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을회의와 겹친 메주 쑤기, 부디 잘될 수 있기를 비나이다, 비나이다..>

메주를 쑤는 날입니다. 마을회의를 하는 날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날씨는 영하 십도 안팎을 찍고 있습니다. 이른아침부터 불린 콩 큰 솥에 옮기고, 불 지핀 옆지기는 바쁘게 마을회관으로 내려갔습니다. 콩 나르고 이거저거 챙기자니 땀이 다 나네요. 헉헉.

큰솥 지피는 불 앞을 혼자 지키고 있자니 아늑하니 좋기는 한데 조금 겁도 납니다. 끓어넘치기 전에 옆지기가 와야 하는데, 그때부턴 나 혼자 감당을 못하는데.. (눌지 않게 저어야 하는데 콩이 너무 많아서 제 힘으론 도저히…불 조절도 잘 못하고ㅜㅜ) 옆지기가 오면, 바로 교대! 전 또 냉큼 마을회관으로 가야 합니다. 오늘 일 년을 마무리하는 회의인지라 분명 점심을 함께 먹을 텐데 음식 준비 같이 못하는 대신 설거지 일손이라도 보태야 하니까요.

메주 쑤는 날이 좀 늦어져서 어쩔 수 없이 마을회의랑 겹쳤지만 (메주 쑤는 날을 먼저 잡았건만, 마을회의 날은 그 뒤에 정해지는 바람에.) 좌충우돌 산골부부, 오늘 하루 잘 해낼 수 있겠죠?

슬슬 콩이 끓는 소리가 들립니다. 솥뚜껑 사이로 조금씩 콩물도 흐르니 수건으로 솥뚜껑 닦기부터 시작해야겠어요. 올 한 해 마지막 산골살림, 메주 쑤기 부디 잘되기를 비나이다, 비나이다…


<“메주도 다 쑤고, 착해~”(?) ^^;; 메주처럼, 청국장처럼 숙성하고 싶은 밤>

마을회의랑 겹친 2018년 메주 쑤기. 홀로 메주 쑤는 불 앞을 지키다가 아침부터 회의에 갔던 옆지기가 돌아오자마자 머리만 빗고 냅다 마을회관으로 달렸지. 차려 놓은 밥상에 얼른 수저 얹어 허겁지겁 밥을 밀어 넣곤, 먼저 몸 일으킨 귀촌 선배 언니 뒤를 좇아 같이 열심히(나름 즐겁게) 설거지하기.

설거지 마치고 이제쯤 자리를 떠도 되겠지 하던 순간 한 아줌니가 막걸리 한잔하라네. 마음은 가야 쓰겄지만, 마시자꾸나. 이렇게 권할 때는 그래야 도리지. 근데 막걸리 말고 시원한 맥주가 먹고 싶네. 용감하게 한마디. “저, 맥주 있어요? 연기 잔뜩 마셔 그런지 속이 답답해서 맥주가 먹고 싶어요.”

다른 아줌니가 냉큼 일어나시더니 맥주 한 병 들고 오시고. 따라 주는 맥주를 마시며 잠시나마 두런두런.

“메주 쑨다며?”

“네, 저희가 일이 좀 많아서 늦었어요.”

“착해, 메주도 다 쑤고.”

“어…. 농사도 잘 못 짓는데

김장이랑 메주라도 해야죠.”

메주랑 착한 게 무신 상관이 있다고, 아주 그냥 쑥스러버 죽겠드만. 하여튼 우리 집 메주 쑤는 거 온 동네 다 소문나 부렀네.

“하는 일은 잘돼?”

“네? 네…. 그냥 일 생기면 열심히 해요.”

“그래, 먹고살아야지. 심심하면 마을회관에 와.

냉동실에 있는 가래떡도 구워 먹고, 쉬었다 가.”

“네, 그럴게요.”

나와 있는 설거지도 다 했고, 맥주 한 병 오롯이 싹 마셨으니 이젠 자리를 떠도 되는 시간.

(안타깝게도 마을 엄니들이 술 잘 안 드심.ㅜㅜ 대신 술 따라 주는 건 엄청들 좋아하심.^^)

소주를 상자 채 놓고 잡수고 있는 마을 아저씨들 모인 자리에 가서 인사드리니 한 아저씨가 싱글 웃으며 한마디 건넨다.

“오늘 메주 쑨다메요? 그럼 그냥 오면 안 되지.”

“네? 네?”

“콩을 가져와야지. 그 콩이 얼마나 맛있는데.”

그제야 감 잡은 산골새댁,

“아, 그거요! 그게 아직 설익어서 못 가져왔죠.

집에 가실 때 들르세요. 그때쯤은 익었을 거예요~”

두 손을 둥그렇게 모아 입에 대며 콩 먹는 시늉을 하는 아저씨 모습이 재미나서 마을회관 뒤돌아 나서는 마음이 괜스레 흐뭇흐뭇.

‘마을회관 오길 잘했어.’

아침부터 추운 데서 메주 쑤자니 몸이 은근 힘들어 마을회관 가기 싫었는데, 역시 움직인 보람이 있구나.

다시 집에 돌아오니 낮술 때문인지 퍽 지친다. 나머지 메주 쑤기는 옆지기한테 넘기기. 일주일 넘게 걸리는 김장에 견주면 메주는 뭐, 일도 아니라니깐.^^

여섯 시간 좀 넘게 메주를 쑤고서 식히는 동안 메주 빚기 함께할 산골손님들을 맞이한다. 고장은 달라도 비슷한 산골에 사는 사람들이지만, 메주 체험도 하고, 우리끼리 송년회도 할 겸 한 시간 조금 더 걸리는 먼 길 찾아오셨음.

얼추 식은 메주콩으로 청국장부터 만든다. 절구로 쾅쾅 찧어서 곱게 빻은 다음 볏짚 꾹꾹 박으면 끝!

절구질도 볏짚 만들기도 모두 아이들 몫. 정말 재밌어 하고 무척 잘하기까지 해서 나는 사진 찍으며 신나게 구경만.

그다음 이어지는 메주 빚기. 콩 쑨 걸 커다란 비닐 여러 겹 안에 넣고 몸으로 발로 밟는다. 이건 양이 많아서 집에 있는 작은 절구로 빻기는 참말로 어렵기 때문에.

이것도 어른들이 끼어들 틈이 없네. 두 아이가 비닐 사이로 느껴지는 물렁물렁한 메주콩 느낌이 정말 좋다면서 콩 담긴 비닐에서 떨어질 생각을 않는 바람에.

거기서 끝이 아니지. 삼촌이 하는 것 보면서 어찌나 야무지게 메주를 빚는지. 나는 하나도 만들어 보질 못했네 그랴.

다 빚은 메주를 안방 뜨신 자리에 모신다. 방 안을 휘감는 구수한 내음을 맡으며 슬금슬금 떠오르는 어느 농부님 생각.

 

콩 팔 수 있느냐는 연락을 넣으니 콩을 골라야 한다기에 한참 걸릴 줄 알았지. 글쎄, 이틀 만에 20킬로 되는 콩 자루를 직접 들고 오신, 참 고집스러운 유기농 농부님. 정월에 장 가르기 하려면 이미 좀 늦은 듯해서 바삐 손 놀렸다는 이야기에 코끝이 찡.

아쉽게도 메주 쑤는 일정이 좀 늦어졌지만 오로지 건강한 농사를 짓겠다는 올곧은 마음 하나로 길러낸 콩이니, 분명 맛있는 메주가 될 거야. 거기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아이들의 손과 마음까지 보탰으니 더욱 그럴 테지!

한 해 산골살림을 마무리하는 메주. 고마운 농부님의 귀한 콩과 사랑스러운 아이들 손까지 더해서 너끈하게 마쳤다. 농부님과 이 어린이들이야말로 착하다는 소리 들어 마땅! ^^

자연과 함께 이렇게 한 철 또 한 철 나고 있으니 나도 철이 좀 나야 하는데. 자꾸만 못된 심보가 마음에서 고개 내미는 걸 차마 누르지 못할 때가 많다. 전에는 괜찮았던 일도 왜 그런지 마음에 안 들고 화가 치밀 때도 생기고. 그럴 때면 철이 들기는커녕 그나마 들었던 철도 가는 철 따라 사라져버리는 듯해서 좀 속상한 마음이 울컥.

산골에 둥지를 틀고 어느덧 여섯 번째 메주를 쑤었는데 그 여섯 번만큼에 들어맞게 메주처럼 청국장처럼 나도 조금씩이나마 숙성하고는 있는 걸까.

안방 가득 늘어선,어느 것 하나 똑같지 않게 울퉁불퉁 (내 눈엔) 잘생긴 메주를 바라보며 나에게 물어보는 밤. 철없는 내가 스스로 답 찾을 길은 없고 그저 메주에 코를 킁킁대 보는데 요 냄새만큼은 언제 맡아도 참말 좋구나, 좋아!

 

일 년 동안 그리웠다, 메주야.

그리고 메주 냄새야~

그래, 올해는 안 들었다 쳐도

내년에는 어떡하든 쫌이라도 철들지 않겠어?

오늘만이라도 메주 쑤기 잘 마친 나한테

잘했다고 손뼉쯤 쳐주자꾸나.

*^^*


<청국장을 열며, 내내 쓰린 마음이.. >

청국장을 열었다. 메주콩 푹푹 쑤어 콕콕 찧은 다음, 볏짚 꾹꾹 박아 이불 꽁꽁 싸맨 지 보름 만에. 보통 청국장은 삼사일 띄우면 된단다. 여기저기 나오는 정보들에 따르면 그렇다.

산골살림 꾸리면서 모르는 게 있을 땐 웬만하면 다른 이들이 먼저 간 길을 따르고자 애쓰는데, 청국장만은 좀 달랐다. 청국장다운 구릿한 내음과 끈적이는 실끈이 보이기 전에는 여기저기서 알려주는 길잡이 글들을 어쩔 수 없이 외면했다. 뭔가 많이 다르니까, 띄우는 환경도 콩도 또 다른 많은 것들도.

우리 집은 궁둥이가 뜨거워 데일 듯한 아궁이 방도 아니고, 도시에서 많이들 하듯이 전기밥솥에서 만드는 것도 아니니, 청국장만큼은 오로지 내 코와 눈을 믿을밖에 다른 길을 잘 찾기가 어려웠다. 어쩌다 한 번씩 청국장 보자기를 열면, 겉모습은 얼추 된 듯 보여도 나무젓가락 꾹 찔러 그 속을 들여다보면내 마음엔 ‘아니올시다’였다.

그렇게 일주일, 열흘, 그리고 보름 가까이 흐른 오늘. 굳세게 마음먹고 청국장 보자기를 열었다.

구수하게 구릿한 내음은 풍부한데 끊일 듯 이어지는 실끈이 약하다. 군데군데 살짝살짝 하얀 곰팡이도 보인다. 잠시(가 아니라 한참을) 고민…

어느덧 여섯 번째 만드는 청국장. 지난날들을 돌이키고 또 돌이켜보건만 아무리 생각을 더듬어 보아도 보름 넘게 띄운 적은 없었다. 더 놔둔다고 해서 나아질 것 같지가 않다. 되려, 청국장 다 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이 앞섰다.

청국장 띄우기를 마무리하기로 마음먹고 볏짚을 하나하나 걷어낸다. 아, 뭔가 아쉽다, 아쉽다…

콩과 볏짚에 따스한 기운까지 더해져 만들어 내는 청국장. 뭔가, 더 있어야만 했던 걸까? 어쩌면 그 청국장을 만들고 또 먹을 어떤 사람의 정성, 그리고 마음.

보통 때는 좀 시원하게(?) 지내던 걸 청국장 핑계 삼아 기름보일러, 화목보일러 번갈아 따뜻하게 때면서 내 할 도리를 다했다고 여겼는데. 아무래도 그게 다가 아닌 듯하다.

아, 실은 메주 띄우기에서도 벌서 탈이 났더랬다. 내 딴에는 얼추 메주가 말랐다고 여겨 볏짚 사이사이 메주를 담고 이불 고이 싸매서 청국장 옆에 고이 모셨건만 사나흘 넘게 들여다보지 않은 사이에 그만, 피지 말아야 할 곰팡이 꽃들까지 여기저기 피어난 모습을 만나야만 했다.

급히 메주를 그물망에 담아 방 안에서 다시 말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햇살이 좀이라도 따스할 땐(때마침 한낮에도 영하 5도를 넘나드는 한파가 몰아치기까지!) 마당에 내놓고, 해가 들어가면 다시 방에 들여놓고.

6년 차를 맞는 산골 메주 인생에 쓰디쓴 아픔을 맞보는 시간을 겪고 있던 중, 믿었던 청국장마저 내 맘에 쏙 들지를 않으니 그만, 너무 슬퍼져 버렸다.

2013년 귀촌한 첫 해, 정말 정말 아무것도 모른 채 된장 청국장을 만들었다. 실패해서 다 버려도 좋다는 마음으로 만든 그것들이 실은, 지난 5년 동안 만든 된장과 청국장 가운데 가장 맛있었다.

그때는 메주에 이어진 이야기들을 정말 많이 찾아보았다. 산골살이 초짜가 메주처럼 엄청난 일을 한다는 게 너무 겁이 나서, 떨리고 두렵기만 해서 참고할 수 있는 온갖 이야기들을 마구 마구 섭렵하곤 했다. 그랬던 내가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그냥 당연스레 하던 대로, 조금은 무심하게(?) 메주를 쑤고 청국장을 띄워 왔다. 아마도 이번이 그 무심함의 최고조였을지도 모르겠다.

‘초심, 첫 마음.’

자연과 더불어 살겠다고 발걸음 내딘 나는 그 첫 마음 잃지 않고, 잊지 않고 살아왔는가. 청국장에 박힌 볏짚을 뽑아내면서 내내 마음 쓰릿하게 감도는 물음 앞에 왠지 똑바로 대답하기가 힘들었다.

메주와 청국장 띄우기에 어설피 실패한 것(이라고 하면 메주와 청국장이 서운해 할까나?). 초심을 돌아보라는 자연의 주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금 뿌려 팍팍 치댄 뒤에 통에 담으면서 청국장 띄우기는 드뎌 끝이 났다. 그럭저럭 기본 맛이라도 내기를 바랄 뿐, 이제 내가 더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이제 남은 일은 메주! 방 안과 마당을 오르락내리락하는 메주를 날마다 들여다보며, 손으로 살짝살짝 보듬으면서 간절히 빌고 또 바란다.

 

‘내 정성이 모자라 너희가 이리 되었구나.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ㅠㅠ

이제 남은 시간은 메주 너희들의 힘, 그리고

하늘과 바람과 별과 해님께 맡겨야지.

부디 너희들이 구수한 된장과

감칠맛 나는 간장이 될 수 있기만을

이 겨울 내내 나는 바라고 또

바라면서 보낼 거야.

이 내 마음이 들리거들랑, 좀 힘들더라도

꿋꿋이 산골 메주로 살아남아주렴, 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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