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의산(춘천), 2023.1.15.일

며칠 전부터 강원도에 많은 눈이 내린다는 예보가 있었다. 춘천 봉의산에 가기로 하고 미리 기차표를 예매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밤에는 비가 내린 듯하다. 기온이 내려가면서 가는 눈발이 날리고 있다. 집에서 걸러 원당역에 도착했다. 전철을 타고 종로3가에서 갈아타고 청량리역에 도착했다. 경춘선과 중앙선을 타려는 사람들이 기차를 기다리고 있다.

 

 

경춘선 기차가 출발한다. 눈발이 더 차창가를 지나쳐 간다. 도시의 아파트와 주택, 중랑천을 지나고 서울을 벗어나고, 진접, 진건, 금곡, 호평평내, 마석, 청평까지 쉬지 않고 달린다. 마을, 들판, 북한강 그리고 산을 덮은 설경이 아름답다. 한 시간 만에 춘천역 도착이다.

 

거리는 온통 눈으로 뒤덮여 있다. 눈이 계속 내린다. 인도를 따라 소양강까지 걷는다. 강 중간까지 걸어갈 수 있는 다리인 ‘스카이워크’는 눈을 핑계로 출입금지다. 그 바로 옆에 소양강 처녀 노래비와 처녀상이 있는데 너무 커서 “해 저문 소양강에 황혼이 지면~”으로 시작하는 애절한 노래와 잘 어울리지는 않는다.

 

하늘이 잔뜩 흐린 탓에 지척에 있는 봉의산도 보이지 않는다. 사거리를 지나자 번개시장이 나타난다. 국수집이 보이긴 하는데 하산한 뒤 점심을 먹으려고 지나친다. 시장을 지나 조금 걸으니 현대아파트가 나타나는데 등산로 입구다. 눈이 잔뜩 쌓여 있는데다 계속 내리고 있다. 아이젠을 착용한 뒤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오랜만에 설경을 만끽한다. 눈이 내리고 포근한 겨울날씨다. 아이들처럼 마음이 들뜬다. 동영상도 여러 개 찍는다. 땅과 하늘 모두 하얗다. 첫 번째 휴식장소에서 안내판을 보니 이 곳 현대아파트를 포함해 소양정, 석왕사, 극동아파트, 한림대(두 곳), 유봉여고 등 일곱 군데에서 정상으로 올라갈 수 있다.

 

아이젠을 착용했지만 눈이 뭉쳐져 계속 털어내야 했기에 빨리 걸을 수 없다. 하기야 풍경에 취해 사진 찍고 감상하고 눈사람도 만드느라 더디다. 등산객도 보이지 않고 너무나 조용하다. 오르는 도중 곳곳에 눈 무게를 못 이겨 부러진 소나무 가지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드디어 봉의산(鳳儀山, 301.5m) 정상이다. 춘천 분지 중심에 위치하며 봉황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북쪽의 오봉산(779m), 서쪽의 삼악산(654m), 동쪽의 대룡산(899.4m), 남쪽의 금병산(652.2,m)이 봉의산을 둘러싸고 있다.

 

 


춘천은 고대 맥국(貊國)의 도읍지로 추정되며 삼국시대 초기에는 고구려, 후기에는 신라영역권에 속했다. 봉의산 지역은 고려시대 거란과 몽골 침략, 조선시대 임진왜란, 해방 이후 한국전쟁 당시의 격전지였다. 지금은 조용한 호반의 도시이자 여행객들에겐 낭만의 도시이다.

정상에서 설경을 즐기며 마시는 한 잔의 커피 믹스 커피는 달콤하다. 그 어떤 카페도 이런 분위기를 만들 수 없다. 소나무는 활엽수라 눈의 무게 때문에 가지가 쳐져 있고 활엽수는 가지마다 눈송이를 아슬아슬하게 올려놓았다. 약한 바람이 지나쳐도 눈가루가 흩날린다. 엄마 손을 잡고 정상에 오른 아이는 사진을 찍고 눈사람을 만든다. 이 곳 동네 사람들도 한 둘씩 올라온다.

 

 


이제 하산이다. 한 참 걸어 내려오니 경찰서를 지나고 곧바로 도청 앞이다. 노동운동 업무로 몇 차례 왔던 곳이다. 늦은 오후라 점심 먹을 시간도 됐고 눅눅한 몸도 말릴 겸 뜨끈한 국수집을 찾아 걷는다. 그러나 대부분 고기집이거나 춘천 닭갈비집이다. 골목은 눈이 쌓여 질퍽인다.

 

다시 큰 길로 나오니 중앙시장 간판이 보인다. 휴무일이라 시장 안이 어둑하다. 혹시나 하고 조금 둘러보니 ‘오팔국수집’이 보인다. 오래된 문을 열고 들어서니 벽면에 이 지역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일제시대부터 중앙로를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됐고, 한국전쟁 직후 미군이 주둔하면서 점포들이 들어섰고, 1960년대 중앙시장을 시작으로 발전했으며 현재는 낭만시장으로 불린다고 한다.

 

 

잔치국수, 들깨칼국수에 막걸리 한잔 곁들이니 추위가 녹아들고 난로 열기에 적은 옷도 조금 마른다. 시장을 나와 다시 춘천역까지 걷는다. 평택으로 이전한 미군부대 자리가 광활하다. 오랜 시대를 거쳐도 외국군대의 주둔 역사는 계속된다. 눈발이 약해지면서 부지 뒤쪽으로 봉의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기차는 다시 춘천역을 출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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