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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다섯, 담담하고 유쾌하게 걸어가는 청춘실패담

매주 월, 목요일에 연재됩니다.


그날 이후의 일상은 참담했다.

시험을 못 봤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성적표를 받아들고 나서도 칩거하거나 근신할 수 없었다. 나는 다음 해 1월, 그러니까 시험이 끝나고 두 달도 안 되어 유럽으로 떠나기로 되어 있었다. 유라시아 대륙의 (인문학적) 동쪽 끝 블라디보스톡에서 기차를 타고 시베리아를 횡단한 뒤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파리와 런던을 거쳐 세상의 (오리엔탈리즘적) 서쪽 끝 포르투갈에서 돌아오는 여정. 이렇게 떠나갈 돈을 모아야 했다.

함께 떠날 친구들은 나를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얘가 올해도 망했나 보다, 하는 생각쯤을 하면서. 나는 이번에 무슨 등급을 맞았네, 무슨 과목이 어려웠네 하는 얘기를 나는 조금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술자리에서 여행에 대한 기대로 열을 올리고는 했다. 요컨대 비행기 예약을 서두르자거나 프리미어리그 경기 티켓을 미리 예매하자거나 기왕이면 파리에서 런던은 페리를 타고 가자고 하는 식으로. 그 사이 D에게서 “너 갈 수 있는 거지?”라는 식의 물음이 가끔 던져져 왔다. 그럴 때마다 나는 뻥뻥 쳐대는 큰소리로 일관했다. 입은 그랬으나 눈동자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말수가 줄어든 대신 자주 허공을 보는 내 눈알을 바라보며 길동무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술에 취해갈 때면 꼭 안주를 하나 더 시키자며 “모스크바에서 한 끼 덜 먹지 뭐.”라고 지껄이는 내가 어때 보였을까. 아, 상상하고 싶지 않다.

여름부터 과외로 벌어들였던 돈이 꽤 됐었다. 그런데 막상 수능이 끝나고 남은 돈은 필요한 자금의 삼 분의 일도 되지 않았다. 여행은 한 달 하고 보름 정도가 남아있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듯 돈을 벌어야 했다. 그리하여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 낮 동안은 논술 선생님이 소개해 준 분당의 학원에서 조교 일을 했다.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동네의 편의점에서 밤 열 시부터 오전 일곱 시까지 야간 아르바이트를 했다.

짜증스럽고 피곤한 일과였다. 새벽 취객들이 지시하는 담배 이름을 외우는 일, 시재점검1에서 20원이 모자라는 이유를 찾는 일, 이제는 꼴도 보기 싫은 수능 5개년 기출문제와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분당 일대의 고등학교 내신 문제를 편집하는 일이 말이다. 입은 다물어도 티를 벅벅 냈기 때문에 점장은 “손님들이 야간 알바 표정이 왜 이리 안 좋냐더라.”라며 타박했었고, 원장은 “얘, 키보드 부서지겠다. 화났니?”라고 걱정했던 것이다. 화났죠, 당연히. 제 자신에게요.

지금 와서 핑계를 대자면 ‘마일드세븐’이 ‘메비우스’로 이름이 바뀐 걸 내가 어떻게 알겠으며, ‘레종’을 달래서 건네줬더니 “1mm 말고 5mm”란 대답이 돌아오는 걸 어떻게 예측할 수 있겠나? 마찬가지로 학생이 풀어온 기말고사 문제지를 하루에 서른넉 장씩 받아다가 연필 자국을 박박 지운 뒤 스캔을 떠서 그림만 캡처한 후 나머지 오지선다를 ‘윤명조 340’ 글꼴로 예쁘게 치는 것을, 재수에 실패한 상태로 해야 한다면 절대로 유쾌할 수 없는 것이다. 잿빛 갱지는 어찌나 예민해서 잘 찢어지던지.

더없이 피로하게 겨울을 맞고 있었다. 그때 나는 침대가 아니라 소파에서 잠드는 것이 습관이었다. 금요일 저녁 분당에서 돌아오면 세 시간 뒤 편의점으로 출근해야 했다. 침대에서 눈을 붙이는 건 너무 곤했다. 야간을 뛰고 온 월요일 아침엔 네 시간 뒤부터 다섯 시간 뒤까지 5분 간격으로 알람을 맞춰 놓고 선잠을 위한 TV를 켜둔 채 잠들었다. 모두 제때 공부하지 않은 후과였다. 그러나 그런 일상은 찬물이 등줄기에 흐르듯 다가오는 서늘함의 진짜 근원은 아니었다.

나를 괴롭힌 건 보다 근본적인 회의감이었다.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실망스러운 성적표를 받아들이고 성적에 맞는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첫 번째였다. 두 번째는 자존심을 꺾지 않고 삼수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둘 다 내키지 않았다. 아쉬움이나 자존심은 둘째치고 내년 봄이 너무 답답할 것이었다.

하지만 입시에 두 번씩이나 실패했다면 솟아나는 감정에 따르기보다는 훨씬 구체적인 성찰의 필요성을 느끼기 마련이다. 무얼 택하든 근거가 빈약했다. ‘어정쩡한’ 대학에 가든 ‘일 년 더’를 택하든. 봄날에 예쁜 여학우들로 설레거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 말고 내가 진정 원하는 게 있기는 했을까. 내가 왜 대학을 가려고 했을까, 그것도 ‘명문대’를. 생활기록부 장래희망에는 ‘기자’나 ‘사회학자’가 적혀 있기는 했다. 그런 직업을 꿈꾸던 건 진심이긴 했지만, 언론이나 사회과학의 세계에 대해서는 하나도 몰랐다. 그리고 엄밀히 따져서 꼭 좋은 학교에 가야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는 편이 수월하긴 하겠지만. 나는 아버지와 고모들이 제공한 ‘차기 서울대생’이란 ‘생각안정제’에 빠져 있었던 걸까. 그렇다기엔 SNS에 올라오던 친구들의 합격 통보 캡처들을 부러워하던 건 내면 깊은 곳에서였지 다른 사람들 때문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속에서 거듭되는 물음에 나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난 뭐가 하고 싶은 걸까.’ 분명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난 좋아하는 게 뭘까.’ 뉴캐슬 유나이티드, 박명수, 달빛요정… 나는 분당에서 돌아오는 퇴근 시간의 광역버스나 편의점에서 걸어 나오는 출근 시간의 길거리에서 그렇게 자답하고는 했다. 선명한 것들, 그러나 지금은 어울리지 않는 대답. 사랑하던 것을 어쩐지 천덕꾸러기로 만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 슬펐다.

적어도 스스로에 대하여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누군지 안다는 확신이 있었다. 정작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냐는 물음에조차 우물거리고만 있었다. 스무 살이 끝나고 스물한 살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누군가의 열망을 대신 살아주는 것이나 막연히 지닌 동경과 환상 말고는 남은 목적이 없었다. 나는 정말 아버지의 희망과 책장에 그럴듯하게 꽂혀 있는 사회과학서나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 여남은 권으로 정체성을 형성하려던 것일까? 특히 책들은, 보통 날에는 절대 빼어 들지 않던 것들이었다. 마치 담장에 예쁘게 쌓인 벽돌처럼. 고민은 깊어만 갔고 두 번째 실패의 그늘은 짙기만 했다.

*

12월이 막 되었던 어느 금요일이었다. 그날 분당 학원의 원장은 나 때문에 두 시간을 허비했다. 내가 E고등학교와 N고등학교의 시험지를 반대로 입력했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전년도 기출문제를 풀어주는 기말고사 직전 강의가 의미없어졌다. 학생들이 수업을 마친 다음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되어서, 부랴부랴 아이들을 다시 불러들여야 해야 했던 거다. 원장은 너무한 호인(好人)이었기 때문에 나를 또렷이 나무라지 않았다. 미안한 마음에 더욱 예쁘게 문제를 편집하고 조용히 강의실을 청소했다, 아주 박박. 오후 4시에 끝나려던 일은 6시에나 끝났다. 그러잖아도 편의점에서 7시에 퇴근하고 세 시간만에 출근한 학원이었다. 네 시간 뒤엔 또 편의점에 나가야 했다. 평소에는 모란역까지 걸어간 뒤 빨간 광역버스를 탔지만, 그럴 힘이 조금도 남지 않았었다. 역까지 마을버스를 타기로 했다.

나는 오 분 남은 마을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별안간 눈앞이 분당 아파트촌의 왕복 6차선에서 1959년의 미국 사립학교 건물 앞으로 바뀌었다. 나는 그 건물로 홀린 듯 들어서는데, 대극장쯤 되는 무대에서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이 상연되고 있었다. 화관을 쓴 ‘퍽’.

“이건 모두 꾸며진 일이랍니다. 이 이야기는 꿈처럼 덧없는 것이에요. 저희를 탓하지 말아요. 용서해주시면 다 돌려놓을게요, 저는 정직한 퍽이랍니다.”

<죽은 시인의 사회> 클라이맥스였다. 쟤는 요정이 아니라 퍽을 연기하는 ‘닐’이지. 불쌍한 녀석. 아버지가 의대를 가라고 했었지. 연극을 하고 싶다고 반항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어 버리잖아. 잘 생기고 공부도 잘하면서 왜 한 번을 못 개길까?… 나는 졸고 있구나. 의식에도 불구하고 꿈은, 아니 영화는, 아니 꿈은, 계속됐다.

장면은 연극이 끝난 뒤로 바뀌었다.

“닐, 넌 재능이 있다. 훌륭한 연기였어. 말문이 막히더구나.”

아, 키팅 선생님. 아니, 로빈 윌리엄스…

“내 아들에게서 손 떼시오, 선생.”

그리고 저 음성은 닐의 아버지. 하버드 의대를 가야 한다며, 부잣집이 아닌데도 무리헤서 저 으리으리한 학교에 아들내미를 보낸 가련한 인간. 집으로 데려가서 무슨 군사 학교로 전학을 보낸다고 윽박을 지르지. 기껏 아들이 나온 연극을 보러 왔으면서. 닐은 하늘 같은 당신 때문에 죽게 되겠지. 당신은 키팅에게 모든 죄를 덮어씌우겠지만.

그런데 그는 닐이 아니라 내 손목을 낚아채 차에 태웠다. 어? 왜 이러세요 아저씨. 당황한 내가 물으며 그 얼굴을 보려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들을, 아니 이제는 나를, 키팅에게서 빼앗아가는 그 대머리 배우의 얼굴이 보여야 하는데 그의 얼굴이 있어야 할 자리엔 아무 것도 없었다. 우리 아버지나 엄마, 고모, 삼촌들의 얼굴이 대신 있지도 않았다. 누가 나를 낚아채 차에 태우기는 한 걸까? 난 알아서 차에 타서 집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건 아닐까?

나는 조수석에 탔다. 차가 급히 발진하며 출발하자 어깨가 훅 뒤로 밀려났다. 나는 깨어났다. 놀라 퍼뜩 뒤를 돌아보니 누군가 내 어깨를 두드리고 있었다.

“총각, 버스 왔어. 안 탈 거야?”

장바구니 든 아주머니의 짜증과 연민 섞인 눈초리였다. 그 뒤로 몇몇도 고개를 빼어 나를 보고 있었던 것 같다. 주위를 둘러보니 나는 모란역 5번 출구 앞에서 광역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 버스에서 내려서 여기 줄을 선 걸까. 서서 졸았구나. 그러고 보니 꿈을 꾸는 중간중간 앞으로 몇 발짝을 가거나 다리가 풀렸던 것 같다. 반쯤 감은 눈으로 버스를 탔다. 자리에 털썩 앉기 무섭게 잠이 들었다. 이윽고 내려야 할 곳을 지나친 기분에 숨이 넘어갈 듯 눈을 떴다. 다행히 도착이 아직 조금 남아 모두 내릴 채비를 하고 있었다.

퇴근길 버스는 평소보다 딱 곱절 느렸다. 집에 오니 8시 20분이었다. 한 시간은 잘 수 있겠구나, 나는 가방만 벗어둔 채 거실 소파에 모로 누웠다.

그러자 이번엔 거실이 웰튼 학교의 교실로 변했다. 오래되어 가장자리가 들려 있는 밝은 무늬 나무 장판이 삐걱이는 진갈색으로 바뀌었다. LCD TV가 진녹색 백묵 칠판이 됐다. 나는 고등학교 때 교복을 입고 구석에 앉아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죽은 듯 조용했다.

“시를 완전히 이해하려면 두 가지를 기억하라. 첫 번째는 대상의 예술적 표현도, 두 번째는 대상의 중요도.”

키팅 선생님은 이 구절이 적힌 교과서를 찢어버리랬지. 저 꼰대 교장 선생이 수업하는 걸 보니 꿈에서도 결말은 똑같구나. 여기서도 그는 패배하고 말았구나. 사랑하던 제자를 잃고, 몇몇에게는 배신당하는 기분은 뭘까. 두고 온 짐을 가지러 왔다는 키팅. 교탁 뒤편 사무실에서 스카프를 챙기고, 배신자 카메론이 얄궂은 시론(詩論)을 읊자 빙긋이 비웃는 키팅. 쓸쓸하되 담담히 걸어 문으로 향하는 선생님. 날카롭게 벼린 긍지 같은 그런 걸음. 이내 잘 알고 있는 대로, 가장 소심하던 에단 호크, 아니 토드 앤더슨이 일어섰다. 선생님, 저희는 강요 때문에 서명했어요. 저희를 다 퇴학시킨다고 했어요… 단지 조용하랄 뿐인 교장. 토드는 울음을 삼키며 책상에 올라간다. “오 캡틴 마이 캡틴”. 가슴이 터질 듯한 의기와 혈기. 하나둘 책상으로 올라서는 다른 ‘죽은 시인의 사회’ 회원들. 둘이 셋이 되고 다섯, 여섯… 그리고 나도… 일어나 책상 위에 올라서려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럴 수록 듬성듬성 눈에 들어오는 방관자들. 고개를 수그리고 앉아 있는 변절자들. 저들처럼 살고 싶지는 않은데… 도무지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장면은 이내 1인칭에서 영화가 원래 그랬듯 3인칭으로 바뀌며 내 의지를 가로막았다.

“고맙다, 얘들아. 고맙구나.”

몇 번이고 돌려봤던 결말처럼, 로빈 윌리엄스 아저씨는 입을 굳게 다문, 그러나 누구에게도 비할 수 없이 부드러운 미소로 교실을 빠져나갔다. 나는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그 어느 때보다 소스라치듯 꿈에서 깨어났다. 어딘가는 여전히 서늘했다. 앞으로의 나날이 이렇게 불확실하고 어쩔 수 없이 비겁한 것일까? 처음 <굿 윌 헌팅>을 봤던 5년 전처럼 콧물을 짜내며 울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의 폐부가 다시 들먹이는 걸 느낄 수는 있었다. 반갑고, 그리웠다. 환상이 너무 생생해서 눈을 뜨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미안했다, 책상에 올라서지 못한 게. 당신을 처음 만났던 열다섯에 여전히 머무르고 있다는 것도.

그러나 모든 걸 확신할 수 없는 지금 확인할 수 있는 게 있었다. 무엇보다도 선연하고 분명하게 사랑하는 것을. 그것은 바로 5년 만에 소파 앞으로 돌아온 나의 우상이었다.

나는 그동안 가끔 생각하면서도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일을 저질렀다. 로빈 윌리엄스. 합리적인 근거도 안정적인 미래도 아니며 그래서 유년에 상상한 앞날엔 잘 들어있지 않았던 일. 하지만 그 자리에서 메시지를 남겼다. 마침 내게 연기를 배우는 친구가 있었던 것은 다행일까 불행일까.

 – 나 연극 배우고 싶다. 연극으로 학교 가려고… 도와주라.

누군가 왜 연극을 전공했느냐고 물으면 얼버무릴 뿐이지만, 내심은 서늘한 가을날에 몰래 품는 따뜻함 같은 미소를 떠올린다.

1 판매금액과 POS의 잔고가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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