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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보다 멀고, 이웃보다 가까운 사람들이
공동육아를 꾸려가며 겪는 좌충우돌이야기

매주 목요일에 연재됩니다.

 

 

오로지 내 아이를 잘 기르겠다는 일념으로 부모라는 이름의 천차만별 ‘어른이들’이 모였다. 가족보다 멀고 이웃보다 가까운 사람들이 공동체를 꾸려가며 겪는 좌충우돌 이야기들. 때로는 낯 뜨겁고 이기적이며, 때로는 용기 있고 어리숙한 내 안의 진짜 모습들이 드러나는 곳. 지금 어른이들의 등원이 시작된다. 웰컴! 공동육아!

 

 

 


7년의 공동육아, 그리고 퇴소

 

 

공동육아에 몸을 담은지 7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첫째 아이가 졸업을 하고도 꽤 긴 시간을 그곳에 있었다. 그러나 나는 둘째 아이가 졸업하기 전, 내 손으로 퇴소 신청서를 제출했다.

 

뭐 이런 롤러코스터급 반전이, 해피엔딩과 새드엔딩이 예고도 없이 오락가락하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맨 처음 말했듯(날 망치러 온 나의 구세주) 공동육아가 그러하고…. 삶이 그러하다. 모든 일은 파도의 표면처럼 오르락 내리락 한 데 붙어 있다.

 

 

발단은 불미스러운 일이었다. 새로운 이사회의 이사장과 성평등 의식 문제로 부딪히기 시작했던 것이다. 당시 일본에서는 다가오는 도쿄올림픽, 패럴림픽을 앞두고 조직위원장이 차기 위원장으로 여성이 선출된 것을 두고 ‘여성이 많은 이사회는 시간이 걸린다.’ 라고 말해 파문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 성차별 발언은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위원장은 사퇴했다. 그러나 그것은 일본의 얘기였고, 적어도 내가 있던 조합의 이사회 내부에서는 비슷한 문제 의식이 공감대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공동육아라고 해서 공동체 밖과 다른 특별한 사람들이 있는 것은 아니다. 성 역할이나 성 감수성에 대한 이야기는 크게 작게 조합 내부에서도 꾸준히 있어왔던 문제였다. 여자 조합원에게 남자 조합원이 “에이, 예쁜 누님이 따라주셔야 더 맛있지요.”라던가, 장난스럽게 “너, 오빠한테 이럴래?”라고 말하는 경우, 엄마와 아빠의 일이 따로 정해져 있는 듯 무심코 하는 말과 행동들, 여자 아이들에게 외모에 대한 칭찬이나 표현을 하는 일 등이 있어왔다.

 

 

중요한 것은 환경과 분위기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분위기, 한번 더 조심하고 신경 써야 한다는 생각이 우리 안에 있는가? 아니면 없는가. 세상에 절대적으로 그럴 리 없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우리는 ‘그래도 되는’ 시대를 살아온 ‘옛’사람으로서 미래에서 온 아이들과 현재를 함께 살고 있지 않는가. 아이들은 내 주위의 어른들을 통해 세상을 본다. 어른이 곧 환경이다.

 

 

“반폭력 규정을 꼭 만들어야 해요. 이사회 내에서 언어적으로든 권력으로든 위력을 행사하는 개인이 있어서는 안 돼요.”

 

“고질적으로 있어 온 조합 내의 성차별, 고정적 성 역할에 대한 토론의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필요하다면 성평등 의식에 대한 교육도 받고, 이번 기회에 성평등 위원회나 성평등 규약을 함께 만들어가는 것도요.”

 

 

통통, 오름, 거북이와 많은 얘기를 나누며 공감했다. 나는 이사회에 이 의견을 안건으로 제출하고 이사장의 공식적인 사과를 요청했다. 그러나 이사회에서는 이 일을 ‘개인적인 감정 싸움’ 정도로 치부했다. 대부분의 이사진은 내가 갖는 문제 의식을 개개인의 ‘다름’ 정도로 여겼다. 또는 어느 정도 문제 의식을 갖는 데 공감하더라도 잘못된 것을 뒤집어 기어코 속살을 드러내 놓는 격렬한 파도만은 피하고 싶어 했다. 안건의 진행 사항을 물었을 때 ‘이사장님이 조금 더 지켜보자고 하셨다.’라는 말을 전해 들었다. 나는 실패를 예감했다. 여전히 내가 제안한 안건의 키는 이사장에게 쥐어져 있었던 것이다.

 

 

댐이 무너지려고 하는데

간신히 나오려는 물구멍을 억지로 틀어막고 있는 거예요. 그 안에서 그게 곪아 터지는지도 모르고 어떻게든 구멍만 막아보려고 한단 말이에요.

 

 

졸업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오름과 통통은 함께 남아 어찌해 볼 수 없음에 안타까워했다. 끝까지 싸워볼 수도 있었지만 거북이와 상의 끝에 그러지 않기로 했다. 실은 내가 그토록 사랑하던 것을 미워하게 될까 봐 겁이 났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외면하는 방식으로 그 마음을 지키기로 했다.

 

 

 

“바다 보러 갈까?”

 

점심을 먹고 한가로이 앉아 있는데 거북이가 말했다. 아이들은 아빠의 깜짝 제안에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소리를 질렀다.

 

바다에 앉아 잔잔한 수평선을 보고 있자니 그간의 심난했던 마음이 조금은 정리가 되었다. 모든 것이 끝났다는 홀가분함과 쓸쓸함이 마치 밀물과 썰물처럼 왔다 갔다 했다. 거북이와 내가 그동안 공동육아에 쏟아 부었던 열정과 노력들이 얼마나 순수하고 또 무용했는지를 떠올려 보았다. 그건 사랑하는 일과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다를 보고 돌아오는 길 통통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우리 7년 동안 잘 놀았다. 그렇지?”

“응. 정말 미련 없이 잘 놀았어. 졸업 축하해. 통통”

“퇴소 축하해, 두루미”

 

 


 

오늘은 둘째 아이의 첫 유치원 등원 날이다. 거북이와 함께 아이를 바래다주고 문 앞에 나오니 저 멀리서 양 팔을 벌리고 격정적으로 손을 흔드는 사람이 보인다. ‘내 뒤에 누가 있나?’ 뒤를 돌아보니…. 텅 빈 거리만 길게 뻗어있다. 이 아침 시간에 누가 저리 오두방정을 떨며 손을 흔들까 생각하며 한걸음 한걸음 옮기다 보니…. 교사 ‘봄이’였다. 봄이는 활짝 웃으며 뛰어와 나를 와락 안아주었다.

 

 

“오늘 00이 첫 등원하는 날이지요? 배웅해주고 싶어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한참을 으스러지게 꼭 안아주는데 말로 표현 못할 기분이 들었다. 마치 길가에 핀 하얀 벚꽃들이 가슴속에 한가득 한꺼번에 피어나는 것 같은…. 뜨거운 것 같기도 하고,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한 묘한 기분이었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정말로 고맙고…. 미안합니다. 두루미. 이젠 학부모 아녜요. 우린 친구예요.”

 

벚꽃보다 아름다운 내 친구 봄이가 눈앞에서 자꾸 웃다가 울다가 했다.

 

“사실은…. 아이들이 졸업을 하면 출산한 기분인데…. 그렇지 못하면 꼭 유산한 기분이에요.”

 

 

봄이가 뒤돌아 서서 눈물을 쏟았다. 손을 흔들고 각자의 길로 돌아서 걷는데 내 눈에서도 참았던 눈물이 툭툭 떨어졌다. 7년 간 하루도 빠짐없이 울렸던 어린이집 단톡방을 나왔다.

 

 

나를 둘러싸고 있던 작은 세상이 고요해졌다.

 

 

 


 

나는 공동육아를 그만두었다.

 

 

7년 간 두루미로 불리며, 내 집 다음으로 자주 드나들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던 곳. 어른이 되고 부모라는 이름으로 선택한 첫 번째 조합. 그곳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려보면 마치 사춘기 시절 일기장을 우연히 다시 펼쳐 볼 때의 기분이 되곤 한다.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순수하고 솔직한, 날 것 그대로의 감정들이 고스란히 그 시간 안에 담겨있다. 어리숙하고 낯 뜨겁지만 매 순간 용맹하고 진지했던 것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그 순간들이 아름답고 또 그리울 것 같다.

 

 

모든 건 끊임없이 변한다. 공동육아도 그렇다. 그러나 모든 것이 변해가도 끊임없이 얘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불편하고 어려운 일 일지라도 대화하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세상의 여러 가지 소리들이 예민이라는 말로 지워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결과적으로 공동육아에 실패했다. 그렇지만 무엇을 성공이라 할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저 명료하게 떠오르는 한 가지는, 세상에 그냥 스쳐갈 소리는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실패도…. 성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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