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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보다 멀고, 이웃보다 가까운 사람들이
공동육아를 꾸려가며 겪는 좌충우돌이야기

매주 목요일에 연재됩니다.

 

 

오로지 내 아이를 잘 기르겠다는 일념으로 부모라는 이름의 천차만별 ‘어른이들’이 모였다. 가족보다 멀고 이웃보다 가까운 사람들이 공동체를 꾸려가며 겪는 좌충우돌 이야기들. 때로는 낯 뜨겁고 이기적이며, 때로는 용기 있고 어리숙한 내 안의 진짜 모습들이 드러나는 곳. 지금 어른이들의 등원이 시작된다. 웰컴! 공동육아!

 

 

 


-터전살이, 들살이, 그리고 되살이

 

 

육아의 최종 목표는 뭘까?…. 건강하게 잘 키우는 것! 그런데 이 ‘잘 키운다’는 말 속에는 수많은 요소들이 담겨 있다. 지성이면 지성, 인성, 감성, 체력, 사회성…. 모든 면에서 두루두루 잘 큰 멋진 내 아이의 모습을 떠올려 본 적이 왜 없겠는가? 그런데 대한민국 많은 부모들의 스승이자 종교와 다름없는 오은영 박사님이 어느 날 텔레비전에 나와 이런 말을 했다.

 

“육아의 최종 목표는 독립입니다.”

 

독립이라니…. 내가 이토록 애지중지 키우며 온 우주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내 새끼를 ‘독립’시키려고 이 고생을 하고 있다니…. 나는 충격을 받았다. 가슴 한가운데에 휑하니 구멍이 난 것 같았다. 그리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일반 유치원이 아이들에게 ‘학교’에 갈 준비를 시킨다면 공동육아에서는 좀 더 스케일이 큰 얘기를 한다. 바로 ‘세상에 나갈’ 준비를 시킨다. 아직 어린아이들에게는 바로 ‘부모’가 세상의 전부다. 그래서 공동육아에서는 다섯 살이 되면 부모 없이 살아보는 경험을 한다. 엄마 아빠 없이 터전에서 보내는 하룻밤을 ‘터전살이’, 터전 밖에서 보내는 하룻밤을 ‘들살이’ 그리고 졸업 후 다시 터전에 돌아와 하루를 보내보는 ‘되살이’의 3종 살이 세트다.

 

처음 첫째 아이가 터전살이를 하던 날, 나는 너무 불안해서 차라리 아이를 빼오고 싶을 지경이었다. 한 번도 아이와 떨어져 잠을 자 본 적이 없었다. 아이에게만 부모가 세상의 전부인 것이 아니였다. 나만이 알고 있는 내 아이의 루틴과 습관 같은 것들이 눈에 밟혀서 발이 떨어지질 않았다. ‘낯선 곳에서 잠이 안 오면 어쩌지?’ ‘자다가 혼자 깨면 무섭지 않을까?’ ‘잠결에 울다가 다른 친구들까지 못 자게 하면 안 되는데….’ 그나마 우리 집은 터전까지 걸어서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였다. 오밤중 언제라도 연락이 오면 바로 튀어나가려고 휴대폰을 꼭 쥐고 잠자리에 들었다.

 

터전 주위에서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는 다른 아마(아빠+엄마)들은 ‘밤샘근무’를 하시는 선생님들을 핑계 삼아 야밤의 ‘야식 산타’를 자청했다. 치킨, 피자, 떡볶이를 비롯한 각종 주전부리 야식들을 차례대로 터전 문 앞까지 직접 배달하며 창문에 귀를 바짝 붙이고 내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려 애썼다.

 

 


아이들은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를 보내고 보통은 하원 할 시간에 ‘특별한’ 일과를 시작하게 된다. 터전살이의 시작을 알리는 개회식을 열고 작은 파티와 함께 저녁밥을 먹는다. 그리고 선생님들이 준비한 각종 게임과 놀이를 하며 해가 완전히 지기를 기다린다. 깜깜한 밤, 아이들은 옷을 챙겨 입고 손전등을 들고 모험 같은 밤마실을 나선다. 늘 걷는 동네 길이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에 친구들, 선생님들과 함께 하면 완전히 다른 길이 된다. 아이들이 충분히 걸어 지치고, 배고프고, 졸린 상태가 되어 터전에 돌아오면 이제 ‘그것’의 타이밍이다. 바로 촛불의식.

 

 

수학여행 마지막 날 밤이면 촛불 하나로 눈물, 콧물 다 쏟아내고 태어나 부모님께 지은 그간의 불효를 모조리 떠올리게 하는 마법의 의식 말이다. 단, 아직 미취학 아동들의 촛불의식은 좀…. 엉뚱하고 횡설수설하며 상당히 귀여운 구석이 있다. 선생님들이 찍어 보내주신 동영상 속 아이들은 이 말 저 말 의식의 흐름대로 혹은, 불쑥 찾아온 졸음으로 본인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를 말들을 옹알대고 있었다. 그래도 제 촛불이 꺼지지 만은 않도록 자리를 지키고 앉은 채. 그 모습이 너무 아기 같아서 또 울컥…. 그리고는 이불을 펴고 자리에 눕는다. 익숙한 터전이지만 엄마 아빠 없는 잠자리가 낯설어 잠이 잘 오지 않는다…. 고 생각하며 까무룩 잠이 든다. 잠투정을 부리거나, 집에 가겠다고 우는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7년 동안 그랬다.

 

어릴 적 갑자기 엄마가 아프셔서 큰 수술을 받게 되신 적이 있다. 아빠는 엄마와 함께 병원에 계시고 동생들은 시골 할머니 댁에, 학교에 가야 하는 나는 홀로 친척집에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밤에 이불을 깔고 누웠을 때 봤던 까맣고 네모난 천장이 아직도 기억난다. 꼭…. 우주 미아가 된 것 같았다. 우주가 너무 크고 넓어서 그 어둠이 나를 꿀꺽 삼켜 버릴 것 같았다. 벅찬 것 같기도 하고 허전한 것 같기도 한 태어나 처음 겪는 묘한 기분이 싫어서 이불깃을 코 끝까지 끌어당긴 채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아마들은 상기된 표정으로 터전에 모여든다. 일찍 일어나 아침 산책을 마치고, 누룽지로 식사까지 이미 끝마친 아이들이 느긋하게 아마들을 맞이한다. 터전살이를 한 건 아이들인데 떨리고, 가슴이 벅찬 쪽은 늘 아마들이다. 긴긴 하룻밤 아마 없이 보낸 아이들을 으스러지도록 꼭 껴안고 몇 번이고 속삭여준다.

 

“잘 있었어? 장하다. 다 컸네 우리 아가….”

 

터전살이를 하고 나면 아마들도 아이들도 조금 단단해진 듯한 기분이 든다. 아이들은 부푼 마음으로 레벨업 버전인 ‘들살이’를 기대하게 되고, 아마들은 처음만큼 초조해하지 않게 된다. 조용히, 티 안 나게 다가오는 ‘육아 휴일’의 계획을 짤 수 있는 여유까지 생긴다.

 

아이들이 들로, 섬으로, 절로 들살이를 가는 동안 점차 내 마음속 불안은 옅어졌다. 어느 때는 버스를 타고 시골 민박집으로, 배를 타고 섬으로, 기차를 타고 절로 들살이를 떠났다. 아이들이 비료포대를 타고 논두렁을 신나게 미끄러져 내려오는 모습이나 자기 얼굴보다 큰 고구마를 들고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사진을 확인하며 아마들은 아마들만의 자유시간을 만끽했다. 삼삼오오 집으로 모여 와인잔을 부딪히며 밤새 수다를 떨기도 하고, 부부가 오붓하게 심야 영화관을 찾아 데이트를 했다. 아이들은 남이섬 통나무 집에서 잠을 자기도 하고, 템플스테이를 경험하기도 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절을 해야 해서 힘들었어. 그런데 엄마, 절에서 주는 밥 진짜 맛있다!”

“우리 비밀 장소에다 타임캡슐도 묻었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다시 와서 꺼내보기로 했어.”

 

 

가족이 함께 하지 않은, 오롯이 아이와 친구들만의 추억이 생기는 모습을 지켜보며 ‘자란다’는 말을 그 어느 때보다 실감했다. 이 느낌이 앞으로 내 아이를 보며 수없이 느끼게 될 감정들이겠구나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아이가 나 없이도 잘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면 처음엔 조금 허탈하고 서운한 기분이 되고 만다. 그러나 어느 순간 받아들이게 되면 ‘함께 살아가는’ 씩씩한 작은 친구가 눈에 들어오게 된다.

 

어느덧 그 작은 친구가 졸업을 하고 초등학생이 되어 되살이를 하러 다시 터전에 돌아왔을 때, 동생들과 선생님, 아마들 모두가 한없이 따뜻하고 기쁘게 아이들을 맞아주었다.

 

“잘 왔어~ 언제든 보고 싶고 생각날 때면 터전에 오렴. 너희들은 그래도 돼.”

 

밝게 웃는 아이들의 얼굴에 안도감이 돌았다. 어쩌면 세상에 나가기 위해 진짜로 필요한 것은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신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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