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나도원의 음악과 사회 ⓼ 정태춘과 대한민국

 

 

글 : 나도원(노동당 공동대표, 경기도당 공동위원장

 

 

“ … 그리고 마침내 1995년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을 거쳐 1996년에 검열의 시대는 끝이 난다. 거기에 정태춘과 박은옥이 있었다.”

[칼럼] 나도원의 음악과 사회 ⓵ 무엇이 노래를 울타리에 가두었나 (http://2-um.kr/archives/7789)

 

 


 

탄식 “아, 대한민국…”

 

 

1990년대는 많은 것들이 무너져간 시대이다. 산업화 급속 성장의 폐해가 하드웨어 붕괴로 가시화되었다. 음악인들은 이런 이야기를 노래로 하고 싶어도 사전심의제도 탓에 부를 수 없었다. 타인의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을 위험한 자로 간주한 검열관들은 예술을 이해할 능력도 없었다. 스스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고백하는 대신, 감히 무엇은 된다고 가르쳤고 무엇은 안 된다고 윽박질렀다. 그때, <아, 대한민국…>은 꿈꿀 수 있다면 오로지 악몽뿐인 현실을 폭로했다.

 

1970년대 후반부터 《시인의 마을》을 시작으로 무려 7장이나 앨범을 발표한 중견-대중음악-가수가 어느 날 ‘비합법’ 음반, 다시 말하여 불법음반을, 그것도 카세트테이프로 유통시키기로 한다. 당시로선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도 있는 행위였다. <떠나가는 배>와 <북한강에서> 등의 여러 히트송을 가지고 있던 이 포크 싱어송라이터는 다른-많은 음악인들과 마찬가지로 공연윤리위원회의 사전심의제도, 즉 검열 통제의 폐해를 몸소 체험해왔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시인의 마을>의 노랫말을 수정 당했고, <인사동> 같은 노래는 아예 발표조차 하지 못했으며, 《아, 대한민국…》 역시 온전한 모습으로 세상에 내놓을 수 없었다. 그러자 정태춘은 음악인의 자존감을 지키고, 음반에 참여한 진보성향 음악인들과 작업하며 동시대의 사회상을 비춰내기 위하여 기성의 법을 거부하기로 작심한다. 그들이 심의를 거부하고 갈색 테이프 뭉치(카세트테이프)에 노래를 담은 음반인 《아, 대한민국…》(1990)은 정태춘·박은옥의 얼굴이 앞뒤를 장식한 《92년 장마, 종로에서》와 함께 역사적인 작품이 된다.

 

1990년과 1992년이 어떤 시대였는지는 다음 이야기로 하고, 부당하고 부끄러운 음반사전심의제가 한국에서 사라지는 데에 (서태지가 아니라) 정태춘이 실질적이고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1997년에야 비로소 두 장의 음반과 노래들이 정식으로 발매됨으로써 개선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놓치지 말아야 할 지점은 이러한 사회적 의미뿐만 아니라 음악성 또한 충분히 존중받아 마땅했기에 우리가 다시 이 노래를 불러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노래 <아, 대한민국…>

 

 

음반 《아, 대한민국…》과 노래 <아, 대한민국…>은 짧은 시간 동안 압축적인 문제해결을 시도한 그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압축된 혼란과 고통을 물려받은 이 사회의 병과 고통과 비극을 햇볕 아래에 고스란히 드러냈다. 또한 서구의 모던 포크와 달리 낭만성 위주로 치우쳐 있던 한국의 포크라는 저울에 비판정신이란 글자가 새겨진 추를 올려놓았다.

 

이쯤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 하나 있다. 같은 제목을 가진 두 개의 노래가 잘 알려져 있는데, 둘의 관계는 상징적이다. 1983년에 나온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은 건전가요 모음집에 장재현과 듀엣으로 불렸다가 차후에 정수라의 솔로음반에 삽입되어 크게 성공했다. 방송은 연일 이 노래를 틀어댔고 각급 학교들에선 이 노래를 가르쳤다. 당시 대부분의 음반에 관행처럼 수록해야 했던 건전가요가 한 가수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그러나 꼭 좋은 방향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사회정화위원회의 의뢰로 <아! 대한민국>의 가사를 쓴 박건호는, <잊혀진 계절>(이용)과 <단발머리>와 <모나리자>(조용필) 그리고 <빙글빙글>(나미)과 <그녀에게 전해주오>(소방차) 등 무수한 히트송을 만든 당대의 작사가였지만, 본의 아니게 정권 홍보로 이용된 노래를 만든 장본인이라는 불명예에 대하여 해명해야만 했다.

 

반면 정태춘의 <아, 대한민국…>은 완전한 반대편에 섰다. 그리고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과 정태춘의 <아, 대한민국…>은 글자 하나와 부호 하나가 얼마나 큰 차이를 지닐 수 있는지도 보여준다. 같은 ‘아’가 어디에선 찬탄의 감탄사로 쓰이고 어디에선 탄식의 표현이 되었고, 말줄임표(…) 하나에 깊은 침묵처럼 많은 의미를 담아낼 수 있다는 사실까지 알려줬다.

 

 

 

음악인 정태춘

 

정태춘을 운둔자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지만 창작활동을 계속해왔다. 정태춘·박은옥이 아주 오랜만에 발표한 노래집인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2012) 또한 조금도 과거형으로 들리지 않았다. 정교하고 현란한 연주와 단번에 귓바퀴를 타고 넘어 들어가는 자극이 없어 어떤 이들을 실망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훨씬 중요한 것이 있다. 그들은 엄격했다. 그들의 음악은 지난 시대의 표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음악기법에 있어서도 지금의 시대를 관통한다.

 

 

산문에 가까운 노랫말과 정태춘 특유의 창법은 그 자체로 대단히 음악적인 양식이랄 수 있다. 비어있는 공간이라는 배경이 주제를 강화하고 현실을 음악으로 끌어들이는 기법은 여전했다. 뜨거운 햇살 아래 젊음이 출렁이는 바다로 떠나보는 여행이 아니라 깊게 흙을 보듬은 여정을 노래한다.

 

 


 

다시, 33년ᆢ

 

‘아, 대한민국…’은 음악이 시대와 어떻게 만나는지 보여준다. 음악인이 동시대와 어떻게 싸우고 음악의 자유가 왜 중요한지 말해준다. 그리고 그 자체로 보편성과 생명력을 갖는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본시 어떤 앎은 불편하고 불쾌를 야기한다. 그런데 불편한 진실을 감동으로 승화시켰다.

 

생각을 더하면, 정태춘이 <아, 대한민국…>을 세상에 내놓은 지 긴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이 노래는 한국 대중음악사의 연표에서 중요한 지점에 놓여졌다. 하지만 이 노래는 과거만을 노래하고 있을까. 다시 한번, 이 노래가 불려지고 33년이 흘렀음에도…

 

 

<아, 대한민국…>

작사·곡: 정태춘, 노래: 정태춘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사랑과 순결이 넘쳐흐르는 이 땅

새악시 하나 얻지 못해 농약을 마시는

참담한 농촌의 총각들은 말고

특급호텔 로비에 득시글거리는

매춘관광의 호사한 창녀들과 함께

우린 모두 행복하게 살고 있지 않나

우린 모두 행복하게 살고 있지 않나

아, 우리의 땅. 아, 우리의 나라.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기름진 음식과 술이 넘치는 이 땅

최저임금도 받지 못해 싸우다가 쫓겨난

힘없는 공순이들은 말고

하룻밤 향락의 화대로 일천만원씩이나 뿌려대는

저 재벌의 아들과 함께

우린 모두 풍요롭게 살고 있지 않나

우린 모두 만족하게 살고 있지 않나

아, 대한민국. 아, 우리의 공화국.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저들의 염려와 살뜰한 보살핌 아래

벌건 대낮에도 강도들에게

잔인하게 유린당하는 여자들은 말고

닭장차에 방패와 쇠몽둥이를 싣고 신출귀몰하는

우리의 백골단과 함께

우린 모두 안전하게 살고 있지 않나

우린 모두 평화롭게 살고 있지 않나

아, 우리의 땅. 아, 우리의 나라.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양심과 정의가 넘쳐흐르는 이 땅

식민독재와 맞서 싸우다

감옥에 갔거나 어디론가 사라져간 사람들은 말고

하루아침에 위대한 배신의 칼을 휘두르는

저 민주인사와 함께

우린 너무 착하게 살고 있지 않나

우린 바보같이 살고 있지 않나

아, 대한민국. 아, 우리의 공화국.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거짓 민주자유의 구호가 넘쳐흐르는 이 땅

고단한 민중의 역사

허리 잘려 찢겨진 상처로 아직도 우는데

군림하는 자들의 배부른 노래와 피의 채찍 아래

마른 무릎을 꺾고

우린 너무도 질기게 참고 살아왔지

우린 너무 오래 참고 살아왔어

아, 대한민국, 아, 저들의 공화국.

아, 대한민국. 아,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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