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나도원의 음악과 사회 13년 전 거기엔 우리 같이 있었다

뉴타운컬쳐파티 51+

 

 

글 나도원(노동당 공동대표, 경기도당 공동위원장)

 

 

어디로 갔을까? 어느 초여름 밤, 그땐 젊었던 식구들이 산보 나온 배나무 많은 동네엔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고, 그 아래 평상이 있고, 거기 앉은 어르신들이 지나는 사람들에게 괜한 참견하던 곳이 이었다. 13년 지나 집안 행사 때문에 잠시 들렀더니 신도시가 된 그 동네 느티나무는, 없다. 어디로 갔을까, 베어지고 버려졌을까, 다행히 어딘가로 옮겨졌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투덜거리고 있었다.

 

 

201051일에 열린 어파티

 

13년 전이다. 눈 없는 겨울 행색처럼 황량한 공터, 다시 말하면 재개발부지 한가운데에 섬처럼 홀로 떠 있는 작은 건물이 음악소리로 들썩였고, 사람들의 물결이 밀려들었다. 2010년 5월 1일 노동절, 대가를 바라지 않고 온종일 노래하고 연주한 60여 팀의 밴드와 싱어송라이터, 그리고 1,000여 명의 음악애호가들이 칼국수집 ‘두리반’이 처한 부당함에 공감을 표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행인들의 차림새를 관찰하거나 시끄럽게 떠들며 2차로 이동하는 인파 사이에 긴 줄이 만들어지는 곳이 홍대 앞이다. 클럽 입구에서 요즘 주목받는 음악인을 볼 수 있는 무대까지 고작 몇 걸음 떨어져 있는 동네가 바로 옆에서 벌어진 재개발 사건에 공감을 표했다. 어떤 이들이 이런 페스티벌을 찾는 이유는 ‘코코어’가 <주기도문>을 연주하는지 여부와 극우 코스프레로 몰상식을 역풍자하며 조소하는 ‘밤섬해적단’의 블랙코미디 하드코어라든가, ‘휘루의 <아침에 너를>을 듣고 싶었다거나 하는 관심 때문이 아니라, 들썩이는 분위기를 마냥 즐기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들도 두리반에서 막걸리를 삼으로써 후원했다. 장소와 사건이 만났고, 참여와 놀이의 장인 페스티벌이 색다른 현실을 만들어냈다.

 

‘전국 자립 음악가 대회 51+’ 혹은 ‘뉴타운 컬처 파티 51+’로 명명된 이 페스티벌은 예술가들과 시민들이 함께 만든 축제이자 시위였다. 합의가 이루어져 헐릴 때까지 그 건물은 여러 장르 예술인들의 소굴이었고, 몇몇 음악인의 모임인 ‘자립음악생산조합’의 산실이었다. 외국에선 국가와 기업이 지원하여 만들어주기도 하는 예술촌(아트 빌리지)이 국가와 기업에 등 떠밀린 곳에 생겨났다.

 

 

*1. 유채림 작가의 책, 『매력만점 철거농성장』은 공권력과 자본 그리고 이 사회의 이기심이 합작한 재개발 광풍 때문에 마치 폐허 한가운데의 섬처럼 홀로 남아 531일 동안 싸운 ‘두리반’의 투쟁사이다. ‘두리반’의 업주이자 작가인 유채림 본인이 기록한 이 책은 하나둘씩 모여든 젊은 예술가들이 다양한 움직임과 발칙한 사건들로 문화농성의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간 문화사이기도 하다.

*2 “여러분 인디밴드 좋아하시죠? 저는 인디파티(indie party)의 대표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한 청바지 차림의 정치인도 재개발 문제의 절박함과 인식 확산의 필요성을 호소했다. “여러분 락 좋아하시죠? 저도 길바닥에서 락(rock)을 들고 투쟁했습니다.” 그렇게 말했던 그는 2018년에 스스로 몸을 아스팔트 바닥에 던져 죽었다.

 

 


 

 

새로운 파티를 위하여

 

시장주의 강화는 다양한 예술의 생존 기반을 무력화할 뿐만 아니라 탈정치화를 강요한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예술의 정치를 강조했다면 시장주의 국가에선 정치탈색을 요구한다. 이런 주장을 한국에서 하면 반(反)시장주의자처럼 보인다. 하지만 족벌경영과 지역경제 분할이 당연시되어 사실상 봉건자본주의사회에 가까운 한국이야말로 반(半)시장국가 아닌가. 자본주의는 불평등을 먹고 산다. 남보다 잘살 수 있다는, 그렇게 불평등해질 수 있다는 것이 동기부여가 된다. 인민은 화폐의 빌딩이 꼴 보기 싫다고 그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이러한 문제를 개인 차원으로 제한함으로써 구조를 건드리는 것을 경계하는 경향이 보수의 특징이다. 그러나 도덕적인 인간들이 모여 있어도 사회는 비도덕적일 수 있다. 합리성이 모여 비합리성이 되고, 반대로 비합리성이 모여 합리성을 만들기도 한다. 어쩌면 세상이 합리적이라는 생각이야말로 비합리적이다. 지금 한국과 자본주의는 ‘합리적 야만사회’를 일상으로 만들었다.

 

*3. 그런데 잠시나마 신촌 두리반에 모인 음악인들과 음악애호가들과 운동가들, 그리고 온갖-소중한 사람들은 그날 동질감 혹은 동지애를 느꼈다. 그때 보았던 사람들 중 상당수를 지금도 보고 있다. 그중 여럿은 정용택 감독의 다큐멘터리 <뉴타운컬쳐파티>와 <51+>을 통하여 볼 수 있다.

 

 

대안의 제시는 처음엔 늘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그런데 도대체 어떤 것이 현실적인가. 중세에는 농노의 존재가 현실이었다. 산업혁명기의 영국에선 아동노동이 현실적이었다. 한국에선 도시 복판에서 경찰이 시민을 구타하고, 한겨울에 철거민들이 옥상에서 죽는 것이 현실이다. 어지간해선 누구도 부자가 되기 힘들다는 것도 현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당연해진 것들을 위해 노력하고 동조한 이들이 있었다. 그렇게 미국에서 감옥이 개선되었고, 신분에 따라 입는 옷조차 달랐던 때와 달리 패션이 민주화되는 과정도 있었다. 없었던 걸 받아들이기보다 있었던 걸 버리기가 힘들다. 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는 수고이다.

 

 


 

지금은

 

그날까지 처절하게 투쟁한 안종녀와 유채림의 ‘두리반’은 홍대 앞으로 이사하여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장사를 이어가고 있다. 대가 없이 모여든 인디음악인들은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를 다시 썼고, 거대자본이 아무렇지 않게 세입자를 침탈하는 관행은 줄어들었다. 서울 신촌-홍대 지역은 예술과 사회가 공존하는, 진정한 예술지구로 첫발을 떼었다 … 라고 마무리하고 싶다.

 

그러나 다시. 그날 이후에도 오랫동안 처절하게 투쟁한 안종녀와 유채림의 ‘두리반’은 홍대 앞으로 이사하여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장사를, 열심히, 이어가고 있다. 대가 없이 모여든 인디음악인들 중 소수만이 여전히 활동하고 있고, 거대자본이 아무렇지 않게 세입자를 침탈하는 관행은 전혀 줄지 않았다. 서울 신촌-홍대 지역은 극단적인 상업화의 표본이 되었다. 그 거리는 주말마다 인파로 채워진다.

 

바람이 불지 않는 날에도 달리는 차의 창문에는 바람이 인다. 잔잔한 바다를 가르는 배에는 파도가 인다. 가능성은 상대적이다. 자신이 움직일 때 비로소 가능성이 태어난다. 그리고, 제133주년 세계노동절인 2023년 5월 1일, 윤석열 정권의 노조 탄압 과정에서 억지 구속영장이 청구된 건설노조의 한 조합원이 분신하고 이튿날 세상을 떠났다. 이후 벌어질 상황은 훗날 다시 기록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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