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산, 2020.10.24.토

 

코로나 사태가 지속되면서 사람들은 예상하지 못한 고초와 불편을 겪고 있지만 가을 날씨는 청명하다. 푸른 하늘처럼 사람들의 삶도 밝아지면 좋겠지만 곳곳에서 아우성이다. 마지막 희망의 끈을 부여잡고 살아가는 민초들이 넘쳐난다. 코로나를 핑계로 집회조차 제한하고 있으니 사람들의 목소리는 드러나지 않는다. ‘테스형’이 한 차례 지나가긴 했지만 오직 정치권의 권력투쟁이 주요 뉴스다.

어제는 단식 10일 째인 이스타항공 조종사 노조 위원장을 지지하는 하루 동조단식을 했다. 농성장에 나가지 않더라도 단식하면서 영상을 올리면 된다고 했지만 국회 앞 농성장으로 나갔다. 단식 중인 위원장을 만났다. 이스타항공 창업주는 자식들에게 돈을 빼 돌리고 국회의원이 되었는데 하늘을 날아야 할 조종사는 해고당해 길바닥에서 굶고 있다. 함께 하고 있는 조종사노조 조합원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었다. 영상을 찍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이게 ‘노동존중’인가?

2000년 초 대한항공, 아시아나 조종사 노조가 만들어졌을 때 일주일 두 노조 조합원 대상 합동 교육을 한 적이 있다. 처음 김포공항에 있는 교육장에 들어섰을 때 “비행시간 단축하라!”는 구호도 있었지만 인상적이었던 것은 전태일 열사가 외쳤던 바대로 “조종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문구였다. 연간 수천 명이 산업재해로 사망하고, 소리 소문 없이 해고당하고, 최근 택배노동자들의 연 이은 죽음이나 이스타항공 사태를 보면서 자본가나 자본가 국가는 정말 노동자를 기계부품보다 못하게 생각하는 것이 분명하다.


세 끼를 굶는 시간인 저녁을 지나면서 배가 무척 고팠다. 노동운동 과정에서 여러 차례 단식을 경험했지만 굶는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단식하지 말고 잘 먹고 투쟁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하지만 오죽하면 단식을 선택했겠는가? 전 날의 단식으로 몸이 노곤하기도 했고 오후에 시내에서 회의가 있어 가깝고 낮은 인왕산을 올랐다. 화창한 날 주말이라 등산로는 사람들로 붐볐다. 사람들 따라 천천히 걸었다. 사직단에서 오르면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지만 1시간보다 더 걸려 정상에 도착했다.

“이스타항공사태 정부여당이 책임져라!”, “이스타항공 조종사 단식 11일차, 청와대가 책임져라!” 정상에서 청와대를 내려다보며 준비해간 피켓으로 인증샷을 찍었다. 권력을 유지하고 재창출하는 것 외에 다른 것들은 부차적일 그들에게는 ‘마이동풍’격이겠지만 말이다. 창의문 방향으로 하산했다. 윤동주문학관이 있는 시인의 언덕에 시비가 서 있다. 앞면은 그 유명한 윤동주가 1941년에 쓴 “서시”가 있고 뒷면에는 1938년에 쓴 “슬픈族屬”(족속)이 있다.

‘힌 수건이 검은 머리를 두르고

힌 고무신이 거츤발에 걸리우다

힌 저고리 치마가 슬픈 몸집을 가리고

힌 띠가 가는 허리를 질끈 동이다‘(1938.9)

봉건적 억압과 약탈의 시대는 지났지만 자본주의 착취와 외세지배는 변하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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