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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보다 멀고, 이웃보다 가까운 사람들이
공동육아를 꾸려가며 겪는 좌충우돌이야기

매주 목요일에 연재됩니다.

 

 

오로지 내 아이를 잘 기르겠다는 일념으로 부모라는 이름의 천차만별 ‘어른이들’이 모였다. 가족보다 멀고 이웃보다 가까운 사람들이 공동체를 꾸려가며 겪는 좌충우돌 이야기들. 때로는 낯 뜨겁고 이기적이며, 때로는 용기 있고 어리숙한 내 안의 진짜 모습들이 드러나는 곳. 지금 어른이들의 등원이 시작된다. 웰컴! 공동육아!

 

 

 


– 공동육아 졸업하기

 

공동육아에서는 아이들이 졸업할 때가 다가오면 선생님, 그리고 졸업반 친구들이 함께 졸업여행을 떠난다. 터전 밖으로 나가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집이 아닌 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온다. 공동육아의 특성상 졸업생 수가 많지 않아 어느 때는 대여섯 명, 어느 때는 두, 서너 명이 오붓하게 여행길에 오른다.

 

 

터전살이나 들살이가 함께하는 다섯, 여섯 살 동생들로 다소 정신없고 시끌벅적하다면, 졸업여행은 소수정예로 공동육아 전 과정의 ‘마지막’이라는 의미를 뗘서인지 왠지 모르게 경건하기까지 하다. 아마 그 시간 동안 아이들은 ‘내가 이만큼 자랐다!’는 자부심과 터전 밖 더 큰 세상에 대한 설렘을 동시에 느낄 것이다. 그렇게 터전을 떠날 준비를 한다. 지금 여기서, 나를 지탱하고 있는 단단한 땅을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 뻗어나가는 것이다.

 

 

큰 아이가 졸업하던 날, 나는 온 얼굴이 눈물범벅이 되는지도 모르고 펑펑 울다가 웃다가 했다. 다른 아마들도 별반 다르지 않아 여기저기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며 훌쩍이다 또 꺽꺽 웃다 하느라 분주했다. 설명할 수 없는 벅찬 감정과 지나온 날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반면에 졸업생들은 얼굴 가득 미소가 떠날 줄 몰랐다. 누가 뭐라 가르쳐 준 적도 없는데 의기양양, 완주했다는 자부심의 아우라가 온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런 언니, 오빠, 형, 누나들을 손가락 빨며 바라보던 동생들은 준비한 마지막 인사를 했고, 졸업생들은 이에 화답했다. 그리고 졸업생들이 품 안에 쏙 동생들을 안아주는데 어느새 이렇게 컸나 싶을 정도로 훌쩍 자라 있는 모습이었다.

 

 

공동육아에서는 일찍은 3세부터 같은 어린이집을 쭉 다니기 때문에 아마들은 이 듬직한 졸업생들의 흑역사 꼬꼬마 시절을 기억하고 있다. 빵빵한 기저귀를 차고 몇 가닥 없는 머리카락으로 아장아장 걷던 모습도, 입가에 양념을 묻히고 손으로 덥석 반찬을 집어 먹던 모습도 지켜보았다. 친구들, 선생님들과 때로는 아마들과 손을 잡고 동네 마실을 다녔고, 긴 나들이 길에는 놀다 지쳐 어른들 등에 업혀 돌아오기도 했다.

 

 

유난히 과묵하고, 무거웠던 볼살이 사라져 갈 때 즈음에는 “두루미, 있잖아 그거 알아?” 한 번 입을 열면 애지간해서는 끝날 줄 모르는 수다쟁이가 되어 가는 것도 지켜보았다. 어느덧 터전에 막냇동생들이 들어오면 “세상에! 너무 귀엽지 않아?”라며 몸을 부르르 떨며 작은 손으로 더 작은 손을 조심조심 잡아 주었다. 불과 몇 년 동안에 아이들이 자라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일은 놀라움을 넘어 존경스럽다. 충분히 진심을 다해 축하와 격려의 박수를 보내줄 만했다. 아니, 오히려 함께 지켜볼 수 있어 영광이었다. 저녁도 먹지 못하고 퇴근길 제일 먼저 졸업식에 달려와 축하해주는 모든 아마들의 마음이 그러할 것이다.

 

 


 

첫 회 졸업생은 단 한 명이었는데, 너무나 애틋하고 자랑스러워서 뭐라도 다 해주고 싶은 기분이었다. 아마들은 직접 쓴 손편지를 모아 주고, 공동육아 이름이 새겨진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학교 가서 힘든 일 있으면 말만 해 지호야. 우리들 다 지호 뒤에 있을게.” 다소 허세 담긴 약속에도 지호는 싫지 않은 듯 웃어주었다.

 

 

2회 졸업생이었던 큰 아이는 동네에 있는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여섯 명의 졸업생 중 세 명의 아이들이 같은 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입학식 날 강당에 모여 부모들은 뒤 쪽에 서 있고 아이들은 앞 쪽 학년과 반이 적힌 표지판을 들고 있는 선생님들 앞으로 머뭇거리며 걸어 나갔다. 자기 이름이 쓰인 명찰을 받아 목에 걸고 자리를 찾아 앉은 다음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엄마 아빠를 확인했다. 아이가 안심할 수 있도록 잘 보이는 곳에 서서 눈을 맞추고 웃어 주었지만, 떨리는 건 아이나 나나 마찬가지였다.

 

 

쫄면 안되는데 학교는 터전과 비교도 안될 만큼 크고 학생 수도 많았다. 터전에서 해왔던 수많은 행사들이 잔치였다면(해보내기 잔치, 개원잔치, 졸업식과 김장까지도!) 학교 입학식은 공식적인 첫 의식 같았다. 교장선생님이 마이크에 대고 일장 연설을 하시고, 태극기에 대한 경례도 했다. 담임 선생님들 소개와 전교 회장의 환영사도 있었다. 어쩌면 학교의 입학식은 삼십여 년 전 풍경과 그다지 변한 게 없었다. 난생처음 겪는 대규모 행사의 공식적인 주인공이 된 아이들이 어리벙벙한 상태로 입학식을 마치고 차례로 줄지어 교실로 돌아갈 순서였다. 사람들 틈에 섞여 있는 아이들이 어찌나 작아 보이던지 터전에서 보았던 그 듬직한 아이들이 맞나 싶었다.

 

 

그때 뜻밖의 지원군들이 등장했다. 부모들이 만든 행렬의 끝에 옹기종기 익숙한 ‘작은 사람’들이 보였다. 터전의 동생들과 선생님들이었다. 눈사람같이 두꺼운 옷을 껴입고 빨개진 볼로 반짝반짝 눈을 빛내던 아이들은 드디어 우리들의 언니, 오빠, 형, 누나들을 발견했다. “언니다! 언니~” “형아!” 웅성거리고 어수선한 강당의 소음 들을 뚫고 동생들의 목소리를 단번에 알아챈 아이들은 배시시 웃었다. 동생들과 만나니 다시 듬직한 졸업생들이 서 있었다. 동생들은 준비한 작은 사탕 꽃다발과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선생님들은 으스러지게 아이들을 꼭 안아주었다. 지켜보던 나는 그만 긴장되었던 마음이 한순간에 풀어지며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입학생들은 사탕목걸이를 목에 걸고 같은 반 친구들의 눈길을 받으며 의기양양하게 다시 행렬로 돌아갔다.

 

 

가끔 동네에서 졸업한 아이들과 마주칠 때가 있다. 가방을 메고 의젓하게 걸어가는 아이들에게 나는 매번 반가운 마음에 약간 촐랑대며 손을 격하게 흔들며 인사를 건넨다. “지호야~~ 안녕!” 그러면 아이들은 멈칫하고는 옆에 있는 친구를 의식한 듯 점잖게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꾸벅)” 그제야 ‘아차!’ 싶은 생각이 들어 나는 ‘보통’의 어른으로 돌아가 조용히 인사를 받고 지나간다. 그러나 옆에 친구가 없을 때에는 나는 다시 ‘두루미’가 된다.

 

“지호야~ 보고 싶었어. 잘 지냈어?”

 

그러면 지호는 살짝 머뭇거리다 대답한다.

 

“응, 두루미”

 

아! 나는 다시 지호의 ‘큰’ 친구로 돌아간 것만 같아 마음이 놓인다. 쭉 이대로 언제까지고 존댓말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꼭 그게 날 어른 세계로 밀어내는 것 같아서 우리끼리 있을 때 만이라도 말을 놓아주기를 조마조마하며 기다리게 된다.

 

“나 떡볶이 먹으러 갈 건데 지호도 같이 먹을래?”

 

아이들이 졸업할 때 했던 다짐이나 약속처럼 난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한다. 학교에 가서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얼마나 힘들지는 감히 짐작해 볼 수도 없다. 그렇다고 대놓고 물어볼 수도 없다. 그저 가끔 우연히 만나면 함께 떡볶이집을 가거나 남 모르게 손 인사와 눈빛을 주고받는다. 그런 날은 괜히 기분이 좋다. 이 동네에 내 아이 말고도 오며 가며 인사할 수 있는 다른 어린이 친구가 있다는 게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 이래서야 든든한 빽이 되어준다던 다짐과는 반대로 오히려 내가 아이들에게 받는 꼴이 되었지만 어쩌겠는가. 나중에 내가 할머니가 되면 맥주 한 잔쯤은 사주겠지…. 가증스러운 기대를 품으며 지금은 떡볶이를 대접할 수밖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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