갑작스레 꽤 많은 인원이 퇴소하게 되었고, 까딱하면 연말에 대규모 적자를 맞닥뜨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높은 시점이었다. 홍교소위 이사였던 달님은 어떻게든 신입을 받고 싶었다. “사람 얼굴 한 두 번 보고 그 사람이 어떤지 어차피 알 수 없잖아요. 거르기보다는 일단 받을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받고 차차 소통하면 되죠.” 2차 면접을 앞두고 달님은 미리 안전망을 깔아 두듯 이런 말을 했다. 2차 면접이 끝나고…. 다들 달님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것 같은 얼굴이 되었다. 그분은…. 많이 달랐다.

 

공동육아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상담을 오는데

 

  1. 공동육아에 대해 잘 알고 제대로 찾아온 사람
  1. 잘 모르고 왔지만 제대로 찾아온 사람
  1. 잘 모르고 잘 못 찾아와 황급히 돌아가는 사람
  1. 잘 모르고 잘 못 찾아왔지만 돌아가지 않는 사람

 

이 있다. 이 분은 가장 후자에 속했다. 일단 공동육아 교육이나 활동에 대한 별다른 관심이 없다. 그럼에도 돌아가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교사 대비 아이의 수가 적은 공동육아의 특성 때문일 것이다. 생협에서 대부분의 식재료를 조달해 소스 하나까지 직접 만들어 먹이는 건강한 식단과 부모들이 운영하니 믿을 수 있다는 점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러한 ‘특별한’ 점 때문에 공동육아에 왔지만 이런 분들이 간과한 부분이 하나 있다. 바로 ‘협동조합’이라는 점이다.

 

공동육아 협동조합, 이 두 글자는 떼려야 뗄 수가 없어서 세트로 오롯이 받아들여야만 조합 생활을 함께 해나갈 수 있다. 그러나 신입 모집을 담당하는 홍교이사로서 적자에 대한 부담감이 컸던 달님은 상담을 온 한 사람 한 사람이 아쉬운 상황이었다. 어차피 사람 거기서 거기 아니냐, 지금 누구 가리고 그럴 때가 아니다, 공동육아는 어린이집 아니냐… 등등 이사진과 조합원들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고, 많은 조합원들이 거기에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몇몇 조합원들은 공동육아가 뭐 그리 특별한 권리냐는 논조에 더 많이 공감하기도 했다. 그때 오름이 말했다.

 

“저는 준이가 태어나고 통통과 공동육아를 찾아 이 동네로 이사를 오게 되었어요. 그리고 동생 이나까지 공동육아에서 아이들을 기르고 있어요. 공동육아에서 우리가 하는 일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아이 하나를 기르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우리가 그런 울타리가 되어 주면 아이들은 그 안에서 저절로 자라니까요. 아이를 어떻게 더 특별하게 키울지가 아닌 우리가 어떤 어른으로 성숙할지에 대한 고민이 공동육아에 있다고 생각해요…..(생략)”

 

공동육아에 있지만 가끔 왜 공동육아를 하는지, 우리가 뭘 하는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삶도 빡빡한데 어린이집 일까지 이렇게 많이 신경 써야 해? 하는 불만이 툭하고 올라오기도 한다. 그러나 그 모든 중심에 내 아이가 있기에 우리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묵묵히 할 일을 한다. 오름의 말은 아마 각자가 공동육아를 선택하고 조합원 생활을 해나가면서 언젠가 한 번쯤 느꼈을 가슴 뿌듯한 어른으로서의 ‘순간’을 떠올리게 했을 것이다. 내가 하는 일에 믿음과 확신을 갖게 되는 순간이 모두에게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 순간들이 우리를 함께 하게 한다.

 

“저… 오름 문자 보고 밤새 펑펑 울었어요. 너무 감동스러워서….”

 

봄이의 눈에 금세 또 눈물이 차오른다. 그런 봄이가 난감한 오름…. 그 뒤로도 오름은 크고 작은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들을 상기시켜 주며 이사장으로서 조합을 단단히 이끌어 주었다. ‘괜히 독대 얘기를 한 게 아니구나.’ 수긍하게 되었다. 내가 발견한 그의 대화 능력은 ‘독대’라는 센 표현과는 다르게 의외로 ‘이기려 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첨예하고 서로가 과민해질 수 있는 주제에서도 이기려 들지 않는 법, 고로 졌다는 느낌을 받을 사람도 없었다. 아예 논쟁을 링 아래로 끌고 내려와 무장 해제시키는 대화법이었다.

 

훗날 시간이 좀 더 흐르고 이런 대화를 끌어갈 수 있는 힘이 수많은 설전과 진짜 싸움들 속에서 길러진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통통과 오름은 노동운동과 장애인 인권 운동을 하며 만났다. 기울어진 운동장의 아래쪽에 서 본 사람들만이 볼 수 있는 시야와 느낄 수 있는 감각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 힘이 오름과 통통 부부에게 스며있었다. 장애인 부모들과 국회 담벼락을 넘고 길거리에 누워 며칠씩 먹고 잘 수 있는 사람은 과연 강한 걸까? 아니면 여린 걸까. 독대니 싸움이면 자신이 있다느니 센 소리들을 자신 있게 내뱉지만 실은 그들이 진짜 강해질 때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곁에 있을 때였다. 그런 부부가 무섭다고 하는 것이 딱 하나 있었다.

 

“난 모르는 사람들과 모여 산다는 게 무서워.

외딴집보다 다닥다닥 붙은 아파트가 무섭고 도시가 무서워.“

 

통통은 모르는 사람들이 무서워 공동체를 찾고 울타리를 만들어 그 안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공동체를 만드는 일의 고됨과 그 안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갈등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그래서 공동체 안의 사람들을 그렇게도 알뜰살뜰 챙기며 정을 주는구나…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사람들과 함께 해보고 싶다, 무엇이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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