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나누기] 프리즘처럼 집중하고 확대하는 운동

 

 

권미정(노동당 경기도당 중부지역위원회 당원)

 

 

며칠 전부터 서울의 좀 더 남쪽으로(서울 중심에서는 좀 더 멀어진) 단체 사무실이 이사를 하면서 출근 소요 시간이 조금 줄었다.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 이후 함께 펼친 투쟁과 사회적 관심을 잇고 확장해나가기 위해 단체를 만들기로 하고 2019년 7월부터 상임활동을 시작했다. 일하는 모든 사람이 아프지도 다치지도 죽지도 않는 평등한 일터를 쟁취하기 위해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을 만들고 그 새 사무실은 4번이 바뀌었다.

 

인생의 전환기에 꼭 하고 싶었던 외국 여행을 하고 돌아오자마자 시작한 활동이었다. 사단법인이 뭔지도 모르고 어떻게 만드는 지도 모른 채 시작했고, 단체는 돈도 없고 일할 공간도 없었다.

 

낡은 나의 노트북 하나 들고 문래동 철폐연대 사무실 회의용 테이블에 앉아 단체 만들기를 기획하고 추진하다, 공공운수노조에서 책상 두 개 자리를 내주어서 대림동 공공운수노조 4층 대협실 동지들 옆자리에서 많은 도움을 받으며 김용균재단은 출범을 할 수 있었다. 1년만 사용하겠다고 했던 책상 두 개의 자리는 약속한 시간보다 좀 더 사용한 후 전세로 사무공간을 마련했다. 흔치 않은 전세 사무실에서 3년을 지내고 얼마 전 가산디지털단지 전철역 근처로 이사를 했다.

 

 

그 사이 나는 ‘사단법인’ ‘재단법인’ ‘비영리민간단체’ ‘비영리임의단체’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고, 더하기 빼기의 수입지출서가 아닌 회계가 뭔지 알기 위해 이해도 못하는 회계 관련 서적들을 여러 권 뒤적였고, 엑셀공부도 하는 등 새로운 영역을 만나게 되었다.

 

새로운 영역의 내용이나 실무는 어렵지만 재밌기도 했다. 그런데 4년이 지나며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은 만나는 사람들과 나누는 이야기인 거 같다. 노조간부로 활동을 하고 지역 활동가였을 때도 교육을 하고, 간담회를 하고, 집회를 참가하고 사업을 기획했고 지금도 그런 활동들은 하고 있다. 다만 교육으로 만나는 사람들이 다르고, 간담회를 하는 내용이 다르고 주로 이야기를 나누는 이들이 과거와 달라졌다. 삶, 희망, 계급, 전망, 투쟁을 여전히 이야기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죽음, 이유, 책임, 처벌, 권리를 더 많이 듣고 말하고 있다.

 


 

중심에서 더 넓게

 

김용균재단에서 활동을 하면서 활동을 어떻게 하면 운동을 더 넓힐까를 많이 생각한다. 우리 운동의 경계를 더 바깥으로, 그리하여 ‘우리’를 더 키울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김용균재단의 힘이랄까 의미랄까 그것 중 하나가 수많은 노동자-시민이 힘 보탰던 김용균투쟁의 기운을 유지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의 목숨이 자본의 이윤 때문에 스러져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경제개발논리를 깨어가는 과정이 그 시작이다. 계속되는 죽음을 통해 확인하는 것처럼 산업재해는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라 막을 수 있는 것임을 더 많은 노동자-시민과 공유하기 위해 어떤 방식의 사업을 해야 할까를 고민하게 된다.

 

우리의 중심, 노동자계급성을 정확하게 담지하면서 우리를 넓혀가는 사업. 그런 사업을 통해 정세 대응도 하고 운동도 확장하는 꿈을 품고 있다. 생명안전사회와 일터가 이뤄져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그 당연한 것이 현실이 되기 위해 보장되어야 할 권리와 체제를 사회적으로 확인하고 쟁취해나가는 투쟁이 김용균투쟁을 이어가는 의미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 더 많은 이들에게 이야기해야 하고, 다수가 공감하고 발을 옮겨주어야 한다.

 

그래서 ‘산재사고사망 유가족을 위한 안내서’도 만들어보고 안내서를 많이 보게 하고자 하는 맘으로 유튜브도 찍었다. 산재는 특별한 사람이 당하는 불행한 일이 아니라는 전제였다. 지역 시민모임, 대안학교 학생들, 대학생 동아리, 종교단체와 산재가 사회적 타살인 이유에 대해 둘러앉아 생각을 나누기도 했다.

 

 


작년에는 나를 포함하여 세 명의 저자가 쓴 ‘김용균, 김용균들’이라는 대중서도 출간했다. 북토크를 통해 산재와 피해자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며,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지 않았지만 다수가 불안정노동자일 ‘시민’들과 만나기도 했다. 활자로 꾹꾹 눌러담은 고민과 마음이 어떻게 전달되었는지 궁금하여 읽은 이들이 남긴 SNS의 후기들을 찾아보면 미처 쓰지 못한 생각이나 아주 조그마하게 들어간 말들을 찾아내서 읽어주는 경우도 있다. 읽기가 힘들었다는 말도 참 많이 들었는데, 그게 글쓴이가 어렵게 썼다는 뜻은 아닌듯하여 다행이라고 생각 중이다. 

 

1년에 몇 차례지만 중고등학교, 대학교에 2시간짜리 수업을 가기도 한다. 그 시간 안에 노동자, 노동안전, 권리를 전달하려 머리를 굴리고 PPT를 만들고 수정하고 음악을 넣었다가 동영상을 뒤지고를 반복한다. 노동인권교육을 위해 가는 시간인데 현실만 전달하면 너무 우울하고, 법에 담긴 권리만 이야기하는 건 너무 한계적이고, 대응만 강조하면 뜬구름 잡는 옳은 이야기로만 들리는 그 시간이 언제나 고민이다. 그래도 그런 기회를 만들어낸 게 넘 다행이고, 내게도 주어지는 게 너무 감사한 일이다.

그렇게 넓혀가는 운동에서 유족들을 만난다. ‘죽음’ ‘주검’이 주는 무거움과 슬픔, 공감에서 시작하여 진실찾기를 권하기도 하고 책임과 재발방지를 위해 싸우자고 제안하기도 하지만 언제나 쉽지 않다. 대가없이 도와주고 지원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 현실에서 유족들의 불안감과 의심은 아주 현실적이다. 그래도 힘이 닿는 만큼 뭐라도 해보려 노력하는 유족들과는 죽음을 들여다보고 같이 싸우기도 한다. 죽음을 무기로, 죽음을 딛고 싸우는 것은 그것에 머물러 감성으로만 호소하면 오래가지 못한다는 걸 안다. 그래서 가끔 가라앉는 마음은 늦은 밤의 바람, 캔 맥주 하나로 달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삶이 달라지는 피해자들을 만나게 된다.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를 제기하고 자본에 희생되는 노동자 시민의 목숨과 삶이 사라지는 지금을 바꾸기 위해 싸우는 이들이다. 봄을 봄이라 느끼지 못하고, 웃음을 잃어가기도 하지만 투쟁 과정에서 다시 삶을 찾아가는 이들과 그 곁에서 함께 싸우는 활동가들이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을 구성하고 있다.

 

 


 

우리 운동은 이렇게 넓혀지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래도 아쉬운 건 의식적인 노력과 과정이 없다는 것이다. 무엇에 대한? 운동의 주체를 양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단위보다는 활동력 있는 활동가들을 데리고 가려는 단위들이 더 많은 상황이다. 주체를 양성하기 위한 체계적 과정이 무너진 것인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있을 뿐인 건지는 모르겠다. 노동안전보건운동영역에서도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사람을 키워낼 수 있는 곳은 없다. 한 곳에서 못한다면 공동의 과제로 답답함을 느끼는 단위들이 모여서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 생각을 하곤한다.

 

혼자서는 못하는 세상을 바꾸는 운동. 하는 방식은 달라도 한 곳으로 잘 모이면 좋겠다.

 

프리즘같은 운동. 모아졌다가 다시 여러 방면으로 확산하는 운동. 그 모든 힘이 모여 자본주의 체제를 없앨 수 있다는 확신이 보이면 좋겠다. 나의 운동도 프리즘을 거쳐 다른 영역으로 확대되어 가고 있고,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지난한 과정에 작은 힘이 되고 싶다. 되겠지? 되어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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