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월 12일차.. 제주 새별오름에서 만난 억새,

안식월 16일차.. 순천만에서 만난 갈대,

여기를 찾은 사람들은 이들이 만들어낸 황홀경에 매료되어, 그 아름다움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듯 너도나도 이 수풀속에 뛰어들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고 있다.

이런 인간들의 마음을 아는 듯 모르는 듯 새별오름억새와 순천만습지 갈대는 묵묵히 고개를 숙인 채 바람따라 몸을 가누며 서 있다.

그런데 이 둘이 너무 닮았다. 그래서 저 둘을 구별 못하는 사람도 많다.

그래도 엄연히 너희 둘은 다르게 태어난 존재다.

습지에서만 자라고 키가 더 큰 갈대,

들판이나 언덕에서 자라고 좀 작은 억새,

이 때문에 둘이 같은 장소에서 함께 산 적은 없다.

그런데도 왜 이리 닮아 보일까? 고개숙인 채 바람에 흔들리는 애절함은 제주에서 만난 억새나 순천에서 함께한 갈대나 마찬가지다.

왜 이렇게 닮아 보일까? 생각의 꼬리가 마침내 제주와 순천의 아픈 역사에 이른다. 72년전… 제주4.3때 토벌대와 무장대 사이에서 영문도 모르고 죽어간 목숨들과 불타 없어진 숲. 그 척박한 땅에 자라난 억새풀. 제주출동거부로 야기된 여수,순천 반란 때 반란과 진압 와중에 뿌려진 그 피가 빗물따라 흘러들었을 이 습지에 자리잡은 갈대들.

그래서일까?

수많은 이들을 매료시키는 너희 둘의 아름다움은 수많은 슬픔과 피눈물의 또다른 표현일런지…

그래서일까?

억울한 영혼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지, 이 둘은 모두 하나같이 땅을 향해 고개를 떨구고 있다.

너희 둘은 원혼들이 울부짖을 다가오는 밤이 싫어 해가 지기전이면 이토록 붉게 눈물짓는 것이 아니냐?

제주억새와 순천갈대. 인간들의 무심함 속에 버려젼 그 외로움을 오랜 세월 너희를 지켜봤을 저 저녁해는 알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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